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검증인’ 사업 등 전개 “이 분야는 해외에 진 기술 빚 없어…국내 시장서 살아남는 모델 보여주고파”
DSRV는 이들 사업을 토대로 많은 기업이 블록체인 생태계에 뛰어들어 다양한 블록체인 응용프로그램(DApp)이 나오길 기대한다. 김지윤 DSRV 대표는 “아마존의 AWS(클라우드 서비스)가 나오면서 서버실이 따로 필요 없게 됐고, 이에 따라 수많은 스타트업이 출연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우리 서비스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요신문은 코인, NFT 등 ‘자산에’ 매몰돼 있는 블록체인 업계에서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김지윤 DSRV 대표를 만나 현재까지의 과정과 비전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삼성전자 엔지니어 출신이다.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생겼나.
“삼성전자에서 갤럭시 속 GPU(그래픽처리장치)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엔지니어로서 늘 동일한 기술을 쓰다 보면 도태되는 느낌이 들어 고랭(Go)이라고 하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싶었다. 깃허브(개발자 커뮤니티)에서 고랭으로 즐겨찾기가 가장 많은 코드를 받아 분석했는데 알고 보니 블록체인 소스코드였다. 이더리움의 메인 클라이언트인 Geth(고이더리움) 역시 고랭으로 만들어졌다. 어떻게 보면 우연히 업계에 들어오게 됐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블록체인 업계로 넘어올 만한 매력이 있었나.
“GPU는 기술 부채가 엄청나게 쌓여 있다. 워낙 오래전에 나온 기술이다 보니 이미 축적해 놓은 특허, 숙련도 등에서 미국을 따라갈 수가 없다. 샌프란시스코 산호세에 출장 가서 N 사 엔지니어들과 얘기하다 보면 아시아에서 삼성이 GPU를 만든다는 걸 위협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일종의 억울함이 내면에 있었나 보다. 한국의 특산품이 반도체나 휴대전화인데 소프트웨어도 한 축을 담당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새롭게 알게 된 블록체인은 흔히 길거리에서 나온 기술이라 부른다. 블록체인은 기술 부채가 없다. 비트코인 백서가 나온 직후로 잡아도 길어야 12년밖에 안 된 상황이다. 그런 면에서 글로벌에서 공정하게 경쟁해볼 수 있는 분야가 블록체인이고, 지금 들어와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가상자산 시장에서 사업한다고 하면 코인이나 NFT를 찍어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정반대 방향 사업을 하고 있다.
“창업을 고민하던 2018년은 너무 많은 코인, 토큰들이 정확한 설명 없이 공개되던 시기였다. 투자자들도 아이콘이 예쁘다고, 판타지 메타(경향)가 왔다고, ‘드래곤’ ‘엘프’ 등에 고민 없이 투자했다가 큰돈을 잃었다. 그때 논스라는 블록체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는데, 여기에서 만난 엔지니어들과 ‘특정 프로젝트에 대해 중립적인 리포트를 쓸 수 있다면 피해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됐다. 당시에는 화이트페이퍼(백서)나 홈페이지에 어려운 기술 용어가 많았고 전부 영어였기 때문에 국내 투자자의 접근성이 떨어졌다. 창업해서 코인이나 토큰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가 최소한 코드화돼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잘 안됐다.”
―안 된 이유가 뭔가.
“실제로 분석할 만한 코드조차 없는 곳이 태반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남들과 똑같은 리포트를 쓰는 건 의미가 없다고 봤다. 그런 상황에서도 중립적인 리포트를 썼지만, 업계에 ‘선배’라고 할 만한 사람도 없었다. 업계에 좋은 일을 하면 많은 분이 손을 내밀 줄 알았는데 사업은 선행과는 다르다는 걸 느꼈다. 버티다 보니 사무실 임대료도 못 내는 상황이 왔다. 그때부터 영리로 전환하면서 구성원들과 ‘10년 동안 업계에서 변하지 않는 문제를 찾아보고 그 문제를 해결하자’고 뜻을 모았다.”
―2017년부터 블록체인에 관심을 뒀다면 코인으로 큰돈을 벌었을 수도 있었겠다.
