부상→독립구단→육성선수 거쳐 주전 리드오프로 성장…“팀에 도움되는 선수 되고 싶다”
소집 해제를 앞둔 어느 날, 그는 다시 야구에 대한 갈망이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제대 후 모교인 단국대를 찾아가 훈련을 시작했고, 우연히 다른 선수를 보려고 단국대를 방문한 김용희 전 SK 감독의 눈에 띄어 육성선수로 SK와 인연을 맺었다. 이듬해 정식 선수로 등록하면서 프로에 입문한 그는 2019년 무상 트레이드로 kt wiz 이적 후 지금은 팀의 상승세를 이끄는 리드오프로 맹활약 중이다.
지난 16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육성선수의 또 다른 신화를 이루고 있는 조용호(32)를 만났다. 2022년 6월 2일 인천 SSG전은 조용호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경기다. 1회초 선두 타자로 나서 2017년 1군 데뷔 6년 만에, 492경기 1632타석째에 첫 홈런을 터트린 것이다. 상대 선발은 이태양이었다.
“공이 방망이에 맞을 때 ‘감’이라는 게 있다. 그땐 잘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타격 후 타구의 방향을 보지 않고 1루로 뛰었는데 주루 코치님이 아무 말씀을 안 하시더라. 순간 아웃된 줄 알았다. 그러다 2루로 내달렸고, 그 사이에 우리 팀 응원석에서 '와' 하는 함성 소리가 들렸다. 2루 베이스를 돌며 심판님에게 '넘어갔어요?'라고 여쭤봤더니 홈런이라고 말씀해주시는 게 아닌가. 홈 베이스를 밟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이강철 감독님이 박수를 치시며 하이파이브를 해주시는데 정말 고맙고 감사했다.”
데뷔 첫 홈런이나 이적 후 첫 홈런을 날린 선수한테 동료들은 무관심 세리머니를 보인다. 즉 홈런 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선수에게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몰려가 하이파이브를 하고 가볍게 머리를 때리는 등 축하를 보낸다. 조용호도 홈런 이후 더그아웃의 무관심 세리머니를 맞이했다. 그는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에 이강철 감독과 주먹 인사를 한 후 곧장 벤치로 가 선수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고 말한다.
지난 5월 17일 수원 LG전도 조용호에게 감동을 안긴 경기였다. 그날 조용호는 8회 몸에 맞는 공에 이어 2-2 동점인 9회말 LG 김진성을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날리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데뷔 첫 끝내기 안타였다. 그는 첫 홈런과 끝내기 안타를 떠올리며 “끝내기 안타가 주는 여운이 더 오래가는 것 같다”고 말한다.
“데뷔 첫 홈런도 기뻤지만 1회 홈런을 치고 나서 경기 끝날 때까지 안타가 없었다. 그래서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만약 홈런과 안타 2개 중 어떤 게 더 낫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안타 2개를 선택할 것이다. 홈런보다 안타를 더 많이 치고 싶기 때문이다. 끝내기 안타가 나온 상황도 신기했다. 나는 장타력이 떨어지는 선수다. 당시 배정대가 1루에 나가 있었는데 주자 1루에선 끝내기 상황이 만들어질 수 없다. 그런데 이강철 감독님이 히트 앤드 런 작전을 내셨다. 덕분에 배정대는 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 2루로 달렸고, 마침 우익수 선상 라인 안쪽으로 떨어지는 안타가 터지면서 발 빠른 정대가 홈 플레이트까지 밟을 수 있었다. 승리를 확정 짓는 순간 모든 선수들이 달려 나와 물을 뿌리며 축하를 보내줬다. 응원석의 팬들도 야구장이 떠나갈 듯이 함성을 질렀는데 순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날은 야구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기록될 것 같다.”
조용호는 4월 한 달 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팀의 리드오프로 나서 타율 0.227 15안타 0타점을 기록했다. 그러다 5월 들어 반전을 이뤘다. 첫째 주인 5월 3일부터 8일까지 경기에서 25타수 12안타를 기록하며 타율 0.480을 올렸다. 주간 타율과 안타 모두 리그 1위였다.
“4월에 타점 찬스가 많았는데 단 하나도 살리지 못했다. 그때 자신감이 떨어졌다. 이전의 타격폼으로 변화를 주려고 고민했을 정도다. 그러다 김강 코치님이 “예전의 타격폼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 되면 내가 먼저 얘기할 테니 지금은 자신을 믿고 가보자”라고 말씀해주셔서 그걸 믿고 힘을 냈다. 그 후 한 주 동안 12개의 안타를 기록했다. 또 이강철 감독님의 믿음도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 나는 스타플레이어가 아니다. 즉 라인업에서 제외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텐데 감독님은 나를 1번에서 하위 타순으로 내리고 부담을 덜게 해주셨다. 감독님의 그 배려가 정말 고마웠다.”
