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표 총력 대응 예고했지만 사법리스크 남아…여권 내홍 심화 전망, 정무적 기능 부재 비판도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7월 8일 성상납 증거인멸교사 의혹을 받는 이준석 대표에 대해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중징계를 결정했다. 윤리위는 7일 오후 7시 국회 본관에서 회의를 열어 2시간 50분간 이 대표의 소명을 듣고 내부 논의를 거친 뒤, 심야 마라톤 회의 끝에 약 8시간 만인 8일 새벽 2시 45분쯤 결과를 내놓았다.
이양희 윤리위원장은 징계 결정 사유에 대해 “이준석 당대표 이하 당원은 윤리규칙 4조 1항에 따라 당원으로서 예의를 지키고, 자리에 맞게 행동해야 하며, 당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언행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 근거했다”며 “이준석 당원은 김철근 당대표 정무실장이 지난 1월 대전에서 의혹 제보자 장 아무개 씨를 만나 성상납 관련 사실확인서를 받고 7억 원 상당 투자유치약속 증서를 작성해준 사실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소명했다. 하지만 윤리위가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위 소명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김철근 정무실장을 통해 성상납 의혹 사건 관련 증거인멸에 나섰다는 의혹을 윤리위가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위원장은 “징계 심의 대상이 아닌 성상납 의혹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며 “그간 이준석 당원의 당에 대한 기여와 공로 등을 참작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윤리위는 이 대표 측근으로, 증거인멸 의혹에 연루된 김철근 정무실장에 대해서는 ‘당원권 정지 2년’이라는 고강도 징계 결정을 했다.
지난 4월 21일 윤리위의 징계 절차 개시 결정 78일 만이다. 이준석 대표의 ‘성상납 의혹’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유튜브채널 ‘가로세로연구소’ 제기로 처음 불거졌다. 이 대표가 2013년 사업가로부터 대전 유성구의 한 호텔에서 두 차례 성접대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 대표는 “나와 관계없는 사기사건에 대한 피의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공격한 것”이라며 “나는 단 한 번도 수사를 받은 적도, 이와 관련해 어떤 연락도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가세연 측은 지난 4월 녹취록 및 문서를 공개하며 “이준석 대표 측근 김철근 정무실장이 의혹 제보자 장 씨를 찾아와 7억 원의 투자유치 각서를 주면서 ‘성상납이 없었다’는 취지의 진술서를 써달라고 했다”면서 증거인멸교사 의혹까지 주장하며 당 윤리위에 제소했다. 이에 이 대표는 “김 정무실장은 변호인의 부탁으로 진실된 내용의 사실확인서를 받으려고 하였을 뿐”이라고 주장이 허위임을 재차 강조했다.
이준석 대표 중징계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윤심’이 강하게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이 당대표 비서실장직을 사임하면서 이에 무게를 더했다. 박 의원은 지난 6월 30일 사퇴 결심 배경에 구체적 언급 없이 ‘일신상의 이유’를 들어 비서실장직을 내려놨다. 임명된 지 3개월여 만이다. 대표적 ‘친윤계’로 분류되는 박 의원은 윤 대통령이 과거 대구고검에 좌천됐을 때 울산중구청장으로 만나 교류하며 친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준석 대표가 지난 3월 박성민 의원을 당대표 비서실장에 임명하려 하자, 박 의원은 맡지 않겠다고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고 한다. 이에 이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에 설득을 요청했고, 윤 대통령이 가교 역할을 부탁해 박 의원이 수락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렇게 윤 대통령이 비서실장 역할을 맡겼는데 박 의원이 본인의 결심만으로 직을 내려놓을 수 있겠느냐. 윤 대통령의 암묵적 동의·언질이 있었다고 본다”고 귀띔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윤핵관들은 대선 과정부터 이준석 대표에 불만이 많았지만 선거 승리를 위해 내색하지 못했다. 이제 대선과 지방선거가 끝났다. 더 이상 이준석 대표를 품고 갈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당내에서도 이 대표를 손절하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이준석 대표 역시 최근 징계 가능성에 위기감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는 말이 나왔다. 이 대표가 윤 대통령 측을 향해 손도 내밀고 협박도 하고 한 것은 징계 국면 이면에 윤 대통령과 윤핵관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준석 대표의 징계와 관련해 선을 그었다. 윤 대통령은 8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저도 국민의힘 당원 한 사람으로서 참 안타깝다”면서도 “대통령으로서 당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이양희 위원장 역시 7일 윤리위에 앞서 “요즘 너무 터무니없는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며 “윤리위원들은 어떤 정치적 이해득실도 따지지 않고 오롯이 사회적 통념과 기준에 근거해 사안을 합리적으로 심의하고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가 징계를 피하긴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주를 이루긴 했다. 하지만 윤리위가 성상납 관련은 다루지 않았음에도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중징계를 결정한 것은 의외라는 반응이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윤리위는 수사기관이 아니다. 정무적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곳”이라면서 “당을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수 있는 중징계보다는 경고 수준의 징계를 내렸으면 했다”고 아쉬워했다.
이준석 대표가 윤리위 중징계를 받으면서 당대표직 유지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당장 당원권 정지 징계 효력이 시작되면서 당헌에 따라 권성동 원내대표가 당대표 직무대행을 맡게 됐다. 당 안팎에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조기 전당대회 개최 등 여러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차기 당권 주자로 꼽히는 김기현 전 원내대표와 안철수 의원 등이 이미 몸을 풀고 있다는 말까지 전해지고 있다.