“처음부터 현재까지 코인에 투자한 경우가 없다. 입장권 개념으로 극히 미미한 수준을 보유한 적은 있지만 투자 목적으로 구매한 경우는 없다. 창업 초기에는 특정 프로젝트에 대해서 중립적인 리포트를 쓸 수 있으려면 내가 특정 코인에 투자한 상태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밸리데이터(검증인) 회사로 많이 알려져 있다. 밸리데이터에 대해 쉽게 설명해 달라.
“블록체인은 새로운 블록을 생성하면서 거래 내역을 담고 장부를 작성한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노드)은 기록이 참인지 거짓인지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장부에 기록이 된다. 이 노드들은 전 세계적으로 분산된 것이 많을수록 검사 기간이 길어진다. POS(Proof of Stake·지분증명) 방식에서는 자신의 지분을 걸고 검사를 하고 보상으로 지분만큼 코인을 받는다. 밸리데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지분에 참여하는 액수가 일정액이 되어야 하는데 개인 투자자의 경우 대부분 이 정도 규모를 만들 수 없다. 그래서 규모를 조성한 밸리데이터에게 자신의 지분을 위임한다. 밸리데이터는 이렇게 위임받은 액수만큼 받은 보상 코인을 일정액 수수료를 떼고 나눠준다. 이게 밸리데이터 사업이다.”
―밸리데이터 가운데 수수료가 0%인 경우도 있다. DSRV는 수수료가 약 10%인 경우도 있어서 이자만 본다면 DSRV에 맡길 이유가 뭔가.
“밸리데이터 중에는 0% 수수료를 표방하고 무한 경쟁을 하는 그룹도 있다. 일단 수수료를 낮춰 위임받은 다음 조금씩 올리는 모델이다. 그런데 수수료가 저렴한 밸리데이터는 책임감 없게 운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벌금(Slashing)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밸리데이터는 검증 과정에서 잘못을 저지르면 페널티가 있고 자산을 삭감당하는데 이때 위임된 자산이 일정 액수 혹은 통째로 삭제된다. 최근 규모가 큰 유명 밸리데이터도 삭감당한 바 있어 자사 돈으로 물어줬는데 0% 수수료 치킨게임에 참여한 밸리데이터는 자산 삭감을 당했을 때 물어줄 가능성이 높지 않을 수 있어 수수료만 보고 위임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DSRV는 시장에서 수수료가 제일 비싼 회사 중 하나다. DSRV는 블록체인 인프라 회사다. DSRV는 밸리데이터 사업으로 번 수익 일부를 해당 코인 생태계 조성을 위해 쓴다. 예를 들어 해당 코인 생태계에서 개발자들이 쓸 수 있는 무료 도구를 만든다거나 사용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DApp을 만들기도 한다. 해당 코인을 스테이킹으로 맡기는 사람은 일부 수수료를 내더라도 DSRV에 위임해야, 우리가 생태계를 조성해 코인 자체 가치를 더 올린다고 믿는다. 그런 컨센서스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수수료로 치킨 게임을 하지 않는다.”
―블록체인 인프라 회사를 표방하는데 또 다른 사업 부문은 어떤 게 있나.
“DSRV 비전은 누구나 다양한 체인 생태계에서 동일한 개발 경험으로 DApp을 만들게 하는 게 목적이다. 이더리움 지갑 정보 조회 등을 할 수 있는 ‘이더스캔’ 같은 익스플로러 개발 툴이나 스마트컨트랙트(거래의 일정 조건을 만족시키면 자동으로 거래가 체결되는 기술) 기반 자산관리 대시보드를 개발할 수 있게 한다. 말하자면 웹3(WEB3)용 비주얼스튜디오로 볼 수 있다. 올댓노드라는 서비스도 있다. 블록체인에서 DApp을 개발하려면 자신의 노드가 있어야 하는데 DApp을 만드는 개발자가 노드까지 유지하는 건 버거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가 대신 노드를 유지해주는, 말하자면 서버를 대신 돌리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마존 클라우드 서비스인 AWS가 나오면서 IT 회사를 만들기 위해 서버실을 만들고 인터넷 선을 깔아야 하는 이유가 없어졌다.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스타트업 창업할 수 있게 됐다. 블록체인 기업에게 그런 환경을 제공하길 꿈꾼다.”
