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업·홍걸 형제 화해하고 DJ 기념관 추진…시에 매입 요청했지만 근저당 많아 오세훈 시장 난색
7월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송주범 서울시 정무부시장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포착됐다. 문자메시지 내용에 따르면 조 의원은 송 부시장에게 “(김대중 전 대통령 사저가) 각종 세금 체납으로 사실상 방치돼 있다”며 “이희호 여사 사후엔 친자인 3남 김홍걸 의원에게 소유권이 넘어갔지만, 상속세 체납이 20억 원을 넘었다”고 동교동 사저의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조 의원은 “DJ 동교동 사저는 정치사적 의미가 큰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가기보다는 서울시가 위탁관리하는 게 좋겠다고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김홍업 전 의원(차남)이 가족들과 의견을 모았다”며 “동교동 사저(173평)를 공시지가로 서울시가 매입한다면 은행에 돈을 갚고 김대중평화센터 연구기금, 장학금으로 활용하고 싶다고 한다”고 전했다.
조 의원은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민 통합 차원에서 (동교동 사저 매입을)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한다”며 “DJ는 재임 시절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를 출범시켜 기념관을 건립한 바 있다. 수요일(7월 27일)에 뵙겠다”고 덧붙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8월 3일 조 의원의 요청과 관련해 입을 열었다. 오 시장은 세계도시정상회의(WCS) 참석 등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7월 29일부터 싱가포르와 베트남을 순방 중이었다. 오 시장은 “조수진 의원이 자리를 마련해 출국 전 서울시청에 방문한 김홍업 이사장과 만났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홍업 이사장이) ‘서울시가 동교동 사저를 매입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요청했다. 그 얘기를 미리 들었고 해당 부서에서 검토했다. 근저당으로 큰 액수가 설정돼 있어 가족들이 (근저당을) 풀지 않으면 팔 수도 없고, 서울시에 법적으로 기부채납할 수도 없다. 명확한 법적 장애 사유가 있고, 이 사유가 해결되지 않으면 서울시로서는 진전된 논의를 이어가기 불가능하다는 요지로 말했다. 김 이사장도 (상황을) 이해하고 돌아갔다.”
서울시에 따르면 오 시장은 출장에 나서기 전 김홍업 이사장을 만났다. 이 만남은 앞서 언급했듯이 언론인 출신으로 동교동계와 친분이 있는 조수진 의원 주선으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오 시장은 법적 근거를 들어 사실상 동교동 사저 매입이 불가능한 상황임을 알렸다.
부동산등기부에 따르면 동교동 사저는 김대중 전 대통령 3남이자 이희호 여사의 친자인 3남 김홍걸 의원 명의다. 장남 김홍일 전 의원(2019년 4월 20일 별세)과 차남 김홍업 이사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첫 번째 처 차용애 씨 소생이다. 민법상 부친이 사망할 경우 전처의 출생자와 계모 사이의 친족관계는 소멸한다는 규정에 따라 계모자 관계에서는 상속권이 발생할 수 없다.
이희호 여사가 2019년 6월 10일 별세한 뒤부터 동교동 사저 근저당으로 설정된 금액 총액은 약 24억 원 규모다. 이 여사 별세 당시 동교동 사저 감정가액은 2021년 기준 약 32억 원 상당인 것으로 전해진다.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은 이 여사보다 두 달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 여사가 세상을 떠난 뒤 재산을 둘러싼 잡음 중심엔 차남 김홍업 이사장과 3남 김홍걸 의원이 있었다. 2020년 김 전 대통령 두 아들 사이의 유산 분쟁이 격화했다.
