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조건과 소비자 입증 여부 논란 여전…소비자 편익 맞춘 ‘디테일’ 강화 필요 지적
#한국형 레몬법은 소비자에게 불리하다?
‘한국형 레몬법(개정 자동차관리법 제47조 2항)’은 2017년 9월 국회를 통과해 2019년 1월부터 시행됐다. 이에 따라 제조사가 1회 이상 수리하며 누적 수리기간이 30일을 초과한 자동차, 2회 이상 수리했으나 동일한 종류의 중대 하자가 재발한 자동차, 3회 이상 수리했으나 동일한 종류의 일반 하자가 재발한 자동차의 경우 국토부 산하 중재위원회에 중재 신청을 할 수 있게 됐다. 여기서 중재 결정은 법원의 확정 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지므로 강제력이 생긴다.
문제는 충족해야 할 조건이 까다롭다는 점이다. 차량을 인도받은 후 6개월 이내에 반복적인 하자가 발생하지 않을 경우 소비자에게 입증 책임이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레몬법의 적용 대상은 1년 미만에 주행거리가 2만km 미만인 차인데 실제 자동차라는 게 그 안에 큰 문제가 발생하기 쉽지 않다. 잦은 고장과 반복적인 불량 등 하자 발생은 그 이후에 발생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 입증 책임 면제를 6개월로 제한할 경우 혜택을 보는 소비자는 극도로 적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비전문가인 소비자가 입증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문제다. 운전자가 느끼기엔 동일한 결함인데도 제조사가 결함의 원인을 다르게 표기하면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반복적인 엔진 떨림을 놓고도 제조사 측이 각각 점화 플러그와 배선 결함 탓이라고 주장하며 부품 코드를 다르게 기입하면 동일한 고장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입증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급발진 같은 결함의 책임소재를 따질 경우 거의 대부분 차주가 패소한다. 반면 미국의 경우 자동차 제조사가 자사 차량에 결함이 없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결함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도 제조사가 보상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레몬법이 계약 시 강제성이 없는 규정인 점도 교환·환불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제조사가 자발적으로 서면 계약서에 ‘신차로의 교환 또는 환불 보장’과 관련된 내용을 넣지 않으면 소비자는 레몬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중국 등 일부 국가의 수입 차량은 여전히 계약서에 관련 내용 삽입을 거부하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상위법을 제정해 국산차, 수입차 구분 없이 적용할 수 있도록 강제력을 만들어야 하는데 국토부가 업체마다 협의를 해서 동의를 받는 독특한 방식을 고수했다. 법이 만들어지고도 1~2년 동안 업체들 찾아다니면서 시간을 허비했다”고 지적했다.
독소조항은 또 있다. 차주가 레몬법의 적용을 받으려면 제작사에 ‘추가로 고장이 날 경우 레몬법을 적용하겠다’고 사전에 통보해야 교환·환불이 가능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동차와 관련한 정보를 교환하는 네이버 카페 등에서는 ‘강제성도 없는데 무슨 법이냐. 레몬법이 아니라 레몬 권고사항이다’ ‘레몬법 같은 거 없다고 생각하는 게 차라리 맘이 편하다’라는 내용의 글도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여전한 법의 사각지대, 필요한 건 '디테일'
까다로운 과정을 뚫고 교환 조치를 받아냈지만 제조사가 추가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차량가 2억 원이 넘는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580 4매틱를 구매한 A 씨는 구매한 지 3일 만에 엔진 시동에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중재위를 통해 교환 결정을 얻어냈으나 제조사인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측이 A 씨에게 교환 대상 모델이 연식이 2021년에서 2022년식으로 변경됐다는 이유로 1000만 원의 추가금을 요구하면서 교환이 늦어졌다.
