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4곳밖에 없는 기술 보유…이경학 대표 “특례승인 기간 2년 연장 필요”
#'테슬라'가 가져다준 확신
1975년생 이경학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뜯어보는 걸’ 좋아했다. 장난감 총이든 컴퓨터든 일단은 다 뜯어보고 전자회로를 들여다보는 바람에 어머니께 자주 혼났다고 회고했다. 컴퓨터를 분해했다 잘못 조립해 스파크가 튀면서 불이 난 적도 있었다. 전기가 무서운 거구나라는 것을 처음 느꼈다. 호기심이 많은 꼬마였지만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가세가 기울며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우유와 신문을 배달하며 생계를 도운 탓에 대학에 가겠다고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 이경학 대표의 재능을 눈여겨 본 학교 선생님들이 ‘제발 공대라도 보내라’며 어머니를 설득한 덕분에 LG그룹 산하 연암공업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졸업 직후인 1999년 입사한 LG전자기술원에는 해외 유수 대학이나 서울대, 카이스트 출신 박사들이 바글바글했다. 공대 출신 학부졸업생이 발 붙일 데가 아니었지만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LG가 명품 패션 브랜드 프라다와 협업해 출시를 준비하던 LG프라다 휴대폰에 넣을 안테나를 아무도 개발하지 못했던 것. 제품이 그대로 사장될 위기에 이경학 대표가 혼자 연구해보겠다고 나섰다. 이 대표는 “주변에서는 납땜이나 하라고 비웃었다. 그렇지만 2~3개월 만에 제가 직접 안테나를 개발해 발표했더니 발표장에 정적이 흘렀다”고 말했다.
당시 LG전자기술원에서 인정을 받은 후 10년이 넘게 전력과 통신기술 개발에 몰두한 시간이 워프솔루션 창업의 밑거름이 됐다. 2015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의 스마트IT융합시스템연구단(CISS)에 합류했을 때였다. 동작 등을 감지하는 스마트 센서를 개발해야 했는데 센서를 소형화하다보니 배터리 넣을 자리가 없어 고민이 컸다. 선을 없애고 배터리를 최소화할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영감이 떠올랐다. 와이파이나 블루투스처럼 전선 없이 센서에 전력을 한꺼번에 ‘전송’해주면 복수의 센서를 단번에 충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경학 대표는 “무선주파수(RF)를 타고 흐르는 전기와 통신은 원래 한 몸이다. 통신이 인공위성이라면 전력은 인공위성을 데리고 가는 추진체인 셈인데, 보통은 추진체격인 전력을 버리고 통신만 사용해 데이터를 움직이고 전화를 거는 데 사용한다. 거기서 전력을 버리지 않고 충전에 이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간단한 원리였지만 확신이 없었다. 기존 연구가 없나 해답을 찾던 도중 평소에 존경하던 니콜라 테슬라의 전집에서 무릎을 쳤다. 테슬라가 이 대표가 생각한 것과 동일한 원리로 무선 전력 전송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현실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 탄생한 연구소 기업 워프솔루션의 창업 배경이다.
#자신 있었지만 발목 잡은 '규제'
문제는 규제였다. 국내에서는 원거리 무선 전력 전송에 적합한 900MHz대역의 주파수를 사용할 수가 없었던 것. 기존에 해당 대역 주파수를 사용하는 제품들에 전파 간섭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이경학 대표는 충분히 전파 간섭을 피해갈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는 “해외 업체들이랑 비교할 때 경쟁력이나 기술 면에서는 저희가 단연 앞서 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손정의가 이끄는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올해 벌써 상용화 준비를 거의 끝낸 점과 비교하면 국내 규제는 신기술에 정말 신중하게 접근한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원거리 무선충전 기술을 갖춘 기업은 4곳뿐이다. 그중 규제에 걸려 상용화 시도를 엄두도 못 낸 곳은 워프솔루션뿐이었다. 신기술을 사장시키지 않으려면 해외 시장 진출이 필수라고 판단했다.
2020년 초 국제전자제품박람회2020(CES2020)에 참석해 워프솔루션의 기술을 선보였다. 해외 업체들이 앞다퉈 관심을 보였다. ‘되겠다’는 확신이 섰다. 박람회가 끝난 다음 달에 바로 미국으로 옮겨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상용화 준비와 출국 준비를 끝마친 시점이었다. 그러나 직후 코로나19가 국내에 상륙하며 갑작스럽게 출국이 무산됐다. 2020년 2월의 일이었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최악의 사태를 맞닥뜨린 셈이다.
#코로나19 그리고 규제 샌드박스
결국 2020년 초부터 국내 판로를 절실하게 찾아야 했다. 규제는 그대로였다. 답이 안 보이는 상황에 좌절할 무렵, 대한상공회의소와 연이 닿았다. 당시 워프솔루션의 무선 충전 기술을 접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곧바로 ‘이건 무조건 해야 한다. 상공회가 도와야 한다’며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마주한 느낌이었다고 이경학 대표는 회고했다.
규제를 단번에 풀 수는 없었다. 국내 규제기관은 전력을 낮추라고 끊임없이 요구했다. 전력을 너무 강하게 송출하면 기존에 해당 대역의 주파수를 사용하는 제품들에 전파 간섭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결국 전력을 10W 수준으로 낮추고 특례승인 과정에 돌입했다. 공간 충전 방식을 활용한 램프도 개발했다. 램프의 불빛이 비추는 특정 공간까지만 충전되는 방식으로 전파 간섭 가능성을 최소한으로 낮췄다.
무선 전력 전송 기술을 활용한 회심의 신제품은 반경 수m 내에 있는 전자제품까지 충전할 수 있는 원거리 충전기다. 해당 제품의 전력을 켜면 6~10m 공간에 있는 모든 전자제품이 충전모드로 진입한다. 이경학 대표는 “인체 유해성 테스트도 마친 데다 충전이 완료되면 곧바로 전기를 끊어버리기 때문에 전기요금 걱정도 없다”고 설명했다. 원거리 충전기는 공간 충전 방식을 사용하는 램프와 달리 사용해야 하는 전력의 강도가 강하고 전파 간섭 가능성을 새로 테스트해야 해 당장 상용화 가능성을 점치기 어려운 제품이지만 스마트팜이나 스마트 팩토리 쪽에서는 협업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2년간의 규제 샌드박스 특례 기간 동안 협업한 기업들 전부가 “이것은 된다” “상용화만 되면 투자하겠다”며 러브콜을 보냈다. 워프솔루션의 규제 샌드박스 특례승인 기간은 2022년 8월 28일 만료된다. 이후 정식으로 입법화 과정에 돌입할 경우 상용화가 가능해진다. 2년 추가 연장만 되더라도 지난 2년간 운용한 약한 수준의 원거리 무선 전력 전송 제품의 시판 가능성이 열린다. 이 경우 워프솔루션은 장난감이나 시계 등 다양한 액세서리 형태로 무선 충전기를 만들어 판매할 방침이다.
이경학 대표는 “연장이 거절당하면 결국 다시 해외 시장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원천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결단을 내려주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