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징계 이후 ‘앙숙’ 안철수 당권 향해 본격 몸풀기…양측 연대 성공해도 넘어야 할 산 많아
#바빠지는 안철수
7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의원총회를 방불케 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안철수 의원실이 주최·주관한 ‘글로벌 경제위기와 우리의 대응방향’이라는 토론회에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줄지어 참석한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약 40명의 여당 의원들이 자리했다.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배현진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를 비롯해 정진석·정점식 의원 등 친윤계 의원들도 다수 찾았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제1차관,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등 무게감 있는 정부 측 인사들도 나와 토론에 참여했다.
특정 의원실이 주최하는 정책 토론회는 참석자가 많지 않은 것이 국회 일상적 풍경이다. 하지만 이날 안 의원 주최 토론회는 예외였다. 행사에 참석한 국민의힘 한 의원은 “누가 뭐래도 의원총회급”이라고 말했다. 안 의원의 위상을 보여준 대목이었다.
공교롭게 이날 토론회는 이준석 대표의 당 중앙윤리위 징계 결정이 내려진 직후 열려 주목도가 더 높았다. 안 의원과 ‘앙숙’이라고까지 불리던 이 대표가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상태에서 안 의원의 토론회가 열리자 상대적으로 안 의원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진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국민의당 공동정부의 동업자이자 대통령직인수위원장까지 지냈던 안 의원이 6·1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재입성한 뒤, 이날 토론회를 시점으로 본격 몸풀기를 시작한 것으로 해석한다.
평소 조심성 많은 성격답게 안 의원은 갈등관계 조성 분위기는 한껏 피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안 의원은 이날 행사 후 기자들과 만나 ‘세를 결집한다’는 해석에 대해 “이 기획을 발표한 건 윤리위 결정 훨씬 전이다. 많은 분들 섭외와 시간 약속을 위해서는 한 달 전부터 기획해야 한다. 매주 4주에 걸쳐 하는 만큼 훨씬 이전부터 준비했다”고 반박했다.
특히 안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코드를 맞추는 모양새다. 그는 논란이 되고 있는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과 관련해 7월 14일 자신의 SNS를 통해 “2019년 11월 2일 북한 주민들은 귀순 의사를 밝혔음에도 사흘 만에 추방됐고, 그 직후인 11월 25일 청와대는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부산에서 열리는 아세안 회의에 초청 친서를 보냈다”며 “당시 문(재인) 정권의 북한 눈치 보기의 또 다른 결과물이었고, 안보 농단 중 하나”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북송한 것은 처음”이라며 “제게 그 소식은 자체가 경악과 놀라움이었고, 한국에 정착한 3만여 탈북민들에게도 엄청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 의원은 결국 윤 대통령에게 밀착해 윤심을 사로잡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된다. 때문에 안 의원의 최근 발언을 보면 ‘인수위원장’ ‘국정과제’ 등 윤 대통령과의 연결고리를 최대한 부각시키려는 노력이 감지된다. 지난 12일 토론회 모두 발언에서도 “인수위원장을 하면서 110대 국정과제를 만들었는데 직후부터 여러 상황이 굉장히 바뀌었다”며 경제위기, 코로나19·원숭이두창 등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거론했다.
윤 대통령을 자주 만나본 안 의원은 정치적 의리를 중시하는 윤 대통령의 속내도 충분히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공동정부의 가치를 중시하는 만큼 정치적 배려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친윤과 결국 동맹?
‘굴러온 돌’인 안 의원은 당내 주류 친윤 그룹과의 동맹을 통해 당권을 획득할 수밖에 없다. 실제 안 의원은 6월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에 참석, 이 같은 향후 경로 설정 계획을 적극적으로 내비쳤다.
혁신포럼은 대표적 ‘윤핵관’인 장제원 의원이 지난해부터 대표를 맡고 있는 국민의힘 당내 의원모임이다. 역시 대표적 윤핵관인 권성동 직무대행을 비롯해, 윤한홍 이철규 배현진 의원 등 당내 친윤계가 다수 참여하고 있다. 안 의원은 혁신포럼 행사장에서 장 의원과 권 직무대행, 정진석 국회부의장 등과 나란히 맨 앞좌석에 앉는가 하면, 장 의원의 즉석 요청에 따라 권 원내대표·정 부의장에 이어 세 번째로 축사를 하기도 했다. 윤핵관과의 친밀도를 과시한 장면이다.