중재위의 교환·환불중재 규정의 제32조 ‘중재판정의 이행’에 따르면 교환은 중재 대상 차량과 같은 차종, 연식, 사양의 신차와 교환하는 것이 원칙이다. 교환판정이 내려졌으나 해당 하자 차량과 동일한 차량의 생산이 중단됐거나 차량의 성능 개선으로 해당 차량과 같은 품질·기능이 보장되지 않아 교환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제작자는 중재위에 보고하고 교환 대신 환불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A 씨 측을 대리해 중재위 결정을 이끌어 낸 하종선 변호사는 “2021년식하고 2022년식의 스펙은 거의 99.9% 동일하다. 연도가 바뀌고 물가가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차 가격이 오른 상황이기 때문에 교환 판정이 그대로 이행되어야 마땅하다는 게 차주 측 입장”이라고 말했다. 민법 581조에 따르면 매수인은 상품에 하자가 있을 경우 하자가 없는 물건을 청구할 수 있는 ‘완전물급부청구권’을 지닌다. 그러나 자동차처럼 연도가 바뀔 경우 생산이 중단되고 가격이 오르는 경우 이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지는 논란거리다. 원칙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만약 차주가 교환·환불중재 규정의 제32조에 의거해 교환 대신 환불을 택한다고 해도 다시 중재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시일이 소요된다. 결국 A 씨는 추가금을 내고 2022년식 차량으로 교환받기로 했으나 1년 동안 차를 이용하지 못해 생긴 ‘사용 이익 상실’에 대한 손해배상과 위자료를 청구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벤츠코리아 측이 요구한 추가금이 부당한지도 시시비비를 가리게 된다. 국내에는 아직 관련 판례가 없어 중요한 선례가 될 전망이다.
독일 역시 레몬법에 따라 불량 차량의 교환·환불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독일에서는 이미 연식이 바뀌고 차의 성능과 기능이 향상됐더라도 추가금 없이 신차를 교환해 줘야 한다는 판례가 나온 상태다. 이와 관련, 이호근 교수는 “실제 일반적인 공산품의 경우 제품이 단종됐고 제조사 과실이 분명할 때는 신제품으로 맞바꿔준다. 해외 사례에 비춰 충분히 예상 가능한 분쟁이 발생했음에도 ‘한국형 레몬법’이 이런 디테일을 손보지 못하는 바람에 소비자 피해가 유발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시행 3년이 넘었지만 레몬법 적용으로 혜택을 본 차주는 많지 않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1년 말까지 3년간 각종 결함으로 시정조치(리콜)에 들어간 자동차는 총 687만 대 이상이다. 이 중 중재위에 교환·환불 중재신청이 들어간 건수는 총 1454건이다. 이 중 3년간 중재위에서 판정이 난 건수는 170건에 불과하다. 2021년 말까지 신차 구입 후 하자 및 결함으로 인한 교환은 1건(0.6%), 환불은 2건(1.2%), 화해는 11건(6.5%), 각하·기각 판정은 156건(92%)이다. 법안 시행 후 3년간 단 3건만이 입법 취지에 따라 신차로의 교환·환불 판정을 받은 셈이다.
김필수 교수는 “미국에는 NHTSA(미국도로교통안전국) 같은 소비자 중심의 공공기관이 존재하고 징벌적 손해배상과 제조사 입증책임까지 갖춰져 있어 제조사들이 교환·환불을 우선적인 옵션으로 고려한다. 국내에서 미국의 레몬법을 참고했다지만 기반이 되는 환경은 고려하지 않았고 또 제대로 된 자문 없이 졸속으로 입법하는 바람에 제조사들의 갑질에 소비자들만 속수무책으로 노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 관계자는 “소비자가 6개월까지는 입증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고 중재위까지 올라갔을 경우 위원회 내부 전문가가 대신 살펴보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판단된다”며 “중재위 판정 건수가 적은 이유는 중재 중간에 제조사와 소비자가 합의해 해결하는 경우가 상당하기 때문인 걸로 안다”고 설명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