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리지 극대화가 발목 ‘코인판 서브프라임’…셀시우스가 베어스턴스, 테더가 리먼 브러더스인 셈
시장을 충격에 빠트린 사건은 지난 6월 13일 Ce-Fi(가상자산 시장 금융) 업체 셀시우스가 입출금 중단을 선언하면서다. 가상자산 투자자 A 씨는 이를 두고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거대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의 몰락으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셀시우스가 파산 직전으로 몰리면서 가상자산 시장에 핵폭탄이 떨어진 것 아니냐는 추측이었다. 투자 관련 유튜브 ‘김단테’ 채널을 운영 중인 김동주 이루다투자일임 대표도 “연쇄적인 하락이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라고 봤다.
가상자산 시장 대출 서비스 업체 셀시우스는 De-Fi(탈중앙화 금융)가 아닌 Ce-Fi 업체로 2021년 말 약 30조 원 예치 자산을 보유했다. 기존 금융회사 중 리먼 브러더스의 위치처럼 셀시우스는 가상자산 시장 금융업체 중에서는 꽤 큰 업체로 꼽힌다. 만약 셀시우스가 무너진다면 셀시우스가 보유한 가상자산도 강제 청산당하면서 도미노처럼 연쇄 청산이 작동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번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셀시우스를 통해 투자자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비트코인에 이어 최고의 코인으로 꼽히는 이더리움(ETH)은 최근 채굴 관련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2022년 8월을 목표로 이더리움 2.0으로 업그레이드를 진행 중이다. 기존 이더리움은 그래픽카드와 엄청난 양의 전기 등 컴퓨팅 파워가 필요한 채굴방식인 작업증명방식(PoW)이었다. 이를 이더리움 2.0으로 업그레이드하면서 상대적으로 전기 등이 거의 필요하지 않은 지분증명방식(PoS)으로 바꿔가고 있다.
이더리움이 2.0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이더리움이 스테이킹(예치)돼 있어야 과정이 용이해진다. 이를 위해 이더리움 재단은 약 4~5% 이자를 주겠다며 예치를 독려했다. 그런데 이때 이더리움 재단은 자투리 예치 자금 대신 최소 32개 이더리움을 예치 조건으로 내걸었다. 2022년 연초 이더리움은 약 400만 원 이상이었고 이더리움 32개는 1억 원이 넘는 돈이었다. 개인 투자자는 예치하고 싶어도 하기 힘든 액수다.
이때 크라우드 펀딩처럼 이더리움 예치를 원하는 이들을 묶어 예치해 주는 알선 업체가 등장했다. 라이도(Lido)는 개인 투자자들의 이더리움을 모아 32개씩 묶어 예치해줬다. 이때 라이도는 개인들에게 이더리움을 예치한 일종의 채권으로 stETH를 지급했다. stETH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지만, 나중에 이더리움 2.0 업그레이드가 완료되면 원금과 이자를 보상 받을 수 있는 채권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stETH를 셀시우스 등 몇 개 업체가 등장해 유동화할 방법을 제시한다. stETH를 맡기면 이를 담보로 잡고 70%의 이더리움을 내줬다. 투자자들은 더 큰 이자를 받기 위해 이렇게 받은 이더리움을 라이도에 예치한다. 다시 원래 갖고 있던 이더리움 70%만큼의 stETH를 받을 수 있고 이걸 다시 셀시우스에 예치한다.
앞서 과정을 반복하는 방식을 소위 '풍차 돌리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레버리지를 극단까지 끌어올려 이자를 약 3배까지 받을 수 있었다. 이런 방식이 가상자산 시장 활황기에는 이자 수익을 더 받는 데 도움이 됐지만, 혹한기가 찾아오면서 이더리움 연쇄 청산의 기점이 됐다. 이더리움이 기존 가격보다 70% 이하로 떨어지면서 담보 비율을 맞추지 못했고 강제 청산이 이뤄져 다시 가격이 내려가는 악순환에 빠지게 만든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부동산 자산을 채권으로 유동화하면서 나왔다고 지적되듯이 일종의 데칼코마니처럼 이번 가상자산 시장 주요 플레이어들의 몰락도 이더리움의 유동화에서 나온 셈이다.
전문가들은 몰락의 시작이 루나 사태에서부터 왔다고 보고 있다. 코빗 리서치센터는 “이더리움과 stETH를 테라 네트워크로 보내면 19.6% 이자를 지급했던 앵커에서 담보로 쓸 수 있었다. 그런데 5월 10일 테라 사태가 터지면서 앵커에서 자금 이탈이 시작되고, 담보로 잡혀 있던 stETH가 인출되고 매도 압력이 증가하면서 이더리움과 stETH의 디페깅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stETH는 미래 이더리움과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일종의 채권이다. 채권 가치도 프리미엄과 할인이 있듯, stETH도 반드시 이더리움과 페깅돼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스테이블 코인인 UST와 달러의 디페깅이 이슈가 되면서 stETH의 디페깅이 부각됐고, 결국 stETH의 매도가 이어졌다.
