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팬 ‘우타 거포’ 한 풀어줄 유망주…“나도 막강 외야라인 뎁스 메인 되고싶다”
5월 까지만 해도 이재원은 LG 타선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였다. 21경기에 출전해 타율 0.318, 5홈런, 15타점을 기록했고 21개의 안타 중 9개가 장타였다. 하지만 6월 들어 이재원의 페이스가 뚝 떨어졌다. 타율 0.143, 2홈런, 9타점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자 LG 류지현 감독은 이재원을 2군으로 내리면서 타격감을 회복해 다시 올라오길 바랐다.
하지만 당시 일부 팬들은 이재원의 2군행에 크게 반발했다. 가뜩이나 우타 거포에 대한 ‘한’을 품고 있던 팬들로선 이재원의 2군행이 자칫 잘못하면 선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재원은 퓨처스리그에서 5경기에 출전해 19타수 7안타 타율 0.368, 1홈런, 6타점을 기록했고 10일 만에 다시 1군으로 복귀했다.
LG 트윈스 팬들이 우타 거포의 한을 품게 된 건 그동안 우타 거포 육성에 심혈을 기울였음에도 단 한 명도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95시즌 홈런왕 OB 베어스 김상호, 2009년 KIA 우승을 이끌었던 김상현, 키움과 KT에서 KBO리그 최고 거포의 존재감을 확인시킨 박병호, 그리고 2021시즌 두산에서 28홈런을 기록한 양석환까지 이들 모두 LG에서 우타 거포로 기대를 모았다가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 된 후 꽃을 피운 선수들이다. LG에서 타 팀으로 이적 후 잠재력이 대폭발한 우타 거포들로 인해 LG는 ‘한’을 넘어 ‘트라우마’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2018년 신인드래프트 2차 2라운드로 LG에 입단한 이재원은 2020년(13개), 2021년(16개) 퓨처스리그 홈런왕을 차지했고, 올 시즌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개막전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며 한껏 기대를 모았다.
‘잠실 빅보이’란 별명답게 6월 30일 현재 김현수(14개), 오지환(11개)에 이어 팀 내 3번째로 많은 홈런(8개)을 날렸다. 홈런의 비거리가 상당하다. 6월 15일 잠실 KIA전에선 관중석 상단과 파울폴 상단을 맞히는 초대형 홈런을 날렸고, 28일 NC전에선 에이스 구창모를 상대로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비거리 135.7m의 어마어마한 홈런을 터뜨렸다. 이 홈런이 장마철 강한 맞바람을 뚫고 담장을 넘긴 거라 더 큰 화제를 모았다.
이재원은 아직 주전 선수가 아니다. LG의 두터운 선수층으로 인해 퓨처스리그에는 유망주들이 차고 넘친다. 구단 입장에선 한 선수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기보단 치열한 경쟁 구도를 통해 선수들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이런 팀 분위기가 자칫 잘못하면 나이 어린 선수들에게 부담과 스트레스를 안겨주고 기를 꺾게 만든다는 지적도 있다.
이재원은 올 시즌 두 차례 2군행을 경험했다. 처음에는 개막전에 선발 출전했다가 2타수 무안타 삼진 2개로 침묵했다. 이후 2군으로 내려간 그는 5월 6일 다시 1군 무대를 밟았다. 5월 이재원의 활약은 눈부셨다. 타율 0.318, 5홈런을 터뜨리며 우타 거포에 목마른 LG 팬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6월 이후 페이스가 떨어지자 류지현 감독은 6월 13일 이재원을 다시 2군으로 내려 보냈다. 이재원은 전화 인터뷰를 통해 당시 상황에 대해 이런 설명을 곁들인다.
“내가 감독님한테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스스로 실망을 많이 했다. 그로 인해 2군 내려가서도 한동안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는데 이병규, 임훈, 양영동 코치님의 도움으로 타격 밸런스를 찾게 되면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류지현) 감독님이 나를 2군으로 보낸 건 다시 잘 만들어서 올라오라는 의미였다. 2군행을 서운하게 생각하기보단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타격폼을 재정비하는 기회로 받아들이는 게 중요했다.”
어느 순간부터 타석에서 자꾸 조급해졌다고 한다.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경험이 많지 않은 이재원으로선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는 걸 느꼈다. 계속 결과를 내야 꾸준히 경기에 출전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욕심을 키웠고, 상대 투수와의 수 싸움은 물론 유인구에 속으면서 삼진이 늘었다.
“나는 이상하게 단점을 보완하려다 보면 스윙이 작아진다. 그래서 그걸 넘어서려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미리 투수의 볼 배합을 연구한 다음 그 투수의 구종 파악 후 어느 타이밍에 어떤 공을 던지는지를 알게 되면서 조금씩 유인구를 골라낼 수 있었다.”
2군에서 절치부심했던 그는 딱 10일을 채운 후 1군으로 복귀했다. 처음에는 다시 잠실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설렘을 안겨줬지만 이후엔 ‘다시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뒤따랐다고 한다.
LG는 뎁스(선수층)가 두텁다. 따라서 주전 선수들 중 부상자가 나타나면 곧장 대체 선수가 그 자리를 메우는 것은 물론 좋은 성적으로 기존 선수의 공백을 잊게 만든다. 이재원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지난 6월 13일 자신이 2군으로 내려가 있는 동안 문성주가 얼마나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지를 TV로 지켜봤다.
외야수인 이재원은 김현수-박해민-홍창기로 이어지는 국가 대표급 외야 라인이 넘고 싶은 ‘산’이기도 하고, 때로는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주어진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2군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부담감이 크다. 워낙 좋은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자리’에 대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우리 팀 외야 라인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나도 뎁스의 메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갖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을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 팬들이 기대하는 우타 거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