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파업’ 논란으로 제1노조 바뀐 뒤 강대강 대치…LTR성형기 가동 놓고 폭행 사건에 고소전까지
#한국타이어 제1노조 뒤바뀐 배경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타이어를 대표했던 노조는 한국노총 전국고무산업노동조합연맹(고무노조) 소속의 한국타이어 노조였다.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가 2014년 탄생했지만 조합원 숫자에서 한국타이어 노조에 밀렸다. 한국타이어지회는 임금피크제 등 임금 체계에 불만이 있는 직원들을 중심으로 구성됐지만 노사 임금 협상은 제1노조인 한국타이어 노조가 맡았다.
한국타이어는 그간 무분규 경영으로 유명했다. 심지어 2020년에는 한국타이어 노조가 사측에 임금교섭을 위임하기도 했다. 이수일 한국타이어 사장은 당시 “코로나19를 비롯해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 등 불확실성 증가가 계속되는 가운데 경영 환경 위기를 같이 극복하고자 사측에 임금교섭조정 권한을 위임해준 노조에 당혹스럽지만 감사하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상호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모든 역량을 결집해 경쟁력 제고를 통한 경영 정상화를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한국타이어 노조가 지나치게 친기업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를 의식했는지 한국타이어 노조는 지난해 임금 협상에 실패한 후 59년 만에 대규모 파업에 나섰다. 한국타이어 노조는 지난해 최근 5년 동안 임금 인상률이 2~3%대였고, 2020년에는 동결됐다는 이유로 임금 10.6% 인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측은 최근 타이어업계의 어려움을 이유로 연봉 5% 인상과 성과급 500만 원을 제시했다.
한국타이어 노사는 지난해 12월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조정위원회에서 ‘임금 6% 인상, 성과급 500만 원, 협상 타결금 200만 원 지급’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합의 과정에서 한국타이어 노조위원장이 조합원들의 의견을 묻지 않고 직권조인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직권조인은 노조위원장이 조합원들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거나 그 뜻에 반해 단체협약을 맺은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한국타이어에 쌓인 재고가 많아 생산량을 조절하기 위한 ‘기획 파업’이었다는 음모론까지 나돌았다. 불만을 가진 조합원들은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로 소속을 옮겼고, 한국타이어지회는 올해 1월 조합원 수에서 한국타이어 노조를 앞질렀다.
한국타이어지회는 “한국타이어는 지난 59년간 어용노조의 오명으로 얼룩졌고, 어용의 굴레를 벗기 위해 파업을 결정하고도 직권조인이라는 비민주적 행태를 보였다”며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는 이제 당당히 과반수 노조로서 2022년 단체교섭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LTR성형기가 뭐길래
한국타이어지회가 제1노조가 되면서 노사 간 갈등의 수위가 높아졌다. 한국타이어지회는 올해 3월 “노동부 역학조사 결과 한국타이어는 타 사업장에 비해 뇌심혈관 발병률이 5.5배 높게 나타났다”며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예방책 마련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에는 한국타이어 노사 간 폭행 사건까지 발생했다. 한국타이어는 지난 1일 한국타이어지회 조합원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한국타이어는 한국타이어지회가 지난 6월 무단으로 공장 시설의 가동을 멈춰 3억 원가량의 손해를 입혔고, 이 과정에서 사측 관계자를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한국타이어지회가 가동을 멈춘 시설은 트럭용 타이어를 제조하는 기계인 LTR성형기다. LTR성형기는 2020년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사망 사고를 일으킨 기계다. LTR성형기에는 안전센서가 설치돼 있고, 작업자가 다가가면 센서가 이를 인식해 자동으로 기계 작동이 멈춘다. 하지만 당시 안전센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비극적인 사고로 이어졌다.
한국타이어지회는 최근에도 LTR성형기의 안전센서가 오작동했다고 주장한다. 한국타이어지회에 따르면 사측과 안전센서를 공동으로 점검했고, 그 결과 벨트드럼이 회전할 때 센서가 작동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안전센서에 대한 조치 완료 후 설비를 가동할 것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는 것이 한국타이어지회의 주장이다. 또 이 과정에서 폭행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했지만 한국타이어지회 관계자 역시 폭행을 당했다며 쌍방폭행을 주장했다.
한국타이어지회 측은 “시비를 걸기로 작정한 (사측 인사인) A 팀장의 행동으로 인해 지회장이 순간적으로 발로 정강이를 차자 A 팀장은 지회장의 뺨을 때렸다”며 “(LTR성형기 관련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 상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와 상황에 놓여있었지만 사측은 노조가 강제로 설비를 중지시키고, 가동을 막은 것처럼 사실 관계를 왜곡한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설비의 비상 가동 중단은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정지하는 것”이라며 “당시 위급한 상황이 있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첨예한 노사 갈등은 한국타이어의 실적을 흔들 가장 큰 불안 요소로 꼽힌다. 타이어 업계의 특성상 안정적인 인력 운용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타이어업계 관계자는 “타이어 산업의 경우 고무의 가공특성상 전체 공정을 자동화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며 “상당부분 인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노동집약적 산업”이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있고, 반도체 부족 현상 때문에 자동차 판매량마저 줄어들고 있다. 한국타이어의 올해 1분기 매출은 1조 7906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8%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260억 원을 기록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32.2%나 감소했다. 특히 대전과 금산공장 등 국내공장의 경우, 총파업 여파와 코로나19 재확산 등의 영향으로 전년 동기 대비 영업손실이 두 배 이상 확대됐다.
이와 관련, 앞서의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앞으로 노사가 원활히 소통해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도록 노력할 계획”이라면서도 “회사 내 폭행은 용납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