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고 자산 바꿔치기, 장외거래, 선취매 의혹 잇따라…무대응 일관, 투자자 소송 앞두고 ‘청산’
크로노스는 클레이튼 체인에서 이용 가능한 최초의 De-Fi 2.0 서비스였다. De-Fi 2.0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기존 De-Fi 1.0 서비스에서 보상으로 주는 토큰 가격 하락이 너무 심했고, 이에 투자자 이탈이 늘어나면서 새롭게 시도된 서비스다. 유동성을 De-Fi 서비스 업체가 직접 소유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크로노스 다오는 올 1월 크러스트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온체인 데이터를 통해 확인해봤을 때 크러스트는 크로노스 다오에 약 327만 개 클레이(KLAY)를 투자했고, 이는 당시 가격으로 51억 원에 달했다.
크로노스는 국내 최고 IT 기업으로 꼽히는 카카오의 계열사 투자를 받으며 야심차게 출발했다. 출범 초기 크로노스는 연간 수익률(APY) 14만 5000%에 달하면서도 안정적인 De-Fi라고 홍보됐다. 하지만 크로노스는 지난 6월 20일 청산을 위한 투표에 돌입했다. 크로노스 출범 약 반 년 만에 스스로 문 닫는 결정을 내리기 위한 절차에 들어간 셈이다. 무엇보다 크로노스가 이렇게 되기까지, 크로노스를 향한 의혹들에 대해 스스로 제대로 해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크로노스를 향한 의혹 첫 번째는 600만 달러가 바꿔치기된 사건이 꼽힌다. 크로노스는 De-Fi 2.0이기 때문에 유동성을 쥔 주체는 투자자가 아닌 프로젝트다. 이를 흔히 프로토콜 소유의 유동성(POL, Protocol-Owned Liquidity)이라고 부른다.
거칠게 비유하면 De-Fi 1.0은 은행 고객이 개별 통장이 있고 이를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었다면 De-Fi 2.0은 고객이 돈을 은행에 예치하면 이를 금고(Treasury)에 넣어두고 채권으로 받는 시스템이다. 고객은 은행 금고를 믿고 채권을 받는 대신 인출할 수 없다. 다른 모든 서비스보다 De-Fi 2.0은 절대적인 신뢰 관계가 핵심인 셈이다. 그런데 De-Fi 2.0인 크로노스 금고에 들어 있는 자산이 교묘하게 바꿔치기되는 사건이 있었고 이를 지금까지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 27일 크로노스는 공지 없이 600만 DAI(약 78억 원)를 자신들이 만든 크로노스 캐시(KASH)와 바꿨다. DAI는 글로벌하게 사용되는 스테이블 코인이고 KASH는 크로노스가 만든 스테이블 코인이다. 1DAI와 1KASH는 겉으로 보기엔 둘 다 같은 1달러다. 그렇기 때문에 크로노스 금고에 담긴 전체 금액 표시는 변하지 않아 금고 안 장부를 자세히 보기 전까지는 알아채기 힘들었다.
크로노스가 KASH와 바꾼 DAI는 대체로 어디서나 가치가 인정받고 있는 달러다. 반면 KASH는 크로노스라는 신생 재단이 만든 데다 유통량도 거의 없어 가치 담보가 어려운 스테이블 코인이다. 한 가상자산 투자자는 “겉으로 보기엔 가격이 같지만 누구도 이런 거래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제3세계 지폐를 들고 있다 해도 현금화하기 어려운 상황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크로노스 측은 이 바꿔치기에 대해서 처음에는 ‘투자자들이 원한다면 돌려 놓을 수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하루 뒤 ‘금고 보고서와 달리 손실을 봤다’고 해명했다. 크로노스 측은 ‘DAI 600만 개 중 300만 개는 테라 스테이블코인인 UST로 전환하고 앵커 프로토콜에 예치했으나 테라 붕괴 사태로 자금이 증발하는 손실이 발생했다. 200만DAI는 그대로 있고, 100만DAI는 팀 운영비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금고에 들어 있는 POL은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자산으로 생각된다.
이 600만 달러는 거래소인 바이낸스 지갑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해명이 맞는지도 알 수 없는 상태다. 거래소로 들어간 자산은 온체인 데이터 상으로 해명이 맞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명이 맞다 해도 금고에 손을 댔고, 손실까지 봤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충격은 굉장히 컸다.
