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영웅’ KT 쿠에바스 퇴출 1호, ‘MVP’ 두산 미란다 교체 암시…한화·KIA도 물갈이
그런 미란다가 올해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올 시즌 3경기에 선발 등판했지만, 도합 7과 3분의 2이닝을 소화하면서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8.22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지난 6월 25일 잠실 KIA 타이거즈전에서 충격적인 제구 난조를 보였다. 등판하자마자 볼넷을 남발하며 무사 만루에 몰렸다. 미란다가 공 15개를 던지는 동안 KIA 타자들은 방망이를 한 번도 내지 않았다.
권명철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와 진정시킨 뒤, 미란다는 나성범을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첫 아웃카운트를 올렸다. 그러나 안정을 찾은 건 잠시뿐이었다. 이후 미란다가 던진 공은 계속해서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났다. 그는 1회 초 2사까지 KIA 타자 9명을 상대하면서 볼넷 6개, 몸에 맞는 공 1개를 허용했다. 안타 없이 밀어내기로만 4점을 내주고 2사 만루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두산은 이튿날 그를 1군 엔트리에서 말소했다.
#미란다 볼넷 퍼레이드
불안한 조짐은 보였다. 미란다는 지난해 정규시즌엔 최고의 투수였지만, 가을 야구에선 어깨 통증 탓에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플레이오프까지는 아예 등판하지 못했고,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야 한 차례 마운드에 올랐다. 처음으로 미란다의 몸 상태에 물음표가 붙었다. 그렇다고 이미 보여준 게 많은 '왼손 파이어볼러' 미란다를 붙잡지 않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미란다 스스로 "오프 시즌에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기에 더 그랬다. 두산은 고심 끝에 미란다를 믿기로 하고 총액 190만 달러(약 25억 원)에 재계약했다.
하지만 올해는 출발 전부터 꼬였다.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보여 입국이 늦어졌다. 시범경기에선 구속이 시속 130km대에 머물렀다. 미란다 자신은 "아프지 않다"고 했지만 두산 코칭스태프는 부상을 의심했다. 미란다는 결국 개막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4월 17일 키움 히어로즈전에 뒤늦게 첫 등판했다. 성적은 4이닝 1피안타 6볼넷 1실점. 구속은 최고 시속 147km까지 나왔고 실점도 적었지만 제구가 너무 불안정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미란다가 돌아왔는데도 웃지 못했다.
그다음 등판도 마찬가지였다. 4월 23일 LG 트윈스전에서 3이닝 2실점 하는 동안 또 다시 볼넷 6개를 허용했다. 피안타는 하나인데, 볼넷으로 주자를 쌓아 2점을 잃었다. 미란다는 다시 "어깨가 아프다"고 했고, 검진 결과 어깨 근육이 미세 손상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후 두 달 동안 몸을 만들고 다시 올라왔지만, 세 번째 등판에서는 아예 1회도 못 채우고 볼넷 퍼레이드를 펼쳤다. 두산은 결국 두 손을 들었다.
두산은 올 시즌 미란다 없이 힘겨운 레이스를 펼쳤다. 로버트 스탁, 최원준, 이영하, 곽빈이 선발진을 지탱했지만, 1선발의 공백을 메우기엔 힘이 부쳤다. 이들 중 경기 평균 6이닝 안팎을 소화한 투수는 스탁뿐이다. 불펜진이 강력한 것도 아니다. 2018년 입단한 정철원 등 새 얼굴을 발굴했지만, 연쇄 과부하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타선도 약화됐다. 지난해 말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박건우가 NC 다이노스로 떠났고, 중심 타자 김재환은 슬럼프를 겪었다. 8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은커녕 가을 야구도 장담할 수 없다.
두산은 미란다 교체를 검토하고 있다. 김태형 감독은 "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기다릴 만큼 기다려줬고 더 이상은 힘들다. 교체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MLB) 역시 투수난이 심각해 쓸 만한 외국인 선수 영입이 쉽지만은 않다. 코로나19 여파로 빅 리그에 부상 선수가 많아지면서 마이너리그 투수들이 여럿 콜업됐다. 한국행을 타진하다가도 MLB나 타 구단의 부름을 받고 미국에 남기로 한 투수가 적지 않다. 또 대체 선수를 데려오려면 잔여기간에 비례한 몸값만 줄 수 있는데, 원 소속구단에 이적료까지 지급하고 나면 선수가 받을 금액이 크게 줄어든다. 좋은 선수를 설득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두산은 5강 한 자리를 놓고 KT 위즈,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와 치열한 순위 경쟁을 하고 있다. 미란다의 대체자를 찾을 때까지 더 뒤처지지 않고 버텨야 하는 숙제를 안았다.
