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넣으면 범죄 수법 익혀 사회 진출, 재범 늘어…현장에선 “포화상태인 교정시설 확충이 우선 과제”
촉법소년은 범죄를 저지른 만 10세 이상~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를 말한다. 형사책임 능력이 없기 때문에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 받지 않고 소년법에 따라 사회봉사나 소년원 송치 등 보호처분을 받는다.
기준 연령이 만 14세인 데에 딱히 과학적 근거는 없다. 많은 나라에서 형사미성년자를 만 14세로 정하고 있어서가 그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기준연령은 소년법이 제정된 1953년부터 꾸준히 논란의 중심이었다.
정치권에서도 종종 이 문제를 들고 나왔다. 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여야의 주요 후보자들이 모두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대선 공약으로 내놓을 만큼 여론도 연령 하향에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당시 촉법소년 기준 연령을 낮추겠다는 공약을 내놓았고 그 결과 촉법소년 연령 조정은 현 정부의 국정과제가 됐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6월 14일 검찰국·범죄예방정책국·인권국·교정본부로 구성된 전담팀을 꾸리고 ‘촉법소년 연령 하향’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교정 시설이 범죄 네트워크로
주목할 부분은 누구보다 소년범의 실태를 잘 알고 있는 이들의 입에선 환영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조금 더 크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직접 소년범을 마주하는 일선의 공무원과 소년원 교사들 걱정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현재도 소년 교정시설이 포화 상태라 늘어난 인원을 수용할 곳이 없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교화 시스템의 개선 없이 처벌만 강화할 경우 오히려 재범률만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다. 즉, 촉법소년의 범위를 넓히면 그만큼 형사재판을 받는 소년범도 증가하는데 현행 소년사법제도의 개선 없이는 부서진 외양간에 소만 많이 밀어 넣는 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지금의 교정·교화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교정·교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각종 시스템이 오히려 또 다른 범죄 네트워크 형성의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2018년 국민적 공분을 샀던 인천 중학생 추락사 사건의 가해자 6명은 대부분 다른 학교 혹은 다른 동네 출신이다. 사건에 연관된 학교만 총 4곳, 학교 사이의 거리는 최장 5km로 걸어서는 1시간 이상 소요되는 곳도 있었다. 한 동네 출신도 아닌 이들을 한데 묶어준 곳은 다름 아닌 지역 경찰서에서 진행하는 청소년 교화 프로그램이었다.
폭행 사건으로 등교 정지 처분을 받고 특별교육을 받았다는 가해자는 당시 일요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연수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뒤 특별교육을 6시간 이수했다. 그곳에서 다른 가해자들을 처음 만났다”고 고백한 바 있다. 연수경찰서에서 조사를 마친 이들은 지역의 복지센터로 옮겨 교육을 이수했고, 이곳에서 추락사 사건 가해자 6명 가운데 3명이 만났다는 것이다. 특별교육을 마치고 각자의 학교로 돌아간 이들은 친구를 소개시켜주고 소개받으며 관계를 이어갔다. 탈선 청소년의 교화를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이 도리어 또 더 큰 사건을 발생시킨 단초가 된 것이다(관련기사 [단독] 인천 중학생 추락사, 교화 시스템이 가해자들 만남 주선한 셈).
24시간 함께 생활하는 소년원·소년교도소에서는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는 이들도 있지만 적지 않은 소년범들이 창살 뒤에서 더 다양한 범죄 수법을 익힌다. 법무부 보호직 공무원 A 씨는 소년범에 대한 처벌은 강화하고 이들이 교정 시설에서 또 다른 범죄를 배우지 않도록 분리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년원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사고를 가까이에서 보고 들어왔다고 했다.
“학창 시절에 선생님이 말썽 피우는 애들한테 ‘뭉쳐 다니지 말라’고 하잖아요. 선생님은 왜 굳이 아이들을 떨어뜨려 놓으려고 했을까요? 같이 있으면 사고를 치거든요. 소년원이나 소년교도소에서 함께 사는 아이들은 어떻겠어요? (소년원에) 오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대부분은 폭행이나 절도, 사기의 범행을 저지르고 와요. 그런데 이미 누군가를 괴롭히는 게 어렵지 않은 아이들이 모이면 필연적으로 새로운 희생양이 생깁니다. 소년원 내에서의 폭행 사건도 비일비재해요. 만약 마음이 맞는 아이들끼리 새로운 무리라도 형성하면 나가서 또 어떤 사고를 칠지만 궁리합니다. 또 다른 범죄를 도모하는 것 같은 낌새가 보여도 지도교사들은 벌점 말고는 마땅히 제재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요. 관리 인원이 워낙 부족하기도 하고요. 저도 어느새 교화보다는 아이들이 또 다른 비행 네트워크를 형성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더라고요.”