동시에 이준석 대표 중징계로 인한 우려도 당 내에서 제기된다.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6070세대라는 전통적 지지층 외에 ‘이대남(20대 남자)’이라는 새로운 지지층을 확보한 점이 선거 승리의 한 요소로 작용했다. 여기에 이 대표 공이 컸다는 데엔 큰 이견이 없다. 그런데 이 대표가 대표직에서 쫓겨난다면 ‘이대남’의 이탈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렇게 되면 최근 일어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 ‘데드크로스’ 상황이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7월 5일부터 7일까지 자체 조사한 ‘윤석열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 여론조사 결과 ‘잘못하고 있다’가 49%로, ‘잘하고 있다’ 37%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두 응답 간 격차는 12%포인트(p)로 오차범위 밖이다. 전화면접 조사에서도 ‘데드크로스’가 발생 지지율이 30%대를 찍은 것이다. 특히 20대(18~29세)의 경우 ‘잘하고 있다’는 전주 대비 42%에서 35%로 7%p 급감했고, ‘잘못하고 있다’는 38%에서 43%로 상승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이준석 대표가 당의 징계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내홍은 불가피하다. 더 나아가 ‘반윤’ 투쟁에 동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6월 12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흑화하지 않도록 만들어 달라”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 이 대표는 대표직에서 물러나지 않고 총력 대응에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 대표는 8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수사기관의 판단이나 재판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라 윤리위가 처분 내리는 것이 지금까지 정치권에 통용되던 관례”라며 “제 것만 쏙 빼서, 수사 절차가 아직 시작되지 않은 상황에서 (윤리위가 중징계를) 판단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좀 의아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처분이 납득 가능한 시점이 되면 그건 당연히 받아들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가처분이라든지 재심이라든지 이런 상황들을 판단해 모든 조치를 하겠다”며 자진 사퇴 의향에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징계를 뒤엎고 대표직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대표는 윤리위 재심 청구, 징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윤리위가 재심 청구를 기각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과거 사법부가 정당 문제에 최대한 관여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가처분 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국민의힘 당규에 ‘당대표가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는 최고위원회 의결을 거쳐 윤리위 징계 처분을 취소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이를 위해선 최고위 과반의 찬성이 필요한데 제척 사유 등 논란으로 쉽지 않을 거란 관측이다.
물론 이준석 대표는 당원권 정지 징계에도 6개월 후 대표직에 복귀할 수 있다. 당대표 권한이 정지되는 것이지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 이 대표 역시 집권여당 대표의 공백에 따른 사퇴 압박이 거세지겠지만 대표직을 유지할 것으로 점쳐진다. 하지만 당 내부에서는 최고위원들이 줄사퇴해 최고위 구성 요건이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 지도부를 해체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당대표직을 유지할 수 없게 되면 이 대표가 방송과 SNS 등 다양한 경로로 자신의 활동과 입장을 밝히고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이준석 대표 입장에서는 이미 윤석열 정부를 ‘실패한 정부’로 판단했을 것이다. 더 함께 가서는 자신의 정치적 운명도 없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선긋기에 나서고 ‘반윤’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그럼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골치 아파질 것”이라고 전했다.
더 나아가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대표의 신당 창당 가능성도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 대표가 국민의힘에서 중징계를 취소시키거나 당대표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소장파들과 함께 나가 개혁 민생을 앞세워 신당을 만들 수도 있다. 앞으로 2년 가까이 선거가 없어 큰 자금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 대표가 이대남의 지지만 계속 끌어안고 간다면,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은 이 대표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그럼 이 대표는 당대표로 체급을 유지한 채 당에 복귀도 가능하다. 지난 총선에서 미래를향한전진4.0 당대표로 미래통합당과 당대 당 통합을 이뤄낸 이언주 전 의원 모델로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앞서 야권의 관계자는 “이준석 대표가 아무리 젊은 남성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는다고 해도 독자 창당은 불가능하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거대양당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걸 이 대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특히 이준석 대표의 징계사안은 다른 것도 아니고 성비위다. 정치적 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 측에서 이 대표가 비판의 목소리를 내도록 지켜보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야권의 한 전략통은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 윤리위가 무리해서 징계절차를 추진할 이유가 없다. 경찰 수사결과가 나오면 이에 맞게 징계를 결정하면 된다. 왜 당 윤리위가 경찰 수사보다 먼저 중징계를 내렸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경찰 입장에서 집권여당의 현직 당대표를 수사하기는 난감하다. 그런데 당에서 대표를 끌어내리면 상대적으로 경찰이 부담을 덜 수 있지 않느냐. 이번 징계의 정치적 의미는 법적 처벌까지 깊게 들어간다는 전제가 형성돼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에겐 아직 사법 리스크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실제 이 대표에게 성접대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는 법률대리인 김소연 변호사를 통해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이 대표를 20차례 넘게 접대했다” “성상납 구체적 정황과 장소, 접대여성 신상까지 진술했다” “이 대표로부터 ‘박근혜 시계’를 선물로 받았다” “이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날 수 있도록 힘써주겠다” 등의 진술을 공개하며 이 대표의 수사 가능성을 압박하고 있다.
이처럼 이준석 대표의 중징계 결정에도 여권 내홍은 일단락되지 않고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정부 여당의 정무적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으로 연결된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이준석 대표가 징계를 받는다고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것은 뻔히 예상되지 않았느냐. 글로벌 경제위기 우려로 국내도 고금리·고물가·세금 인상 등 국민들의 삶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여당이 서둘러 민생을 챙겨야 한다. 이 대표와 분란이 길어지면 국정운영 지지율은 더 떨어질 것이다. 왜 이렇게 어리석은 대결 국면으로 가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며 “윤 대통령 의중이 이 대표에 중징계를 내리고 당대표에서 끌어내리는 데 있다고 해도 윤핵관 등에서 내홍 차단을 위해 정무적 판단으로 끊어냈어야 한다. 국민의힘에서 윤 대통령에 대해 전혀 컨트롤이 안 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