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좋아졌지만 최근 증시 침체가 부담…현대HD 정 사장 추진 신사업 동력 될지 주목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한국거래소에 예비상장심사를 청구했으며 올해 하반기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현대오일뱅크를 둘러싼 대외 환경은 우호적이다. 최근 유가가 급등하면서 현대오일뱅크의 실적도 상승세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오일뱅크가 2012년 IPO를 추진했다가 철회한 이유도 국제 유가가 하락하면서 경영 환경이 악화됐기 때문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국제 유가도 당분간 높은 가격을 유지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진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최소 8월말까지는 높은 수준의 유가레벨 유지가 가능하고, 미국의 허리케인 시즌까지 감안하면 9월까지도 공급 부족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주식시장이 침체돼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실제 지난해 3000이 넘었던 코스피지수는 현재 2400선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 때문에 현대엔지니어링, SK쉴더스, 태림페이퍼 등 적지 않은 기업들이 올해 IPO를 포기했다.
IPO의 또 다른 변수는 현대오일뱅크 지분 17%를 보유한 2대주주 아람코(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석유기업)다. 한국거래소는 아람코와 현대오일뱅크가 맺은 주주 간 협약 내용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사 선임권 등을 두고 아람코에게 과도하게 유리하게 협약을 맺었다는 것. 현대오일뱅크는 아람코 설득에 성공해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가 껄끄럽다. 이 때문에 미국과 동맹관계인 한국 기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오는 7월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계획을 앞두고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이 유가 안정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 도움을 요청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등 분위기 반전의 여지는 있다.
현대오일뱅크 IPO는 추진 중인 신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신사업으로 화이트 바이오 사업을 추진 중이다. 화이트 바이오는 광합성에 의해 생성되는 다양한 식물자원을 원료로 각종 에너지원과 화학소재를 생산하는 산업이다. 현대오일뱅크는 기름 찌꺼기, 폐식용유, 땅에 떨어진 팜 열매 등 비식용 자원을 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기존 바이오 산업은 대두, 옥수수 등 식용 자원에서 에너지원을 추출하지만 산림파괴 등 사회적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현대오일뱅크는 이를 위해 2023년까지 대산공장 1만㎡(약 3025평) 부지에 연산 13만 톤(t) 규모 차세대 바이오디젤 제조 공장을 건설하고, 2024년까지 대산공장 내 일부 설비를 연산 50만t 규모 수소화 식물성 오일(HVO) 생산설비로 전환할 예정이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석유를 원료로 하는 정유·석유화학 사업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블루수소, 친환경 화학·소재와 함께 화이트 바이오 사업을 미래 신사업 중 하나로 선정했다”고 전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최근 그룹 차원에서 신사업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올해 초 사명을 HD현대로 변경했고, 현대오일뱅크도 사내 임직원을 대상으로 새로운 사명 공모를 진행했다. 공모에서 사명에 ‘오일’을 제외하거나 친환경과 관련한 사명이 대거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사명에 주력 사업을 명시하는 대신 회사의 가치를 보여주기 위한 시도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 HD현대 사장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평가한다. 정 사장은 지난해 10월 정기 인사에서 HD현대와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정 사장은 올해 초 ‘CES 2022’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다가올 50년, 세계 최고의 ‘퓨처빌더(Future Builder)’가 되겠다”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성장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그룹의 변화를 이끌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현대오일뱅크 IPO 흥행은 정기선 사장의 계획에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현대오일뱅크가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지난 3월 말 기준 2116억 원으로 IPO에 실패하더라도 당장 신사업 투자가 어려울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현대오일뱅크의 최근 지출이 많은 만큼 안심할 수준도 아니다.
오유나 한국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현대오일뱅크에 대해 “사업경쟁력 강화와 신규 사업 추진 목적의 투자지출, 배당금 지급 등으로 현금창출력을 상회하는 자금소요가 지속됐다”며 “유가 수준에 연계한 운전자금 부담, 배당금 지급 규모, 친환경 사업 투자 등에 따른 재무구조의 변동성이 내재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오일뱅크의 모회사 HD현대 입장에서도 IPO 흥행은 절실하다. HD현대도 선박 자율운항, 수소, 로봇 등 다양한 신사업을 준비하고 있으므로 재무구조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현대중공업그룹 주요 계열사인 한국조선해양,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이 모두 올해 1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반면 현대오일뱅크의 올해 1분기 매출은 7조 2426억 원으로 지난해 1분기 매출 4조 5365억 원에 비해 3조 원가량 늘었고, 영업이익도 4128억 원에서 7045억 원으로 상승했다. 믿을 구석은 현대오일뱅크인 셈이다.
송종휴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HD현대를 평가하면서 “현대오일뱅크 상장 시 자본구조와 재무완충력이 향상될 것”이라며 “일부 지분의 구주매출 등을 통한 유입자금이 차입금 상환으로 이어질 경우 가시적인 자체 재무부담 완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IPO 추진과 관련해 현대오일뱅크 한 관계자는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한 상태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IPO를 통한 신사업 등에 대해서는) 현재로는 말할 단계가 아닌 듯하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