그나마 소년원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소년범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이들은 형사재판이 진행되는 최소 몇 개월간 구치소에 수감되는데 이때 성인범과 같은 방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 폭행죄로 기소된 아이들은 이곳에서 조폭을 만나고, 절도죄 기소된 아이들은 이곳에서 사기꾼과 횡령범 등을 만난다. 죗값을 치르기도 전에 더 넓은 범죄의 세상을 접하는 셈이다.
형이 확정되면 전국에 1개뿐인 김천소년교도소로 가게 되는데 이미 어른들에게 질 나쁜 범죄 수법을 배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년교도소마저도 만 23세까지 수용이 가능해 사실상 성인범과 함께 수용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방은 범죄의 경중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서 여러 혐의를 가진 이들이 뒤섞여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A 씨는 “소년교도소는 중범죄를 저지른 소년범만 수용하기 때문에 죄질로만 보면 오히려 성인교도소보다 나쁜 경우도 적지 않다. 스무 살이 넘은 수감자 중에는 조폭도 많은데 이곳에서 쌓은 인연으로 사회에 나가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거나 고등학생 소년범을 자신이 속한 조직에 영입하려고 하는 시도도 빈번하다”고 말했다.
#“국가가 잘못된 만남 주선하는 셈”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년범죄 발생률은 줄어도 재범률은 증가하는 추세다. 실제로 소년범의 재범률은 2010년 35.1%에서 2019년 40.0%로 증가했다. 소년원에서 기간제 교사로 상담 등의 업무를 해온 B 씨는 “소년범은 언젠가 사회로 돌아간다”며 “가해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처벌 이후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정·교화의 가능성이 있는 소년범까지 모두 교도소에 수감되면 사회에 나왔을 때 재범의 가능성만 높여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들 눈앞에 벌어진 사건만 봐요. ‘촉법소년을 폐지하라’거나 ‘나이가 어려도 무조건 형사 처벌하라’고 해요. 문제는 그렇게 해도 소년범의 99% 이상은 언젠가 출소하거나 사회로 나온다는 거죠. 그 뒤는 안 봐요. 상담을 하다 보면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정신질환 문제로 범죄를 저지르게 된 아이들도 분명 있어요. 개선의 의지는 있는데 친구 관계를 끊지 못하거나 분노나 충동을 참는 교육을 받지 못해 범죄를 반복하게 되는 거죠. 사실 분노조절장애 같은 정신질환은 치료를 하면 되거든요. 그럼 이들을 제대로 교화시켜서 더 이상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하는 게 사회적으로 이득일까요? 아니면 일단 나쁜 짓을 했으니 감옥에 넣고 몇 년 뒤에 꺼내주는 게 이득일까요? 주변 환경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청소년 시기를 다른 교육 없이 감옥에서만 보낸다면 출소 무렵 이들은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를 준비를 마친 사람들이 되어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B 씨는 촉법소년 연령 하향 이전에 교정시설 확충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소년 교정시설은 소년교도소 1개. 소년분류심사원 1개, 소년원 10개에 불과하다. 심사원이 없는 곳은 소년원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소년교도소 수용률은 이미 100%를 넘겼고, 소년원 10개에는 1000여 명이 수용돼 있다. 말 그대로 과밀·포화상태다. 국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B 씨의 지적이다.
“교정시설이 부족하니까 어쩔 수 없이 전국의 소년범들을 소년원이 설치된 지역에 모아두는 게 현실이에요. 서울·경기 지역 하나, 부산·울산·경남 지역 하나, 대구·경북 지역에 하나 이런 식이요. 심지어 여자소년원은 청주와 안양, 전국에 2개밖에 없어요. 서울에서 범죄를 저지른 아이가 부산에서 범죄를 저지른 아이와 같은 곳에 수용될 확률이 50%인 거죠.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소년범을 치료할 수 있는 곳은 전국에 대전소년원 한 곳뿐이고요. 결국 구금기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아이들끼리는 이미 한 다리 건너 다 아는 사이가 되어 있어요.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하는 사이는 되도록 떨어뜨려야 하는데 오히려 국가가 이들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는 셈이죠.”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