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거짓 교묘히 섞어 형사처벌 어려워…공적·자율 규제 병행, 뉴스비평 활성화, 팩트체크 기술적 접근 필요
가짜뉴스를 제공했다고 해서 형사처벌이 이뤄지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단 피해자 특정이 어렵다는 게 문제다. 형사처벌을 위해서는 작성자를 향한 고소·고발이 필요한데 가짜뉴스는 불특정다수에게 전달된다. 주가 조작을 위해 사용되는 가짜뉴스가 불특정다수의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배포되는 것이 그 예다. 특정 피해자가 없다면 작성자가 가해자가 될 수 없는 셈이다.
운 좋게 피해자가 특정되더라도 피고인에게 가짜뉴스 작성으로 인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를 적용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가짜뉴스에 명백히 구별할 수 있는 거짓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 가짜뉴스에는 팩트와 거짓이 교묘하게 섞여 있다.
이럴 경우 재판부는 자료 전체를 살펴볼 수밖에 없다. 2000년 2월 25일에 선고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적시된 사실의 내용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경우에는 세부 내용에 있어서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나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허위의 사실이라고 보지 않은 바 있다.
가짜뉴스 피해자들은 작성자의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 형법 대신 민법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민법은 가짜뉴스 작성 과정에서 가해자의 과실을 인정해 피해자 승소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가해자 형사처벌보다 피해자 구제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피해자가 민사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액이 1억 원 미만이다. 통상적으로 법원에서는 교통사고·산업재해 등으로 사망할 경우 위자료를 1억 원으로 상한하고 있다. 고 전두환 씨가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관련자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 인정됐음에도 법원은 손해배상액으로 7000만 원을 책정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미디어언론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성순 법무법인 한일 변호사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라는 의미 때문에 이를 처벌로 여기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러나 처벌과 구제에 대해서는 달리 생각해야 한다. 언론은 인격을 소재로 정보를 양산하는 사업이다. 소재를 잘못 쓴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액을 늘려야 언론인들이 더 깊이 있는 취재를 통해 좋은 기사를 양산할 수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다만 우리나라는 처벌 면에서는 공적 규제가 다소 강한 면이 있다. 언론인을 대상으로만 하더라도 형사처벌 외에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론중재위원회의 제재를 받는다. 게다가 정보통신망법에서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사실을 적시하는 것도 불법 정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를 폐지해 언론인이 사회 부조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대신 손해배상제도를 강화해 피해자 구제책을 더 마련하는 게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특정 법을 폐지 혹은 강화하는 데는 부작용과 악용 사례들이 나올 수 있기에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지난해 언론중재법 본회의 상정 철회 후 여·야 합의로 ‘언론·미디어 제도개선 특별위원회’가 구성돼 6개월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징벌적 손해배상제·포털 규제 등 언론 관련 법안 논의를 이어갔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지난 5월 24일 종료됐다.
우리나라 언론환경의 변화와 언론계의 자정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전문가들은 취재나 검증 없이 기사를 양산해 조회수만 추구하는 ‘따옴표 저널리즘’과 ‘클릭 저널리즘’이 팽배한 우리나라 언론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수정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정책위원은 “뉴스 소비가 포털에 집중되다 보니 언론사도 디지털 대응이 포털에 맞춰져 있다”며 “포털 메인에 걸릴 만한 기사를 쉽게 제작하고 자주 기사를 내보내서 클릭 수를 올리는 온라인 뉴스 대응팀을 언론사마다 꾸리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김 정책위원은 “그렇다고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 소비를 완전히 차단하자는 건 아니다”라며 “다만 포털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방안들을 계속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언론사 간 뉴스 비평 활성화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김 정책위원은 “지난 수년간 뉴스 비평이 꽤 줄어드는 추세”라며 “좋은 뉴스, 잘못된 취재 방식 등에 대해 언론계 내부적으로 소통하는 등 자체 자정 노력을 통해 언론의 신뢰도를 높이고, 뉴스를 보는 시민들의 눈높이를 높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팩트 체크를 위해 기술적 접근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팩트체크 서비스 개발에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을 결합해 가짜뉴스를 걸러내는 방법이다.
구글은 현재 ‘Google Fact Check Tools’를 운영 중이다. 특정 사건이나 인물을 입력하면 이에 관한 팩트체크를 검색해준다. 사실 확인 탐색기와 마크업 도구의 두 가지 기술로 팩트 체커, 언론인, 연구원, 시민의 작업을 쉽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페이스북(Facebook) 운영사 메타는 페이스북 기사 링크 사용자에게 이의가 있는지 알려주는 사실 확인 도구와 가짜뉴스를 처리하는 조치를 제공하고 있다. 사용자가 의심스러운 콘텐츠를 찾을 수 있도록 온라인 교육 도구를 출시하기도 했다.
송경재 상지대학교 사회적경제학과 교수는 “인공지능, 딥페이크 기술 발달로 가짜뉴스의 양이 숙련된 전문가들이 걸러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이제는 기술적인 접근과 시민들이 직접 가짜 뉴스를 걸러낼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게 필요할 때”라며 “우리나라는 공적 자금을 이용해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가령 언론진흥재단의 빅카인즈 서비스를 활용하는 것이다. 빅카인즈는 국내 최대의 공공 뉴스 아카이브다. 빅카인즈와 팩트 체크 플랫폼을 연동할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언론계는 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여성기자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이상 7개 단체와 지상파 방송을 대표하는 한국방송협회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언론 스스로 자정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를 통해 상벌제 운영을 논의 중이다. 먼저 문제가 된 보도에 대해서는 △정정 △노출 중단 △사과 등을 요청하고, 언론사에는 △권고 △주의 △경고 △제재금 부과 등을 요청한다. 시정 요청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언론사는 벌점을 받을 수 있다. 벌점 누적시엔 자격 정지, 제명 등의 제재가 더해진다. 제재 대상은 신문·방송·뉴스 통신사·인터넷 신문의 기사와 시사 프로그램, 기사형 광고, 언론사의 유튜브 채널 콘텐츠도 포함된다.
반면 인센티브 지급도 추진한다. 기자협회, 방송협회 등이 수여해온 각종 언론상 후보를 기구 가입사 소속 기자로 제한한다. 언론진흥기금 등 각종 공적 기금 지원 사업과 기자 연수 등 대상자도 가입사 소속 기자에 한할 예정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해당 기구에 뉴스 소비자 등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수정 정책위원은 “언론계만의 기구로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뉴스 소비자인 일반 시민들의 평가가 들어가야 하는 게 꼭 전제돼야 한다”며 “시민들에게도 평가받고 그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기구로 성장해야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