크로노스 프로젝트에 신뢰가 무너지자 여러 사람들의 의혹 제기가 시작됐다. 그렇게 시작된 두 번째 의혹은 장외거래(OTC)를 두고 벌어졌다. 지난 2월 크로노스 재단 측은 금고의 돈을 빼 크로노스 토큰과 바꾸는 일이 있었다. 당시 크로노스 측은 익명의 투자자가 장외거래를 요청해서 이를 받아들여줬다고 설명했다. 거액의 토큰이 한 번에 시장에 나오면 가격 폭락이 있을 수 있으니 투자자 보호를 위해 장외거래 요구를 들어줬다는 해명이다.
바꿔치기 의혹 이후 과거 사건까지 뒤지던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사실이 발견됐다. 600만 달러를 빼낸 거래소 지갑과 장외거래를 요청했다는 익명의 투자자 지갑이 동일했던 것이다. 장외거래 했다는 자금이 또 문제의 바이낸스 지갑을 통해 빠져나가면서 해명이 무색해졌다.
이에 투자자 H 씨는 “장외거래가 더 나은 옵션이었다면 적어도 커뮤니티에 한번쯤 이런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문의했어야 한다. 투자자가 쌓아 놓은 돈을 소통 없이 사용한 점은 문제가 많다”면서 “장외거래로 판매한 사람 신원이나 법인을 알 수 있냐. 인증도 안 된 사람이 장외거래를 요청한다고 해서 금고 돈을 사용했냐”고 추궁했다. 크로노스 측은 “커뮤니티에 소통하지 않았던 점에서 팀 판단의 실수가 있었다. 앞으로 소통에 더욱 힘을 쓰겠다”고 사과했다.
최근 세 번째 의혹도 나왔는데 과거 크로노스 운영 재단 측이 프로젝트 출범 직후 크로노스 토큰을 선취매해두고 이를 고점에서 현금화했다는 의혹이다. 온체인 데이터를 통해 확인해 보면 프로젝트 출범 직후 크로노스 재단은 약 몇 만 원 수준으로 토큰을 매수했다. 이후 크로노스 재단은 100만 원 이상 가격이 오른 고점에서 몇 달에 걸쳐 약 20만 달러어치를 판매해왔다. 이에 대해 재단 측은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크로노스 측이 직면한 세 가지 의혹인 600만 달러 바꿔치기 의혹, 장외거래, 선취매 의혹 등으로 현금화한 자산이 1500만 달러로 추산된다고 알려졌다.
이런 의혹이 중첩되면서 크로노스 측은 적극적인 해명 대신 무대응이나 시간끌기 쪽으로 바뀌어 갔다. 결국 투자자들은 법무법인 선임에 나서며 횡령, 배임 등으로 크로노스 측을 단체 고소할 계획을 공유했다. 크로노스는 익명 재단으로 이뤄져 있어 고소를 통해 재단 실체와 운영 주체 등을 파악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소송 대응의 윤곽이 잡혀나갈 즈음 크로노스 재단은 6월 20일 갑작스레 크로노스를 청산하겠다는 안건을 투표에 올렸다. 첫 번째 투표는 정족수 미달로 부결됐지만 크로노스 재단은 이를 다시 재상정했고 21일 결국 정족수인 30% 투표 수를 넘어서며 결국 청산인지 부결인지 확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크로노스 측은 “팀은 지금도 프로젝트에 대한 의지는 변함이 없지만 투자자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 어떤 결론이 나오든 그에 대한 최선의 지원을 하겠다”고 공지했다.
크로노스에 투자한 투자자 A 씨는 투표 자체가 불공정하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A 씨는 “갑작스럽게 투표가 시작됐는데 투표 시작 전 금고에 있는 돈보다 시가총액이 약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크로노스의 신뢰성이 떨어지면서, 러그풀(먹튀)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가치가 폭락한 것이다. 만약 투표가 시작될 걸 안다면 금고에 있는 돈이 시총보다 컸던 만큼 크로노스를 매수해 청산에 참여한 뒤 금고에 있는 돈을 나눠가질 수도 있었던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가상자산 전문가는 크로노스가 투표 전 매집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 전문가는 “크로노스가 투표가 통과될 가능성이 높았던 상황임을 인지했기 때문에 바닥 가격에서 매집했을 수도 있다. 또한 현재 소송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소송 전 청산해버리기 위해서라도 크로노스가 바닥에서 매집할 동기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크로노스 측의 투표는 6월 22일 오후 7시 찬성률 61.71%로 통과됐다. 크로노스에 투자한 크러스트 측은 청산에 반대한다고 밝혔지만 반대표는 던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크로노스 측은 투표가 통과될 경우 7일 내로 운용을 위해 분산된 자산을 금고에 모두 회수해 분배해주겠다고 밝혔다. 투자자들은 단체 소송을 준비 중이며 이를 수행해 줄 법무법인 선임 작업에 나섰다고 전해진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