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로 1시간 40분이면 도착…문화예절 배우는 K-문화테마파크 ‘선비세상’ 문 열어
안동까지 새로 개통된 ‘KTX-이음’을 타면 청량리에서 영주까지 1시간 40분이면 닿는다. 꼬불꼬불 고개 넘어 가던 예전의 영주가 아니다. 청량리에서 영주까지 가는 KTX는 하루 6~7번 있고 1인 2만 원선이다.
하고 많은 지역들 중 경상북도 영주를 특별히 ‘선비의 고장’이라 부르는 이유는 뭘까. 영주는 국내 유교문화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최초로 도입한 안향과 성리학을 기초로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의 고향이 영주시다. 또 조선의 교육이 위태롭던 시기 최초로 백운동서원(소수서원)이라는 교육기관을 만들어 조선의 수많은 인재와 지도자를 배출했다고 알려져 있다. 선비 교육의 요람이라는 의미에서 예부터 선비의 고장이라 일컬었다.
그렇다면 선비란 또 무엇일까. 간단하게 말하면 학문의 목적을 관직에 두지 않고 ‘도(道)’를 실천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며 지위가 아닌 인·의·예·지의 유교 이념을 실현하는 인격체를 선비라고 한다. 영화 ‘킹스맨’의 유명한 대사이기도 한 ‘매너 메이크 맨(Manners maketh man)’이 떠오른다. ‘예절이 사람을 만든다’는 뜻이다. 매너, 즉 예를 중시하는 것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비슷한 가보다.
성리학에서 올바른 선비상은 권력 앞에 무력하게 무릎 꿇지 않고 지조를 지키면서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정치사상을 표방한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요즘 정치에서는 잘 찾아보기 힘든 선비상이다. 영주에서 보고 들은, 몇백 년 전 선비들의 일화가 여전히 흥미로운 것은 현실과는 너무 다른 면면 때문일까.
영주에는 선비의 생활상을 물리적으로 잠깐이나마 체험해 볼 수 있는 선비촌이 있다. 무섬마을의 가옥을 본 따 조선시대 마을의 모습을 재현해 한옥 숙박시설로 만든 공간이다. 선비촌은 기와집 7가구, 초가 5가구, 누각 1동, 정사 2동, 성황당 1동, 곳집 1동, 원두막 1동, 저잣거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잣거리에는 한식을 파는 식당도 여럿이고 대장간, 염색공방, 한복체험 공간 등도 있다. 이곳에서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과 ‘육룡이 나르샤’ 등 다양한 사극 촬영도 했다.
세상의 온갖 소리와 소식들을 피해 혼자 어딘가 ‘콕’ 박혀 있고 싶다면 선비촌이 제격이다. 선비촌에서 하루를 지내보면 선비의 일상이 상상이 아닌 현실로 다가온다. 하루를 묵는다면 이른 아침 새소리에 깰 수 있고, 집집마다 사람 키보다 낮은 담장이 둘러쳐진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며 고요하게 산책하기 좋다. 새벽녘 안개와 저녁 무렵 어슴푸레 푸르른 시간을 온전히 누려보는 공간이다. 방에 TV가 없으니 오히려 안심이다. 휴대폰이 유일한 방해물이지만 하루쯤은 꺼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뜨거운 여름, 바닷가 해변에서만 피서를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이곳에선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와도 좋다. 연세 드신 부모님과 함께라면 더더욱 복작이는 사람들을 피해 한적하게 한옥에서 나는 여름도 시원하고 운치 있다. 대청마루에 배 깔고 누워 한가하게 시나 읽고 차나 마시며 온 가족이 한옥마을에서 여름을 나는 피서는 한국 사람에게도 신기한 경험이다. 이곳에서라면 시간일랑 아예 잊어버릴 수도 있다.
사랑채 방문 활짝 열어두고 멀리 보이는 산을 배경 삼아 마당과 담장 너머 골목을 지그시 바라보며 평소 곁눈질만 했던 소설책도 본격적으로 읽어본다. 옛날식 창호지문에도 방충망은 걸려 있고 방에는 에어컨까지 있으니 나름대로 시원한 한나절을 만끽할 수 있다. 요즘 물가에 비하면 숙박비용도 크게 부담되지 않는 편이다. 2인 기준 5만 원부터 3~4인 7만~8만 원선이다.
하루를 선비촌에서 지내보니 선비촌에서 보고 들은 선비들의 여러 신념들 가운데 거무구안(居無求安)이 유독 와 닿는다. 거무구안이란 ‘사는 데 있어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신의 안위를 우선시하지 않고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살아갈 길을 고민했다는 선비의 정신을 엿보게 하는 말이다. 신발을 다시 신고 마당을 지나 다녀와야 하는 대문 옆 화장실을 쓸 때마다 이 문구는 가슴에 더 와 닿는다. 하지만 방에 화장실이 달린 현대식 고택도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가족끼리 왔다면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다. 인성교육, 서당체험, 전통예절, 다도예절 등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고 한지공예, 천연염색, 도자기공예, 당나귀체험, 민속놀이체험 등 전통문화 체험과 함께 전통음식 만들기 체험도 해볼 수 있다. 선비촌은 숙박을 하지 않아도 성인 기준 3000원의 관람료를 내면 마을 전체를 산책삼아 둘러볼 수 있다. 관람료를 한번만 내면 선비촌 곁의 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도 관람 할 수 있다. 하얀 돌다리를 사이에 두고 왼쪽은 선비촌, 오른쪽이 소수서원이다.
선비촌 위쪽으로는 ‘선비세상’이라는 K-문화테마파크가 9월 3일 정식으로 문을 연다. 영주시가 ‘선비’라는 지역 테마를 활용해 K컬처를 본격적으로 국내외에 알리겠다며 만든 테마공원이다. 영주에서 새롭게 힘주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K컬처다.
선비세상에는 한옥, 한복, 한식, 한지, 한글, 한음악 이라는 6개의 K컬처 테마가 있고 이를 6개의 관으로 나누어 전시와 체험시설을 꾸려 놓았다. 거대한 미디어아트와 세련된 관람시설, 각종 체험이 눈에 띈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체험이 용이하도록 재탄생시켰다.
각 테마관에서는 한식 만들기 체험을 비롯해 한지 뜨기와 다도 체험, 한복 입어보기 체험 등을 할 수 있고 한음악관에선 어두운 조명 아래 편한 의자에 반쯤 누워 눈을 감고 우리 가락을 실컷 감상하며 졸음에 빠질 수도 있다. 한글관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한글 게임과 교육 프로그램도 있다. 8월 15일까지는 임시 운영기간으로 영주시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주말과 휴일에 한해 1500명까지 입장료 없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