사건의 발단은 2017년 2월 이 여사 생전에 작성된 유언장 내용이었다. 유언장엔 두 가지 주요 항목이 존재했다. ‘노벨평화상 상금 8억 원을 김대중기념사업회에 전부 기부해 김대중 전 대통령 뜻을 계승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 동교동 사저를 지자체나 후원자가 매입해 기념관으로 사용할 경우 보상금 3분의 1은 김대중기념사업회에 기부하고 나머지 3분의 2는 3형제에게 균등하게 상속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유언장은 김홍일 전 의원 부인과 홍업·홍걸 형제가 입회한 가운데 작성됐다. 동시에 유언장에 따라 재산을 처분하겠다는 상속자들의 서명이 담긴 확인서도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20년 1월 김홍업 이사장은 김홍걸 의원이 생전 이 여사 뜻과 형제 간 약속을 어기고 유산을 가로챘다고 주장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김 이사장은 김 의원을 상대로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신청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를 인용했다.
김 의원 측은 가처분 인용 결정에 대해 즉각 이의를 신청했다. 김 의원 측은 “유언장 효력이 발생하려면 일주일 이내에 법원 검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김 이사장 쪽에서 이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고, 민법에 따라 이 여사의 유일한 법적 상속인인 김 의원에게 재산이 상속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던 2021년 6월경 홍업·홍걸 형제는 이 여사 유언대로 사저를 김대중·이희호 기념관으로 활용하기로 합의하고 화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형제가 합의에 이를 당시 재산 처분과 관련한 제반사항은 차남인 김홍업 이사장이 직접 챙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 1년가량이 지난 2022년 7월 김 이사장이 서울시 수장을 직접 만난 것이다. 하지만 오세훈 시장이 동교동 사저 매입과 관련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표명해, 이희호 여사 유언대로 동교동 사저가 활용될 수 있을지 여부는 다시 미궁에 빠졌다.
2022년 8월 4일 일요신문이 직접 방문한 동교동 사저 분위기는 썰렁했다. 동교동 사저 대문엔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동 178-1이라는 주소를 알리는 현판과 김 전 대통령, 이 여사 이름이 함께 게시돼 있었다. 과거 한국 정치사 격동기 진보 진영 정치인들의 거점으로 존재감을 뽐냈던 동교동계 본거지의 흔적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7년 대선에서 당선될 당시 왁자지껄했던 동교동 사저 대문 앞 풍경도 생소했다. 대문 앞엔 마포구청 교통지도과에서 게시한 ‘불법 주·정차 단속 구간’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현수막 앞엔 총 4대의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생전에 건립된 사저 옆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역시 고요한 분위기 속에 정상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동교동 사저 뒷골목은 ‘홍대 거리’로 들어가는 핫플레이스 초입부와 맞닿아 있어 오고 가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동교동 사저 주변 분위기는 고요해졌지만, 동교동계로 분류되거나 DJ 키즈라고 불렸던 정치인들의 활동은 여전히 활발하다. 최근 각종 안보 관련 이슈 중심에 서 있는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DJ의 영원한 비서실장’이라 불리며 가장 대표적인 동교동계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6‧1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 비대위원장으로 선거를 이끌었던 윤호중 의원과 최근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김한정 의원은 동교동계 막내 출신이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 문희상 전 국회의장 등 원조 친노로 분류됐던 유력 정치인들도 동교동계에 몸담았던 이력이 있다. 국민의힘 소속으로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김영환 충북도지사와 장성민 윤석열 정부 초대 정책조정기획관 또한 동교동계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1991년부터 2002년까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 영입했던 ‘동교동 사관학교’ 이른바 DJ 키즈들의 활동 역시 왕성하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등 제20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던 이들 모두 DJ 키즈 출신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요직을 맡았던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인영 전 통일부 장관, 박병석 전 국회의장, 김진표 국회의장,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 모두 DJ 키즈라 불리며 정치권에 입문했다. 현재 민주당 비대위를 이끌고 있는 우상호 비대위원장 역시 DJ 키즈다.
DJ 키즈 중엔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힘 진영에서 활동하는 이도 적지 않다. 윤석열 정부 실세 중 하나로 꼽히는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준비위원장을 역임한 박주선 전 의원 역시 DJ 키즈 출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