―“블록체인을 통해 코인이나 다양한 서비스가 나왔지만 내 인생이 달라진 게 없다”는 얘기도 있다. 예를 들어 아마존이 만들어지고 집에서 책을 받아보고, 구글을 통해 검색이 편해지는 그런 인생의 변화가 블록체인 서비스에서는 없다는 지적이다.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 여기서 보고, 듣고, 배우고, 구매하는 세상이 오리라 상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거다. 아직은 미래를 정의하는 단계라고 본다. 일단 절대적인 DApp의 가짓수가 적다. 많은 서비스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발견 못 해낸 단계라고 본다. 현재는 DApp 만드는 게 어려운데 내가 흔히 ‘지금은 삽으로 건물 올려야 하는 시기’라고 얘기한다. 우리는 그런 환경에서 중장비를 만들어주는 회사라고 보면 된다. 중장비가 있어야 건물 올리는 시간, 인력, 비용이 줄어든다. 비용이 줄어들면 돈 안 되는 DApp도 나올 거고 1개의 DApp 출시가 다른 DApp과 시너지를 일으켜 수십 배의 효용을 줄 수 있고, 웹3 시대에서 다양하게 이용될 수 있다. 아직 바뀐 게 없다고 느낄 수 있는데 점점 기술이 그런 분들을 향해 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 말을 한 분들이 ‘이런 건 좋네’라고 말한 서비스가 블록체인으로 돌아가고 있는 시대가 와야 한다.”
―웹3에 대해서도 극단적으로는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웹3는 ‘내 시간을 좀 더 가치 있게 만드는 모든 연결성’을 뜻한다고 본다. 연결에서 수많은 창의성이 발현될 것 같다. 최근 트위터 프로필 사진에 자신이 구매한 NFT를 연결해서 보일 수 있도록 변경됐다. 수억 원을 주고 산 원숭이 NFT를 걸어두면 내가 트위터하는 시간이 더 가치 있게 변할 수 있다. 이걸 좀 더 상상해보면 예를 들어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하는데 캐릭터 머리는 내가 산 원숭이 NFT를 쓰고 신발은 걸으면 돈 번다는 운동화 NFT ‘스테픈’을 신는다. 그럼 내가 배틀그라운드를 하는 그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가치 있게 변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아직 절대적인 DApp의 수가 적어 상상력이 부족한데, DApp이 늘어나면 사람들의 상상력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리라 본다.”
―회사는 수익을 내고 있나.
“아직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사업이 흑자를 내는 단계는 아니다. 초기에 10년 동안 변하지 않는 문제를 찾아서 3년 동안 개발만 했다. 현재 성장도 마케팅이 아닌 자연스러운 자체 성장이었다. 투자 유치를 위해 노력 중인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우리 비전에 큰 관심을 보인다. 초기에는 한국에서 블록체인 사업을 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KB인베스트먼트, 네이버 등으로부터 국내 투자도 받은 바 있다.”
―국내에서 블록체인 관련 사업을 하기 어려운 점은 뭔가.
“사업하면서 꼭 필요한 가상자산 법인 계좌가 발급이 안 된다. 싱가포르에 계좌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탈세 목적이 아니라 국내에서 계좌가 안 나오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세금을 내고 싶어 하는 가상자산, 블록체인 기업이 많다.”
―메인 회의 공간에 ‘크립토(가상자산)는 절대 죽지 않는다’라는 글자가 보인다. 의도가 있나.
“블록체인, 웹3 업계에서 일한다는 건 개인이 리스크를 진다는 의미다. 제도도 정비가 안 됐고 투자도 확실하지 않다. 여기가 다음 시대의 인터넷이라고 믿고 있더라도 이 업계가 망하면, 어쩌면 경력 단절 각오를 하고 와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자산 가격은 변동성이 엄청나게 심하다. 코어는 변한 게 없더라도 외부에서 엄청난 진동이 있으면 사람인 만큼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때 ‘핵심은 이거였지’하고 되새기는 용도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