특히 글로벌 거래소 FTX의 관계사인 알라메다 리서치가 보유하고 있는 stETH를 매도하면서 시장은 공포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이자를 차지해도 언제 받을지 모르는 stETH보다는 일단 내 손에 쥐고 있는 이더리움이 낫다는 분위기였다. stETH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루나 사태가 터졌다.
셀시우스는 앵커에 약 6000억 원을 예치해뒀는데 정확한 손실액은 알 수 없지만, 상당한 손실을 보면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셀시우스는 보유하고 있던 stETH를 매도하며 담보금 마련을 위해 노력했지만 급격한 이더리움 가격 하락과 디페깅으로 5%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매도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김동주 대표는 셀시우스 회생 가능성을 높지 않게 봤다. 김 대표는 “기존 가상자산 시장 투자자들은 투자를 거절했다. 지금으로서는 회생 가능성이 작아 보이지만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지금도 셀시우스는 백방으로 투자를 알아보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스스로 살아남기는 지금 상황으로는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셀시우스 투자사로는 대표적인 스테이블 코인인 USDT를 발행하는 테더사도 있다. 테더사가 셀시우스를 투자한 것을 두고도 ‘2008년 금융위기도 베어스턴스 다음 리먼 브러더스가 있던 것처럼, 셀시우스는 베어스턴스고 테더가 리먼 브러더스다’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대해 코빗 리서치센터는 중립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코빗 리서치센터는 “테더사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셀시우스가 포함된 것은 사실이나, 항상 초과 담보가 설정돼 있어 준비금이나 안정성에 영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뢰와 불신이 오가지만 테더사가 셀시우스에 투자 또는 비즈니스 관계에 있어 큰 손해를 보았다는 명확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평가가 어려울 것 같다”고 답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투자사인 테더가 셀시우스를 살릴 것’이란 주장에 대해 코빗 리서치센터는 ‘테더보다는 FTX가 먼저일 것 같다’고 설명했다. 코빗 리서치센터는 “이번 사태가 가상자산 시장에서 일어난 서브프라임 사태인데, 크립토 세계에는 구제금융이 없다는 이야기가 많았다”면서 “다만 언론에 따르면 구제금융은 테더가 아니라 FTX에서 먼저 나올 듯하다. 한국시간 6월 20일 나온 보도에 따르면 FTX 대표인 'SBF(샘 뱅크먼 프라이드)'는 ‘우리가 나서서 넉넉한 돈줄을 제공해 고객들을 살리고, 장기적인 해결책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언했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셀시우스 회생 여부를 두고 여러 가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셀시우스가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다른 가상자산 시장 플레이어들도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바벨 파이낸스도 6월 17일 인출을 중단했다.
바벨 파이낸스는 중국 베이징에 있는 회사로, 초기 비즈니스 모델은 비트코인을 담보로 USDT를 대출해주는 기업이었다. 바벨 파이낸스는 아주 빠르게 성장해 총대출 규모가 약 3조 원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다만 바벨 파이낸스가 무너지더라도 상대적인 충격파는 덜할 것으로 분석된다. 김동주 대표는 “바벨 파이낸스가 가장 마지막으로 기록한 기업가치가 약 2조 원 정도 된다. 이 정도면 가상자산 시장 쪽에서는 메이저 업체라고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테라폼랩스, 셀시우스, 3AC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촉발된 이번 가상자산 폭락장을 두고 ‘사실상 크립토 업계 호흡기를 떼는 순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비트코인은 그나마 고점 대비 4분의 1토막 수준이지만 알트코인은 고점 대비 90% 이상 하락한 자산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에 김동주 대표는 “아예 망하는 시나리오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다만 연쇄 하락이 이어질 가능성은 높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지금 상황을 두고 ‘약한 고리가 끊어지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는 “서브프라임 사태와 비슷하게 방만하게 운영했거나 지나치게 레버리지를 써서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업체들이 약한 고리로 지목된다”면서 “급격한 금리 인상이 진행되는 매크로 상황까지 가상자산 시장을 도와주지 않는 분위기라 앞으로 상황은 그리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분석했다.
코빗 리서치센터는 ‘이것도 지나가리라’는 의견이다. 코빗 리서치센터는 “모두가 ‘다 망해 없어질 것 같다’는 순간은 주기적으로 있었다. 이는 전통 금융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테라 사태, 셀시우스와 바벨 파이낸스 입출금 중단, 3AC 파산설과 연쇄 청산 가능성 등이 제기되면서 ‘이번에야말로 진짜 종말이다’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시장은 다시 반등하고 있다”고 상대적인 긍정론을 보였다.
이번 하락장이 가상자산 시장의 종말이 될 수 있을까. 현재까지는 공포와 안도가 뒤섞여 있는 분위기다. 가상자산 시장 비트코인 가격은 6월 19일 약 2000만 원 초반대까지 폭락한 후 현재 2670만 원에 거래 중이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