#가장 먼저 떠난 KT의 '쿠동원'
미란다의 위기만 충격적인 건 아니다. KT에서 4번째 시즌을 맞았던 윌리엄 쿠에바스(32)는 올 시즌 10개 구단 외국인 선수 중 가장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부상으로 인한 공백이 길어져서다. KT 입장에선 아쉽지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쿠에바스는 이강철 감독, 동료 선수들과의 관계가 끈끈한 선수로 유명했다. 지난해 국내에서 부친상을 당한 쿠에바스가 코로나19 시국 속에 장례 절차를 밟는 데 애를 먹자 구단과 감독, 선수 모두가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한창 순위 경쟁이 치열한 시점인데도 쿠에바스가 충분히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올 수 있게 배려하기도 했다.
쿠에바스 역시 투혼의 역투로 그 마음에 보답했다. 지난해 삼성 라이온즈와의 정규시즌 1위 결정전에서 사흘만 쉬고 마운드에 올라 7이닝 동안 공 99개를 던지면서 무실점으로 막았다. KT의 1-0 승리를 이끌면서 창단 첫 정규시즌 우승에 마침표를 찍는 활약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한국시리즈 1차전에도 선발 투수로 나서 7과 3분의 2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 기선을 제압한 KT는 4승 무패 일사천리로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KT는 우승의 일등공신 중 한 명인 쿠에바스와 110만 달러에 재계약했다.
올해도 출발은 좋았다. 쿠에바스는 정규시즌 개막전인 4월 2일 삼성전에서 6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그러나 두 번째 등판인 4월 8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5이닝을 던진 뒤 오른쪽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며 이탈했다. 이후 큰 차도 없이 한 달의 시간이 흘렀고, 복귀일조차 특정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그 사이 KT도 하위권으로 처졌다. 무작정 쿠에바스만 바라보며 기다릴 수는 없는 처지였다.
결국 KT는 결단을 내렸다. 5월 18일 쿠에바스와의 결별을 공식화하고 대체 외국인 투수로 웨스 벤자민을 영입한다고 발표했다. 쿠에바스는 이날 수원 케이티위즈파크 1루 쪽 응원단상에 올라 홈 팬들에게 "4년 동안 가족처럼 응원해 줘 고맙다"고 인사했다. 또 "지난해 우승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챔피언의 기운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며 "영원한 작별이 아니다. 내년에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복귀 여지를 남겼다. 이강철 감독도 "쿠에바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얘기했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들어서 아쉽다"며 "건강을 회복하면 내년에도 (영입 후보) 리스트에 올려놓으려고 한다"고 힘을 실었다.
쿠에바스는 방출 뒤에도 한 달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추억을 쌓았다. 이 기간 KT의 배려로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재활훈련을 하기도 했다. 신변 정리를 마친 뒤에는 아내, 아들과 함께 다시 야구장을 찾아 동료 선수들에게 진짜 작별 인사를 했다. KT 선수들은 자신들의 사인이 담긴 대형 액자를 선물했다. 쿠에바스는 야구장 곳곳을 방문해 일일이 인사를 나눈 뒤 "비행기에 타면 눈물이 날 것 같다. 한국에서 좋은 기억만 가져간다. 이곳에 계신 모든 분도 날 좋게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KT가 새로 영입한 투수 벤자민은 2020년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으로 MLB에 데뷔한 뒤 두 시즌 동안 21경기에서 2승 3패, 평균자책점 6.80을 기록한 투수다. 마이너리그 통산 성적은 11경기 32승 29패, 평균자책점 4.60. 올 시즌 시카고 화이트삭스 산하 트리플A에서 선발 투수로 7경기에 나서 2승, 평균자책점 3.82를 기록했다.
기대 속에 마운드에 오른 벤자민은 KBO리그 첫 등판이던 6월 9일 키움전에서 구단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뒤 팔꿈치 통증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이후 1군 엔트리에서 제외돼 부상에서 회복하는 시간을 보냈고, 17일 만인 6월 26일 LG전에서 복귀해 4이닝 7피안타 3실점을 기록했다. 새 리그 적응 기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이는 성적이었다. KT는 발가락 골절로 이탈한 외국인 타자 헨리 라모스와도 빠르게 결별하고 앤서니 알포드를 영입했지만, 아직 눈에 띄는 성과는 얻지 못하고 있다. 잇딴 부상으로 외국인 선수 교체 카드 두 장을 모두 소진했는데, 좀처럼 상승 동력을 얻지 못해 속이 탄다.