조용호는 타격감이 좋지 않을 때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경기 영상을 찾아본다. 최근에는 LA 에인절스의 마이크 트라웃이 티볼 치는 훈련 영상을 반복해서 봤다고 한다.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체형이나 파워에 큰 차이가 있지만 그들은 기본기가 아주 잘 돼 있다. 마이크 트라웃은 티볼을 치는데도 타격폼에 흔들림이 없다. 그런 모습을 통해 새롭게 깨닫는 부분이 있다. 동료 선수들 중 (배)정대랑 타격에 관한 대화를 자주 하는 편인데 그동안 안 될 때도 많았고, 힘든 시즌도 있던 터라 타격 공부에 파고 든 면도 있다.”
올시즌 조용호의 연봉은 2억 4000만 원. 2014년 육성선수로 시작해서 2021시즌 1억 3000만 원의 연봉으로 억대 연봉 대열에 올라섰다가 올해 2억 원 대에 진입했다.
“지난 시즌 1억 3000만 원 받았는데 타율이 2할3푼이었다. 그럼에도 올해 1억 1000만 원이나 인상된 것이다. 물론 한국시리즈 우승 프리미엄이 있었겠지만 삭감이 아니라 인상을 해줘서 놀라웠다. 다른 팀 관계자가 내 연봉 인상으로 인해 팀 선수들과 협상 때 곤란을 겪었다며 하소연했을 정도다. 억대 연봉을 받게 되면서 여러 고마운 분들이 떠올랐다. 그중 이강철 감독님은 내 인생을 바꾸주신 분이고, 염경엽 전 감독님은 내 야구 인생을 열게 해주셨다. 난 정말 좋은 운을 타고 난 것 같다.”
조용호가 염경엽 전 SK 감독을 거론한 배경에는 2018년 11월 23일 무상 트레이드를 통해 KT로 이적이 포함된다. 당시 포화 상태인 SK 외야진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염 전 감독은 조용호를 방출 대신 무상 트레이드로 선수 생활의 기회를 제공했고 KT는 그런 조용호를 받아들였다.
인터뷰를 이어 가던 조용호는 담담한 목소리로 잠시 야구를 그만둔 사연을 들려줬다. 대학 졸업 이후의 이야기다.
“그때 난 어떤 목표나 꿈이 없었다. 발목 부상으로 신인 드래프트 지명 기회가 날아가면서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마음먹고 사회복무요원으로 군에 입대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허락을 받고 출퇴근 전후로 신문, 우유, 중국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 제대 한 달 남기고 갑자기 사회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들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야구고, 야구 외엔 다른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당시 제대 후 뭘 하고 살아야 할지 고민하느라 먹지도 못하고 잠도 이루지 못했다. 고민하다 대학 모교 감독님한테 훈련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드렸고, 감독님이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단국대에서 훈련할 수 있었다. 그게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줄은 진짜 몰랐다.”
조용호는 단국대에서 우연히 김용희 전 SK 감독을 만났고, 이후 3개월가량 입단 테스트를 통해 2014년 6월에 육성선수 계약을 맺었고, 이듬해 정식 선수로 등록했다. 드라마 같은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조용호는 KT 이적 후 타격보다 수비의 어려움을 절감 중이다. 그는 “정말 수비를 잘하고 싶다”고 하소연할 만큼 수비와 관련된 아픔이 많다. 영원히 잊고 싶은 장면 중 하나가 2020년 두산과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나왔다. 1회초 테이블 세터 조용호와 황재균이 연속 안타로 무사 1, 2루를 만들었고, 멜 로하스 주니어가 우중간 담장을 맞히는 장타를 기록했는데 2루 주자 조용호의 판단 실수로 늦게 스타트를 끊으면서 장타를 직감하고 내달린 황재균이 조용호의 등 뒤까지 바짝 따라 붙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2루와 3루에 도착한 로하스와 황재균으로 인해 홈으로 달릴 수밖에 없었던 조용호는 두산의 빠르고 정확한 중계 플레이에 아웃되고 말았다.
“그 일 이후 (황)재균이 형이 루상에 있을 때 안타가 나오면 큰 소리로 외친다. “가, 가!”라고. 최만호 주루코치님도 어느 순간 목소리가 커졌다. “고, 고” 하시면서. 우스갯소리로 나 때문에 잘릴 뻔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솔직히 나도 그때 코치님이 재계약 안 될까봐 걱정했다.”
2021년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소장하고 있는 조용호는 우승 반지를 잘 보관하기 위해 장식장을 들일 예정이라고 한다. 그 반지가 주는 의미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육성선수였던 내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주위의 도움이 컸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온 것 같다. 돈 한 푼 없던 시절에 나와 결혼해준 아내한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야구선수 조용호는 크게 유명하지 않지만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로 기억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