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묘한 물빛’ 토박이들이 꼽은 최고의 해수욕장…야생의 밤 ‘오소록’하게 느끼기에는 지금이 딱
해안으로 빙 둘러싸인 제주에선 해변에 노지 캠핑하기 좋은 ‘핫플’도 꽤 많지만 그중에서도 제주 서쪽에 있는 금능해수욕장 야영장은 제주의 자연과 함께 제주 특유의 분위기를 제대로, 또 최대로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야영장에선 아이들의 ‘까르르’ 웃는 소리가 아니라면 사람 소리보다 새소리가 더 많이 들리고 오롯이 자연을 즐기기 좋다.
금능해수욕장 야영장의 분위기는 야자수가 한몫 크게 한다. 야영장 주위로 크고 작은 야자수가 촘촘히 심어져 있어 국내 다른 지역에서와는 전혀 다른 이국적인 감성이 샘솟는다. 텐트를 치는 순간 원주민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갑자기 어느 남태평양 섬 한가운데 떨어진 느낌마저 드는데 야자나무 숲 한편에서 ‘정글의 법칙’을 찍는다고 해도 깜박 속을 것 같다.
남태평양 사모아라는 섬에 게리 쿠퍼 주연의 영화 ‘리턴 투 파라다이스’의 배경이 된 낙원 같은 해변이 있다. 그 해변에서 수영을 하며 ‘낙원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 생각했었는데 문득 그곳으로 다시 돌아간 착각도 인다. 이렇게 쉽게 낙원을 만날 리 없겠지만 때로는 이렇게 쉽게 1시간 비행기 타고 날아온 곳에서 낙원을 만난다.
자꾸 낙원 같은 단어가 떠오르는 것은 금능해수욕장의 환상적인 물빛 때문이기도 하다. 금능 해변은 제주 토박이들이 제주 최고의 해변으로 자주 언급하는 곳이다. 외지인들이 더 좋아라 하는 함덕, 김녕, 월정리, 세화 해변에 비해 제주인들이 더 많이 찾아오는 해변이다.
에메랄드빛이니 코발트블루니 밀키블루니 하는 단어들로도 금능 바다의 물빛을 설명하기는 충분치 않다. 보지 않고서는, 아니 보면서도 알 수 없는 오묘한 물빛이다. 바다는 층층이 다른 푸른 빛과 초록빛을 뿜어낸다. 물빛은 물속으로 들어가면 밖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르다. 그 환상적이고도 오묘한 빛깔의 물속에서 물장구 치다 보면 나이를 잊고 국적도 잊는다.
동요 중에 ‘초록바다’라는 노래가 있다.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파란 하늘 빛 물이 들지요. 어여쁜 초록빛 손이 되지요’라는 가사의 초록빛 바다라는 말이 어릴 때부터 영 이해되지 않았는데 금능 해변에서 비로소 이해하고 있다.
금능해수욕장은 협재해수욕장과도 딱 붙어있다. 야영장 옆으로 난 오솔길을 5분쯤 걸으면 바로 협재 해변이다. 텐트를 칠 수 있는 야영장도 협재해수욕장까지 이어져 있다. 협재는 비교적 젊은 친구들이 많이 찾는 해변인데 해변 주변의 식당과 카페들은 죄다 소위 ‘뷰깡패’다.
금능해수욕장은 제주 올레 14코스와도 맞닿아 있다. 14코스는 저지예술마을에서 한림항까지 19km를 걷는 길이다. 월령포구에서 한림항까지 걷는 해안길에서 금능해수욕장과 협재해수욕장을 지난다. 숲이 있는 ‘초록 올레’와 바다가 있는 ‘파랑 올레’가 연이어 나타나는 코스다. 돌담길, 마을길, 숲길, 바닷길을 두루 만날 수 있어 인기다.
오후 내내 해수욕을 하고 야영장으로 돌아오면 빛은 사그라지고 이제 캠퍼들이 기다리는 저녁 시간이다. 야영장에선 갑자기 밤이 되어버리는 도시와 달리 천천히, 스멀스멀 밤이 된다. 낮에서 밤이 되어가는 과정을 온전히 바라보고 느낄 수 있다. 내리쬐는 햇살 속에 있다가 이내 노랗고 붉은 여명을 맞고 그러다 푸르른 ‘늑대의 시간’을 지나 천천히 밤을 맞는다.
밤이 되면 어른들의 야생 놀이가 시작된다. 고기를 굽고 장작을 태우며 누구도 불허하지 않는 공식적인 불장난을 만끽한다. 낯선 곳에 가야 낯선 생각이 드는 것처럼 낯선 생각 속에서 낯선 나를 발견하다 보면 익숙한 곳에서 부려놨던 익숙한 나는 과연 진짜 나인가, 한 잔 술과 함께 문득 자문해 보게 되는 낭만적인 밤이다.
그러다 텐트로 들어가면 아늑하다. 제주말로 ‘오소록’하다. 백패커의 1인용 텐트는 그만의 포근함이 있고 4인용 이상의 가족 텐트 안에서는 그들만의 온기로 북적하고도 따뜻하다. 휴일이면 텐트를 이고 지고 야생으로 떠나는 사람은 알 테다. 호텔이나 리조트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무언가가 텐트 안에 있다는 사실을.
캠핑을 하는 동안 사람들은 다시 원초적으로 돌아간다. 도시 생활에서 말끔하게 숨겨져 있던 원초적 욕구가 너나 할 것 없이 바로 드러나고 소소한 상황 속에서 아이처럼 당황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성취감을 느끼기도 한다. 거저 주어지지 않는 잘 곳과 먹는 것을 해결하려 애를 쓰고 그렇게 갖춘 소박한 의식주 속에서 고급 호텔에서 느끼지 못했던 위안을 얻기도 한다.
캠핑에 입문한 지 1년 정도 된 어느 캠퍼에게 캠핑의 매력을 물으니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다. 갇힌 공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이 있고 여행 이상의 감흥을 느끼게 해준다”고 말한다. 또 다른 캠퍼는 “캠핑을 떠나오면 일상과는 잠시 멀어져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되는 상태가 자주 찾아온다. 그 상태를 잊지 못해 자꾸 캠핑을 떠나게 된다”고 했다.
캠핑의 매력은 누가 뭐래도 야생에 있다. 잘 갖춰지지 않은 환경 속에서 오히려 인간 본연의 활기를 얻는다. 쓸데없는 일처럼 보였던 생활의 소소한 일들이 무엇보다 쓸모 있는 일이 되고, 꼭 필요한 일이라 여겼던 일이나 물건들이 불필요한 것이 되기도 한다. 1박 2일의 캠핑만으로도 삶에 환기가 된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