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과 종업원 사망사건 사인은 필로폰 중독…코로나19 사태로 유흥업계 음성화 거치며 심각해졌다는 분석도
지난 7월 5일 오전 10시 20분 무렵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유흥주점에서 일하던 30대 여성 종업원 B 씨가 자택에서 사망했다. 그리고 손님으로 유흥주점을 찾아 이 여성과 함께 술자리를 가졌던 20대 남성 손님 A 씨는 이날 오전 8시 30분 무렵 인근 공원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B 씨는 마약 추정 물질이 들어간 술을 마신 뒤 숨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망한 A 씨가 B 씨의 술잔에 마약 추정 물질을 탄 것으로 보인다. 경찰 조사에서 일행 가운데 한 명이 A 씨가 자신의 술잔에 마약 추정 물질을 넣어 마시는 것 같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B 씨 역시 술을 마신 뒤 ‘술맛이 이상하고 몸이 좋지 않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도 두 사람 모두 사인이 메트암페타민(필로폰) 중독사로 나왔다.
그리고 A 씨의 차량에서 64g의 마약류 의심 물질이 발견됐는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 결과 필로폰이었다. 필로폰 64g은 2100여 명이 한 번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이처럼 대량의 마약이 차량에서 발견되면서 A 씨가 중간 판매책일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후 경찰은 A 씨에게 마약을 건넨 인물을 포함한 마약 유통책 등 마약사범 6명을 검거했다.
이번 사건은 강남 유흥업계에 큰 충격을 줬다. 우선 여성 종업원들 사이에 손님이 몰래 자신의 술잔에 마약류를 탈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함께 마약을 투약하자는 제안을 손님에게 안 받아 본 여성 종업원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마약과 가까운 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어렵더라도 그런 제안을 거절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아무리 거절해도 몰래 술에 탈 수도 있다는 얘기는 큰 공포가 됐다. B 씨처럼 이유도 모른 채 사망할 수 있고, 의도하지 않은 마약사범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업주들도 마찬가지다. 자칫 이와 유사한 사건이 업소에서 불거진다면 영업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일부 유흥업소에는 '마약과 해피벌룬 등의 사용을 금지하고 적발시 신고하겠다'는 경고문까지 붙어 있을 정도다.
유흥업계 관계자들은 과거에 비해 마약이 보다 훨씬 더 가깝게 다가와 있는 것이 느껴진다고 얘기한다. 특히 요즘에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마약을 가까이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졌다고 한다. 강남에서 영업 중인 한 룸살롱 업주는 “20~30대 젊은 손님들 가운데 룸에서 마약을 대놓고 하거나 몰래 술에 타서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요즘 젊은 손님들은 파티룸이나 클럽 등에서 손쉽게 마약을 즐기곤 하면서 아예 그런 문화가 익숙해져 있다. 유흥업소에 와서 서슴없이 마약을 하곤 한다”고 설명한다.
유흥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과거에는 아예 ‘약쟁이들이 찾는 룸살롱’은 따로 존재했다고 한다. 일부 유흥업소에선 아예 손님들에게 마약을 판매하기도 했고, 그런 업소는 유흥보다는 마약에 관심 있는 손님들이 주로 찾았다고 한다. 심지어 유명 연예인의 건물에서 적발된 불법 유흥업소에서도 마약 거래와 투약이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 수사가 진행됐다.
언젠가부터는 상당수의 룸살롱이 아예 몰래 마약을 투약하며 술자리를 갖고자 하는 손님을 위해 별도의 룸을 마련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업소 측이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손님들이 몰래 마약을 투약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상황을 더 심각하게 바라보는 관계자도 있었다. 마약 판매책들이 큰돈을 벌어 유흥업소를 찾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 영향으로 마약에 빠져드는 여성 종업원들이 알게 모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강남의 한 유흥업소 관계자는 “한동안 돈을 펑펑 쓰는 젊은 손님들은 대부분 암호화폐(가상화폐)로 갑자기 큰돈을 벌었는데 요즘에는 경기가 안 좋아 암호화폐나 주식으로 돈 벌었다는 손님이 거의 없다”며 “요즘에는 불법 마약 판매책들이 유흥업소를 자주 온다고 한다. 그들이 영업하듯 애들(여성 종업원)에게 마약을 적극 권한다고 하더라”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유흥업계 자체가 음성화됐던 시기에 이런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집합금지명령으로 영업이 중단된 상황에서 간판 불을 끄고 몰래 불법 영업을 하는 업소들이 급증했고, 몰래 영업이 이뤄지는 룸에서 마약을 하는 손님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실제로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합금지명령이 내려졌을 당시 경찰이 단속한 불법 영업 유흥업소에서 마약 투약이 함께 적발된 사례가 종종 있었다.
현장에서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강남의 다른 유흥주점 관계자는 “영업 자체가 불법인 상황에서 몰래 장사를 하는 터라 손님이 버젓이 마약을 투약해도 신고를 할 수 없는 처지였다”면서 “마약을 투약한 손님이 계속 2차를 가고 싶다고 하는데 담당 종업원이 겁나서 못 간다고 해 겨우 손님을 설득해 그냥 귀가하도록 했었다”는 경험담을 들려줬다.
유흥업계 관계자들의 더 큰 걱정은 따로 있다.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나 이제 좀 살 만하다 싶은데 경찰의 마약 수사망이 유흥업계 전반으로 확대돼 또 다시 단속이 잦아지는 것이다. 단속 과정에서 마약 관련 사안은 적발되지 않더라도 다른 사안이 적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