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기획사 팬클럽 탄생부터 운영까지 관여…트롯 스타 소속사 다양한 연령층 아우를 노하우 부족
아이돌 보이그룹의 인기가 절정이던 2000년대 중반 한국 사회는 과도한 팬덤 문화로 인해 몸살을 앓았다. 당시엔 아이돌 팬덤 문화의 주축이던 10대를 중심으로 한 사생팬이 화제가 됐다. 당시 팬덤은 공개방송 등 각종 스타의 공식 스케줄을 따라다니는 소위 ‘공방팬’과 스타의 소속사와 숙소 인근에서 대기하며 스타의 사적인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사생팬’으로 구분됐다. 특히 사생팬이 문제가 됐는데, 늦은 밤과 새벽까지 스타의 숙소 인근에 대거 몰려들어 각종 소음을 유발해 민원이 이어지곤 했다. 스타들 역시 한 번 숙소로 들어가면 사생팬들 때문에 전혀 외출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인기 아이돌 그룹 멤버와 사생팬이 충돌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사생팬은 택시를 대절해 아이돌 그룹의 일정을 뒤쫓기도 했다. 고가의 비용을 받고 사생팬들을 태우는 일부 택시 기사들이 과도하게 미행하려다 위험 운전을 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후 소위 ‘누나팬’과 ‘한류팬’이 더해졌다. 사회생활을 하며 경제력이 뒷받침 된 20~30대 여성팬인 ‘누나팬’은 아이돌 그룹 멤버가 밤에 술집을 방문하면, 그 정보를 미리 입수해 같은 술집을 찾아 가기도 했다.
이후 한류팬이 추가됐다. 주로 일본인 팬들로 3~5일 일정으로 한국 관광을 와 사생팬들과 비슷한 일정을 소화했다. 이들에게 스타 관련 스케줄과 숙소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사생팬의 행보에 맞춘 여행 일정을 가이드해주는 전문 브로커까지 등장했었다.
그나마 당시의 아이돌 그룹 소속사는 팬덤을 관리하는 데 나름의 전문성을 갖고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 로드매니저들은 거듭된 경험으로 사생팬 대처에 전문성을 갖고 있었고, 팬들의 통제가 어려운 현장에는 경호원까지 투입했다. 요즘에는 각종 연예계 현장에 경호원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시작점이 바로 아이돌 그룹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팬클럽으로 특히 회장단 관리가 핵심이었다. 인기 아이돌 그룹이 소속된 중대형 가요기획사는 팬클럽 회장단을 사실상 회사 직원에 준하는 기준으로 관리했다. 그러나 보니 인기 아이돌 팬클럽 회장으로 활동하다 아예 소속사 직원이 된 경우도 있다. 신인 그룹이 데뷔하면 데뷔 준비 과정에 벌써 팬클럽이 생기는데 아예 소속사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회장으로 앉히기도 했다. 심지어 다른 아이돌 그룹 팬클럽 회장을 역임한 인물이 같은 소속사 신인 아이돌 그룹의 팬클럽 초대 회장을 맡아 초기 빌드업을 주도하는 일도 있었다.
요즘 팬덤의 핵심은 아이돌보다 트롯 스타들이다. TV조선 ‘미스터트롯’ TOP7을 비롯해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다른 방송사 트롯 오디션 프로그램 주요 출연 트롯 가수들도 대부분 팬카페를 중심으로 한 팬덤이 갖춰져 있다. 애초 트롯 가수는 지역 축제 등 전국을 오가며 각종 행사를 소화하는 일이 많은데 그런 일정을 팬덤 회원들이 팔로한다. 트롯 팬덤의 시작점으로 송가인의 팬클럽이 손꼽히는데 ‘미스트롯’ 이후 송가인이 각종 지역 행사장을 찾으면 팬클럽 회원들이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타고 따라다니며 막강한 팬덤의 힘을 보여줬다.
문제는 스타를 좋아하는 선한 마음으로 시작된 팬덤에 개인의 욕심이 더해지면 과잉에서 비롯된 각종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미 트롯 팬덤에도 사생팬이 생겨나고 있다. 전국 각지에 살며 펜카페 등을 통해 온라인으로 친분을 쌓은 팬카페 회원 가운데 뜻이 맞는 몇몇이 서울에서 만나 사생팬 여행을 하는 일도 많아졌다. 좋아하는 트롯 스타가 방문했던 모습이 방송이나 SNS(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공개됐던 관광지를 성지순례하듯 찾는 일이 많아졌는데 여기까지는 국내 관광 활성화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여기에 더해 소속사 사무실, 스타의 집까지 찾는 일도 흔하다. 심지어 과거 사생팬이나 한류팬처럼 택시를 대절해 하루 종일 스타의 스케줄을 따라 다니기도 한다.
문제는 아직 트롯 스타들의 소속사가 아이돌 그룹 소속사만큼 원활하게 팬덤 관리를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그런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특히 소통에서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트롯 팬덤은 10~20대 여성 중심이던 아이돌 팬덤과 달리 연령과 성별이 다양하다. 그만큼 스타와 팬덤의 매개 역할을 하는 소속사에 요구사항이 많다. 심지어 각종 스케줄과 행사 등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의 요구까지 하는 경우도 많다. 어떤 행사는 너무 홍보성이 강하니 가지 말라, 어느 프로그램은 이미지에 도움이 안 되니 출연하지 말라는 등의 요구들이다.
소속사에서 이런 요구에 대해 대응하지 않으면 일부 강성 팬들을 중심으로 소통을 하지 않는 소속사를 성토한다. 다른 트롯 스타의 소속사는 이런저런 소통을 많이 하는데 왜 우리 스타 소속사만 팬들과 소통하지 않느냐며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도 많다.
더 심각한 부분은 팬덤 내부의 분쟁이다. 요즘은 펜카페가 중심이라 ‘회장단’보다는 ‘운영진’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운영진의 행보에 불만을 갖는 팬들이 주도하는 펜카페 내부 분쟁이 종종 발생한다. 운영진이 불만을 제기하는 회원을 강퇴시키면서 분쟁이 더 커지는 사례도 많다. 과거 아이돌 그룹 소속사가 팬클럽 회장단을 직접 관리하고 초기 팬클럽 빌드업까지 관여했던 이유가 바로 이런 내부 분쟁을 초기에 방지하고 원활한 소통 통로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다 보니 역대급 호황을 누리고 있는 트롯 업계가 그 근간인 팬덤 때문에 오히려 힘겨워할 때도 많다고 한다. 한 중견 가요관계자는 “대부분의 팬들은 조용히 스타를 응원해주는 좋은 분들이지만 거기도 하나의 조직이고 사회다 보니 내부에서 몇몇 분들이 반목하는 일이 생긴다”며 “팬들이 스타에 대한 애정으로 다양한 조언을 하는데 소속사 입장에서도 사정이 있어 이를 다 받아들이긴 힘들다. 그럴 때 운영진을 통한 적절한 소통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미흡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