또한 안 의원은 합당 과정에서 합의된 국민의당 몫 최고위원으로 국민의힘 ‘친윤계’ 정점식 의원을 추천, 친윤 그룹과의 동맹을 추진 중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윤 대통령의 검찰 선배이자 부산·경남(PK) 출신인 정 의원을 추천한 이유가 장제원 의원과의 적극 교감 후에 나왔다는 것이다.
최근 가시화되고 있는 윤핵관 간의 분화가 안 의원에게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당사자들은 “우리는 형제급”이라며 갈등설을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윤핵관의 핵심인 권성동 직무대행과 장제원 의원 사이가 멀어졌다는 말이 끊임없이 나온다. 권 직무대행과 장 의원이 당권을 놓고 분열한다면 안 의원이 그 틈새를 파고들 수 있다.
윤핵관 입장에서도 압도적 지지를 받는 윤핵관 단일 당권 주자가 나오지 않는 이상, 안 의원과의 동맹을 통해 그를 밀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안 의원은 합당 과정에서 데리고 들어온 식구가 거의 없다. 안 의원이 당권을 잡았을 때 윤핵관과 자리를 놓고 격렬하게 충돌할 지점이 상대적으로 적은 셈이다.
더욱이 인지도 측면에서 현재 국민의힘 현역 의원 중 안 의원을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평가다.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돌풍이 보여줬듯이 일반 여론조사까지 포함된 당대표 선거에선 인지도를 무시할 수 없다. 결국 안 의원과 친윤 그룹의 동맹 가능 여부는 ‘윤심’이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권한이 강한 한국 정치 지형상 집권당 내부 의사 결정에 대통령의 의중이 크게 관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대통령 임기 초반에 새 대표가 결정되는데 이렇게 되면 윤 대통령 생각이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단일화 과정에서 마음고생은 많았지만 단일화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장까지 안 의원에게 맡겼던 점을 감안하면 안 의원에 불리하지 않다”고 했다.
#동맹 맺어도 앞길 험난
안철수 의원이 혹여 친윤 그룹과 연대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차기 대선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돌발변수 생성 가능성이 널려있는 데다, 무엇보다 한국 정치사를 볼 때 정치권의 동맹은 오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남은 짧기만 했고, 이별은 이내 찾아왔다.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는 DJP연대만 봐도 공동정부까지 이뤘지만 결국 대통령 임기 말까지 지탱하지 못한 채 깨졌다. 지난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DJ)의 새정치국민회의와 김종필(JP)의 자유민주연합은 공동정부를 구성하기로 의기투합하면서, 그해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만들어냈다.
김종필을 국무총리로 내세우며 공동정부로 순항하는 듯했던 DJP연합은 대통령 집권 2년차인 1999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DJP연합의 핵심 과제였던 내각제가 진척을 보지 못하자 김 대통령과 김 총재의 갈등은 커져갔고, 김대중 대통령의 간판인 햇볕정책에 대해 김 총재가 반기를 드는 사태로까지 악화하면서, 2001년 DJP연합은 최종적으로 붕괴됐다.
다른 동맹 역시 초단기 연대로 끝났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는 노무현 후보로의 단일화를 이뤘고, 정몽준 후보는 단일화 이후 노무현 후보 선거운동까지 나섰다. 하지만 투표일 바로 전날 밤 지지를 전격적으로 철회했다. 지지 철회에 대해 겉으로는 외교정책상의 이견이라고 했지만, 정 후보가 노 후보에 대한 감정이 상했다는 것이 주변의 해석이었다.
“연대와 동맹 맺기 과정에는 보상이 있어야 한다. 정치가 자원봉사는 아니지 않느냐. 깨어진 DJP연대와 달리 안 의원이 (당권을 잡은 후) 보상 관리를 잘해나간다면 동맹 가능성이 충분하고 지속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여당은 굉장히 큰 조직이고 이해관계가 복잡해 안 의원이 예전 행동처럼 혼자 관리를 다 하려고 든다면 큰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전직 의원의 조언이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