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수사 확대 필요’ vs ‘총장의 눈과 귀’ 엇갈린 시선…“범죄 정보만 수집 ‘가이드라인’ 설정 중요”
문재인 정부 들어 대폭 축소됐던 범정 라인이 다시 살아나는 셈이다. 이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공언했던 바다. 이는 각 정부마다 검찰에 기대하는 바를 보여주는 핵심 정책이기도 하다. 검찰의 인지 수사를 줄여야 한다고 봤던 문재인 정부가 범죄 정보 수집 축소를 지향했다면, 윤석열 정부는 인지 수사 확대를 추구하는 셈이다. 자연스레 법조계와 재계에서는 “특수부 등이 주도하는 직접 수사가 등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범정의 역할은 공식과 비공식으로 나뉜다?
범죄정보 수집을 줄여, ‘범정’이라고 불리는 정보관리담당관실은 그동안 승승장구하는 요직 중 요직이었다. 1999년 설치된 이래 범죄·수사 정보를 수집해 부정부패·비리 범죄 수사를 가능하게끔 만든 핵심 부서다. 당연히 검찰 내 최정예 수사관들로 구성됐다. 기업과 국회, 언론 등과 접촉하며 범죄·수사 정보를 수집해 일선 부서(주로 특수부)들이 수사를 착수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이는 대외적으로 알려진 역할이었고, 실제로 담당하는 주요 역할은 또 있었다. 검찰총장의 ‘눈과 귀’다. 옛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차장검사급) 시절 그러했는데, 검사장 승진을 앞둔 이들은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 수집된 정보 등을 토대로 검찰총장에게 조언을 하곤 했다. 특히 국정감사 등을 앞두고는 수사관들이 범죄정보보다는 검찰을 둘러싼 각종 이슈 및 이에 대한 국회 분위기 파악에 더 집중했던 적도 있다. 검찰총장이 범죄정보기획관을 불러, 대응 방향 등에 대한 조언을 요청하면 의견을 제시해야 했던 자리였다. 그만큼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은 검찰총장에게 중요한 사람이었고, 당연히 기획통 중에서도 ‘에이스’들이 가는 요직이 됐다.
검찰의 인지 수사 축소·검찰총장 역할 축소를 지향했던 문재인 정부는 수사정보정책관실의 규모와 역할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했다. 일단 범정(범죄정보기획관실)에서 수사정보정책관실로 개편하며 규모를 줄였다. 40명에서 20명 수준으로, 절반 가까이 축소됐다. 추미애·박범계 전 법무부 장관을 거치면서 정보관리담당관실(부장검사급)로 격하됐다.
수사 외 정보는 다룰 수 없도록 제한하는 방향으로의 개혁도 추진했다. 수사 관련 정보를 △생성 △검증 △처리(수사 지휘)하는 업무를 각각 분리했고, 수사정보담당관을 폐지해 수사 정보의 수집과 검증 기능을 이원화했다. 검사가 수사를 개시하기 힘들다고 판단하는 범죄와 관련된 수사 정보만 수집하는 방향으로 정보 수집 범위도 제한했다.
10년 넘게 범정 라인에서 전문성을 확보했던 수사관들을 전혀 상관없는 보직으로 대거 보내면서 적지 않은 불만이 제기됐다. 이 과정에서 2017년 범정 라인 컴퓨터를 압수수색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범정 라인 담당자들 사이에서 “우리가 불법적인 정보를 수집했다는 거냐”는 반발 속에 사기가 땅에 떨어지기도 했다. 당시 대검에서 근무했던 한 검찰 관계자는 “인지 수사를 해야만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확인하는 역량이 생긴다”며 “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등의 고발만으로 수사가 이뤄지면 검찰 내 부패·경제범죄 수사 역량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비정상의 정상화? '검수완박' 9월 시행 앞두고…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 개혁 방향을 ‘비정상’으로 분류하고 있는 현 검찰 수뇌부들은 대검 범정 라인의 부활을 추진 중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취임 전부터 ‘범정 라인 강화’를 예고하기도 했다.
그리고 7월 18일, 법무부는 범죄·수사 정보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한 5·6급 수사관을 대검 정보관리담당관실에 파견 근무토록 하며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과거 검찰의 인지·직접 수사는 범정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뤄졌던 만큼 ‘검찰의 직접 수사 확대’가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안팎에서는 직제 개편을 통해 현재 부장검사급이 맡는 정보관리담당관을 다시 차장검사급으로 격상해 수사정보정책관실로 조직을 재편하는 안도 거론되고 있다. 다만 법무부에서는 이에 대해 “아직 논의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럼에도 ‘조직 개편 필요성’에 대해 동의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범정 라인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한 변호사는 “지금 당장 수사하기 위한 첩보를 모으는 경우도 있지만, 특정 이슈가 터졌을 때 관련 첩보들을 정리해서 보면 사안에 대해 더 많은 이해를 도모할 수 있는 경우가 있더라”며 “부장검사급이 이를 담당하는 것보다는, 수사 지휘 경험이 더 많은 차장검사급이 맡는 게 더 제대로 된 지시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현 정부에서는 일련의 검찰 관련 개혁을 ‘비정상화의 정상화’로 보고 있고, 범정 라인 강화도 이에 해당하는 조치들”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이어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에는 범정이 기초적인 첩보를 넘겨주면 이를 토대로 일선 부서들이 계좌·통신기록 등을 통해 수사 여부를 판단하는 ‘시발점’ 역할을 했기 때문에 범정 라인의 첩보는 굉장히 중요했다”며 “윤석열 대통령이나 한동훈 장관 모두 과거 특수부 시절을 기억하며 범정 라인 부활을 추진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우려도 적지 않다. 검찰의 직접 수사를 부패·경제범죄로 한정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이 오는 9월 시행된다. 때문에 대검 범정 라인을 부활하는 게 적절하냐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재판소에서 이뤄지고 있는 검수완박법 권한쟁의 심판 등 추이를 지켜보면서 검토해도 늦지 않다는 반응이 나오는 대목이다.
앞선 범정 라인 근무 경험이 있는 변호사는 “범죄 정보만 수집하고, 범죄 정보만 정리해서 수사팀에 넘겨주는 구조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고 순기능만 하는 게 맞다”면서도 “문제는 전문적인 정보 수집 라인을 동원해 수사정보와 관계없는 검찰총장 개인이나 검찰 전체의 현안과 관련된 정보를 모아오기 시작하면서 발생한다.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을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잘 설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