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곪은 부분 터진 것” 반응 속 “티켓파워 논리 당연” 반론…“완전 자율 경쟁 쉽지 않아, 판단은 대중의 몫”
이로 인해 표면적으로는 뮤지컬계 파장이 진정 국면으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소위 ‘인맥 캐스팅’ 논란은 남았다. 몇몇 스타의 파워와 입김이 작품의 배우 섭외 과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우려다. 반면 일각에서는 “티켓파워 높은 배우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은 어느 정도 용인된 관례”라는 반응도 있다.
#"시시비비 가리기 어려운 문제"
6월 14일 김호영이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아사리판은 옛말이다. 지금은 옥장판”이라고 쓴 글을 두고 적잖은 이들이 “뮤지컬 ‘엘리자벳’ 캐스팅을 놓고 김호영이 옥주현을 저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옥주현과 함께 나란히 엘리자벳 역을 맡게 된 이지혜가 옥주현과 친분이 두텁고, 황제 프란츠 요제프 역으로 낙점된 길병민도 옥주현이 참여한 JTBC ‘팬텀싱어3’에 출연해 옥주현과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과거 두 차례 ‘엘리자벳’에 참여했던 김소현이 빠지게 된 것 역시 납득하기 어렵단 의견이 적잖았다.
이번 인맥 캐스팅 논란을 두고 “곪았던 부분이 터진 것”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이는 남경주, 최정원, 박칼린 등이 6월 22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이런 사태에 이르기까지 방관해 온 우리 선배들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더 이상 지켜만 보지 않겠고, 뮤지컬을 행하는 모든 과정 안에서 불공정함과 불이익이 있다면 그것을 직시하고 올바르게 바뀔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사태에 이르기까지 방관해왔다’는 표현 안에는, 그동안 뮤지컬계에서 자행되는 인맥 캐스팅 문제를 묵과해왔다는 자성이 담겼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어 이들은 “우리 모두 각자 자기 위치와 업무에서 지켜야 할 정도(正道)가 있다. 배우는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찬사를 대표로 받는 사람들이므로 무대 뒤 스태프들을 존중해야 하고, 캐스팅 등 제작사 고유 권한을 침범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옥주현을 직접적으로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특정 배우가 캐스팅에 관여하는 일이 종종 발생해왔다는 의미다.
옥주현은 이번 논란이 고소 사건으로 비화된 것에 대해서는 사과했지만 캐스팅 관여 논란에 대해서는 “‘엘리자벳’의 10주년 공연 캐스팅에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디션을 통해 본인의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이 폄하되지 않기를 바란다. 캐스팅과 관련한 모든 의혹에 대해 공연 제작사에서 사실관계를 명명백백히 밝혀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후 옥주현이 참여한 뮤지컬의 스태프로 일했다는 이들의 갑질 폭로에 이어 반대로 옥주현을 옹호하는 글까지 등장하면서 이번 사태는 여전히 평행선을 긋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시시비비를 가리기 참 어려운 문제다. 단순한 의견 제시와 정도를 넘은 캐스팅 관여의 기준을 명확하게 나누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법 행위라 보기도 어렵기 때문에 수사나 법정 다툼으로 해결되기도 어려운 문제”라면서 “결국 해당 역을 소화할 만한 인지도와 능력, 깜냥을 갖춘 인물이 캐스팅됐는지 여부는 공연을 본 대중들이 판단할 몫”이라고 말했다.
#끼워팔기, 배우들의 일방적 갑질일까
인맥 캐스팅, 소위 ‘끼워팔기’ 논란은 비단 뮤지컬 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출연 배우가 더 많은 드라마, 영화 업계에서도 이를 둘러싼 무수한 뒷말이 오가고 있다.
특히 엄청난 팬덤을 등에 업은 스타를 보유한 연예기획사들의 입김은 대단히 세다. 주연 배우들이 먼저 대본을 받아서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매력적인 몇몇 캐릭터를 ‘찜’한다. 이후 주연 배우의 출연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특정 캐릭터에 같은 소속사에 몸담고 있는 조연 배우나 신인을 기용해달라고 요청하는 식이다.
오디션을 통해 배역을 따내려는 이들의 입장에서 이는 분명한 불공정 거래다. 하지만 티켓파워 강한 배우를 섭외하기 위해서 몇 가지 옵션을 주는 것은 당연한 상업 논리라는 의견도 많다.
한 유력 연예기획사 대표는 “A급 한류스타가 주연 배우로 참여하면 투자가 원활해지고 방송사 편성도 떼어 놓은 당상이다. 게다가 해외 판매가 유리해져 제작사 입장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 모든 수익은 제작사의 몫”이라면서 “이런 상황 속에서 몇몇 배역에 대한 캐스팅 우선권을 요청하는 것은 합리적인 거래의 과정이라 볼 수 있다. 모두가 이익을 낼 수 있는 윈윈(Win-win) 구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합을 맞추는 배우들 입장에서도 평소 친분이 있거나 호흡이 잘 맞는 배우들을 선호한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작품과 각 배역에 대한 제작자, 투자사, 배우, 스태프의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같이 연기하게 될 배우들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연기력이 부족하거나 기획 의도와 전혀 맞지 않는 배우를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면 작품 전체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주연 배우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는 감독이나 작가가 적지 않다”면서 “물론 100% 자율 경쟁 시장이 조성된다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