#타자들도 안심 못 해
LG 외국인 타자 리오 루이즈는 쿠에바스와 라모스 다음으로 퇴출 통보를 받았다. 루이즈는 2016년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소속으로 MLB에 데뷔한 뒤 볼티모어 오리올스(2019년)와 콜로라도 로키스(2021년)를 거치면서 빅리그 통산 315경기에 출장한 유틸리티 내야수다. 주 포지션은 3루수지만, 1루·2루·외야 수비까지 가능해 활용폭이 넓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혔다. 그 덕에 새 외국인 선수 계약 상한액인 100만 달러에 사인하고 한국으로 왔다. 올해 28년 만의 우승에 재도전하는 LG는 그가 최근 수년간 계속된 '외국인 타자 잔혹사'를 끊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루이즈의 1군 성적은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27경기에서 타율 0.155, 홈런 1개, 6타점을 기록한 게 전부다. 출루율 0.234와 장타율 0.262도 초라했다. 재정비를 위해 2군에 갔지만, 퓨처스리그 성적마저 좋지 않았을 정도다. 결국 LG는 5월 30일 루이즈를 웨이버 공시했다. 그는 제임스 로니, 아도니스 가르시아, 토미 조셉, 로베르토 라모스, 저스틴 보어로 이어지는 LG 외국인 타자의 '흑역사' 리스트에 이름을 한 줄 더 추가하고 떠났다.
이후 LG는 루이즈의 대체 선수로 또 다른 내야수 로벨 가르시아를 발빠르게 영입했다. 미국을 방문한 차명석 LG 단장이 가르시아의 경기를 관전하면서 타격 실력과 수비를 직접 확인했다. 가르시아 역시 내야 전 포지션과 외야수까지 맡을 수 있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다. 양쪽 타석에 다 설 수 있는 스위치 히터이기도 하다. 올 시즌 시카고 컵스 산하 트리플A에서 타율 0.295, 홈런 12개, 30타점으로 맹타도 휘둘렀다. 루이즈의 타격 부진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LG 입장에선 눈이 확 뜨일 만한 성적이다. 가르시아가 받는 연봉은 18만 달러지만, LG는 그의 보유권을 갖고 있는 컵스 구단에 이 금액의 두 배가 넘는 이적료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올 시즌 전력보강에 절실하다는 의미다.
가르시아도 6월 24일 입국한 뒤 무척 의욕을 보였다. "LG가 나를 불러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한국에 오게 돼 기쁘다. 승리를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며 "즐겁고 열심히 야구해서 우승하는 것이 목표다. 야구장에서 팬들을 만날 생각에 매우 신나고 흥분된다"는 소감을 밝혔다. 26일 잠실구장에서 진행한 첫 프리배팅 훈련에서는 좌우 타석에서 모두 여러 차례 타구를 담장 밖으로 넘기며 기대감도 키웠다. 그는 훈련 뒤 "처음 타석에 섰을 때는 '외야 펜스가 저렇게 멀리 있나'라고 걱정했는데 막상 공을 쳐보니 '잘 준비하면 홈런을 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3주 전에 실전을 치러서 일단 감각을 끌어올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 최대한 빨리 KBO리그 1군에서 팬과 구단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짜 데뷔전을 앞두고 부상 악재를 만났다. 6월 28일 훈련 도중 왼쪽 옆구리 통증을 호소했고, 이튿날 병원 검진 결과 출혈 증세가 발견돼 일주일 정도 회복에 전념해야 한다는 의료진 소견을 받았다. 류지현 LG 감독은 "1군 합류를 앞두고 의욕적으로 훈련하다가 다친 것 같다. 정확한 1군 엔트리 등록 시기는 회복 추이를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현재 우리 타자들은 외국인 타자 없이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며 "가르시아의 합류가 지체되더라도 현재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달랬다.
이 외에도 한화 이글스가 외국인 원투펀치 라이언 카펜터와 닉 킹험을 차례로 퇴출하고 예프리 라미레즈와 펠릭스 페냐를 대체 외국인 투수로 영입했다. 카펜터와 킹험은 지난해 활약을 바탕으로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올 시즌 각각 4경기와 3경기에 등판한 뒤 나란히 부상으로 이탈했다. 결국 1군에 복귀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둘의 이탈로 선발 로테이션이 붕괴된 한화는 최하위로 처져 있다.
5강 한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KIA는 외국인 투수 로니 윌리엄스를 내보내고 왼손 투수 토마스 파노니를 새로 영입했다. 로니는 올 시즌 10경기에서 평균자책점 5.89로 부진한 데다, 종종 팀워크를 흩트리는 행동까지 해 논란을 일으켰다. 6월 1일 두산전에서는 포수 박동원의 사인을 여러 차례 거부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제스처를 취했고, 6월 25일 두산전에서는 3과 2분의 1이닝 4실점 뒤 교체되자 서재응 투수코치에게 불만을 표현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결국 부상으로 이탈한 션 놀린보다 '몸은 건강한' 로니가 먼저 퇴출 대상이 됐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