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반납인데다 빚 메우기엔 턱없이 부족…“적자 공기업이 성과급 받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
한전은 올해 1분기 7조 7869억 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한전의 부채비율은 348.35%로 223.23%였던 작년 말보다 125.12%포인트 늘어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한전이 올해 20조~30조 원의 적자가 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전은 적자를 개선하기 위해 부동산 매각, 긴축 경영, 해외사업 구조조정 등 재무개선 계획을 제출했지만 한전의 재무 상황을 개선하는 데 큰 효과는 없어 보인다. 지난 7월 1일부터 전기요금을 kWh(킬로와트시)당 5원 인상했지만 적자 폭을 줄이기에는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 한전이 발표한 성과급 반납 결정도 마찬가지다.
지난 6월 20일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를 열고 130개 공공기관의 2021년 경영실적을 발표했다. 공운위는 한전의 자구노력이 부족하다며 한전과 9개 자회사의 기관장·감사·상임이사에게 성과급을 자율 반납하라고 권고했다. 한전과 한국남동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동서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중부발전, 한수원, 한국전력기술, 한전KPS, 한전KDN 이 성과급 반납 대상이다. 최상대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한전 경영 상태의 책임성 확보 차원에서 기관장을 포함한 임원들에 대한 성과급 자율 반납을 권고한 것”이라고 밝혔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한전의 여러 자구 노력 등에 대해 점검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한전 스스로 왜 지난 5년간 한전이 이 모양이 됐는지 자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재부의 성과급 반납 권고가 있자마자 한전은 현재 재무위기 극복과 전기요금 인상 최소화를 위해 정승일 한전 사장을 포함한 경영진이 2021년도 경영평가 성과급을 전액 반납하고, 1직급 이상 주요 간부들도 성과급 50%를 반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전과 함께 성과급 반납을 권고받은 자회사들도 전력그룹사의 재무적 위기 극복에 적극 동참하겠다며 줄줄이 성과급을 반납 결정을 내렸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 시스템 알리오와 한전 등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해 사장에게 경영평가 성과급 9315만 원을 지급했고, 상임감사와 상임이사에게 각각 6210만 원, 6219만 원을 지급했다.
문제는 성과급 반납이 의무가 아닌 자율이어서, 한전의 재무상황 악화에 대한 책임과 자구노력의 의지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이 들게 한다. 물론 기재부와 공운위가 '자율반납'을 권고했지만 대상자들이 고개를 저으면 그만이다. 이미 그런 징조는 보이기 시작한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한전 자회사에 다니는 한 직원이 ‘임기 몇 달 안 남은 상임감사가 성과급을 반납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한전 관계자는 “회사가 적자니까 이를 위해 성과급 반납에 참여하는 것”이라면서 “반납 동의서를 받아서 진행하는데 강제가 아닌 자율이라 동의서에 체크하지 않으면 반납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경영평가급은 9월과 12월에 나누어 지급될 예정이라 아직 반납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한전 자회사들은 대부분 성과급 반납에 대해 자율반납이라는 의사를 밝혔으며 성과급의 몇 퍼센트(%)를 반납할지, 몇 명이 반납할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국남동발전 관계자는 “성과급 반납을 정부에서 의무사항으로 전달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동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력기술 관계자는 “성과급이 아직 지급된 상태가 아니어서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식으로 반납할지 등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한전의 경영진과 자회사들이 성과급을 반납하는 것은 도의적인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전력 도매가격이 50~100% 올랐는데 전기요금은 한 8~9%밖에 오르지 않다 보니 적자를 볼 수밖에 없다”며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은 전기요금을 대폭 올리는 것이지만 물가 상승 때문에 쉽지 않아 정부가 세금을 깎아주거나 재정 보조금을 넣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양준모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적자 공기업이 성과급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성과급 반납으로 적자를 해소하려 할 게 아니라 탈원전 및 보조금 전가 정책의 근본적 개혁과 전력가격·전력수급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