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공 친 ‘오구플레이’ 알고도 1개월 뒤 신고…징계 수위에 관심 쏠려
#윤이나가 저지른 '오구플레이'는
윤이나가 밝힌 부정행위는 남의 볼을 친 '오구플레이'였다. 지난 6월 16일 DB그룹 한국여자오픈 선수권 1라운드 15번 홀에서 윤이나는 로스트볼을 자신의 공인 것처럼 플레이했다고 밝혔다. '불공정한 플레이로 참가하신 모든 선수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는 사과와 함께였다.
윤이나는 사과문에서 '반성하는 시간을 갖겠다'며 활동 중단의 뜻을 내비쳤다. 이로써 윤이나의 출전 기록은 7월 24일 막을 내린 호반 서울신문 위민스 클래식에서 멈추게 됐다. 오구플레이 당시 윤이나는 2라운드 합계 2오버파로 컷탈락했다. 이번 시즌 참가한 15개 대회 중 세 번째 컷오프였다. 다만 오구플레이가 확인된 현재 기록은 대회 '실격'이다.
이날 윤이나가 쳐낸 오구는 함께 경기를 펼치던 경쟁자의 공이 아닌 로스트 볼로 확인됐다. 최초 오구플레이로부터 윤이나의 자진 신고까지는 약 1개월의 시간이 걸렸지만 윤이나는 대회 도중 자신의 과오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과문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골프계에서도 윤이나의 오구플레이는 '의도적인 행위'로 평가된다. 최초 1회 공을 헷갈릴 수는 있지만 이후 플레이에서 충분히 자신의 공이 아님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 골퍼 A 선수는 "상당수 선수들이 T사 공을 사용하는데 윤이나도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며 "처음 공을 봤을 때는 알아채지 못할 수 있지만 그다음 플레이에서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알고도 모른 체하며 플레이를 이어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이나의 추후 대처에 대한 지적도 이어진다. A 선수는 "자신의 공임을 알아챘을 때 즉시 경기 운영위원 등에게 알렸다면 벌타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됐을 것이다. 골프 선수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룰"이라고 설명했다.
프로 골퍼라 하더라도 룰에 대한 교육은 지속된다. 최초 프로 입문시 KLPGA는 필기시험을 실시한다. 시험에 룰 관련 내용도 당연히 포함된다. 프로 입문 이후에도 선수들을 대상으로 스포츠 윤리, 대회 룰과 같은 교육을 주기적으로 실시한다.
#'윤이나라서' 더욱 컸던 충격
이번 사태로 골프계가 받은 충격은 윤이나였기에 더욱 컸다. 2003년생 만 19세로 KLPGA 투어 데뷔 시즌을 치르고 있는 윤이나는 전인지, 박성현, 이정은, 최혜진 등의 뒤를 잇는 KLPGA의 새로운 스타로 각광받은 터다.
윤이나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수많은 수상 이력을 자랑하는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모든 어린 선수들이 꿈꾸는 국가대표 타이틀도 달았다. 플레이 스타일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키 170cm의 장신에서 나오는 특유의 장타가 골프 팬들의 마음을 매료시켰다. 이번 시즌 윤이나의 평균 드라이브 비거리는 236.7136야드였다. KLPGA 전체 1위 기록이다.
장타력만 갖춘 것이 아니었다. 성적도 상위권에 올랐다. 나서는 대회마다 꾸준히 상금을 적립했고 지난 17일 막을 내린 에버콜라겐 퀸즈크라운에서는 생애 첫 1부투어 우승을 차지했다. 1라운드부터 리더보드 최상단에 이름을 올려 마지막 라운드까지 자리를 지킨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었다.
15개 대회에 나선 현재 상금순위 6위(약 3억 8500만 원), 대상 포인트 9위(217점), 신인상 포인트 2위(1412점)에 올라 있었다. 2022시즌 신인 중에선 유일한 우승 경험자이기도 했다. 세계 랭킹도 100위권 이내에 진입했다.
#'명백한 부정행위'…징계 수위는
골프계를 강타한 윤이나의 부정행위에 대한 징계 수위에 관심이 쏠린다. 어떤 수준의 징계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 같은 사례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골프계 오구플레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동하던 정일미와 안시현은 2010년 서로 공을 바꿔 친 오구플레이를 범한 바 있다. 한 캐디가 이를 고의로 벌인 일이라고 주장해 사건이 커졌지만 LPGA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대회 실격 선에서 마무리됐다.
오구플레이는 아니지만 한때 세계랭킹 2위까지 올랐던 톱골퍼 렉시 톰슨도 징계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2017년 ANA인스퍼레이션 대회를 치르던 중 그린에서 볼 마커를 집어들며 공을 다소 거리가 떨어진 곳에 내려놓고 플레이를 이어갔다. 이는 현장에서 적발되지 않았지만 TV 중계를 지켜보던 시청자가 제보를 했고 이튿날 4벌타를 받았다. 당시 선두를 달리던 톰슨은 결국 대회 우승을 놓쳤다.
국내 시니어 선수들의 무대인 KPGA 챔피언스투어에서는 '제명'이라는 중징계가 나오기도 했다. 투어 대회에서 선수들 간 스코어 조작이 적발됐고 이에 가담하거나 조작을 알고도 묵인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각각 제명, 자격정지 5년, 3년, 6개월 등의 징계가 내려졌다.
윤이나의 경우 정일미와 안시현, 렉시 톰슨 등과 다른 경우라 징계 수위를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 앞선 사례는 비교적 즉각 자진 신고하거나 타인에 의해 적발됐지만 윤이나는 규정 위반 이후 1개월여 시간이 흘렀다. 대회 중 오구플레이를 인식했음에도 이튿날 일정까지 소화했다. 이후로도 투어에 참여해 우승 트로피까지 들었다. 최초 신고를 받은 대한골프협회(KGA)는 첫 사례이니만큼 징계 수위를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징계는 KGA 선에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윤이나가 활동 중인 KLPGA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징계가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윤이나의 규정 위반이 KLPGA가 아닌 KGA에 먼저 접수된 것은 사건이 발생한 한국여자오픈이 KGA 주관 대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여자오픈이 KLPGA 투어에 포함된 대회기 때문에 KGA의 징계 결과를 KLPGA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윤이나가 KLPGA의 인기를 이끌고 있었던 스타였던 만큼 '정무적 판단'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