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채굴기 판매 업체 ‘다단계 영업’ 하며 폭리 취해…채굴기도 없으면서 투자금 받아 챙긴 업체도
M 사는 파일코인을 채굴한 뒤 투자자에게 지급하기로 했으나 코인 지급을 중단했다. 현재까지 고소 등 피해를 밝힌 이들은 300여 명, 피해 금액은 100억 원 이상이라고 알려졌다. 그런데 파일코인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 A 씨는 이런 일은 앞으로 줄줄이 터질 사건의 예고편일 뿐이라고 밝혔다. A 씨는 “파일코인 채굴 업체가 전부 사기는 아니지만, 사기 업체가 매우 많고 앞으로 터질 건이 최소 20건 많으면 100건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파일코인은 그 자체로 스캠(사기) 프로젝트는 아니다. 현재 서버 등을 운용할 때 중앙집중화된 데이터 업로드 방식에서 탈피해 일종의 토렌트와 같은 개념으로 IPFS(InterPlanetary File System)라는 새로운 데이터 분산화 업로드 방식을 고안하게 된 게 파일코인의 시작이다. 만약 어떤 서버에 정말 중요한 데이터를 올려뒀는데 서버가 해킹당하거나 물리적으로 불에 탄다면 데이터를 복구할 수 없다. 하지만 이를 분산화시켜 저장해두면 좀 더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
IPFS에 담기는 데이터들 가운데 유실되지 말아야 할 정말 중요한 데이터는 책임지고 안전하게 맡겨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 때 검증된 저장 공간을 기여해주는 사람이 파일코인 채굴자로, 이들에게 대가로 지불하는 수단이 파일코인이다. 파일코인이 채굴 사기의 온상이 된 건 결국 이 채굴이란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 비트코인을 포함한 가상자산 증명방식으로 작업증명방식(POW)을 채택한 코인이 많았다. POW는 쉽게 말하면 트랙을 도는 포뮬러 레이싱이 계속되는데 여기서 1등을 한 차량만 보상으로 코인을 받을 수 있다. POW는 흔히 고도의 컴퓨팅 파워, 높은 성능의 그래픽카드 등이 필요했고 채굴기가 막대한 연산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온도가 높아져 쿨링에도 많은 전력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전력 낭비나 자연 파괴 등 이슈가 불거지면서 최근에는 지분증명방식(POS)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그래서 현재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코인에선 흔히 아는 ‘채굴기’가 없어진 상태다. 이더리움도 2.0 업그레이드하면 채굴기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비트코인, 이더리움 이후 채굴기를 판매할 수 있는 코인이 파일코인이고 이에 따라 ‘안정적으로 파일코인을 모아갈 수 있다’는 등의 말로 채굴기 판매가 시작됐다.
파일코인은 장비를 직접 사서 채굴할 경우 최소 2억 원 이상 일반적으로 5억 원 이상 데이터센터를 구성해야 정상적으로 보상이 나온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파일코인 채굴 투자는 채굴기를 판매하는 게 아니라 데이터센터처럼 구성해 일정 지분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쉽게 풀이하면 빌딩 투자에 비유할 수 있는데 이들 채굴업체는 큰 빌딩을 건설한 뒤 월세를 투자자에게 나눠주겠다고 제안했다고 보면 된다. 직접 건물을 짓고 관리하면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초기 큰 비용이 들어가는 데다 여러 가지 관리 문제가 있기 때문에 지분투자 방식으로 진행한 것이다. 채굴 투자업체가 약속한 대로 귀찮은 문제를 처리해주고 수익을 분배해주면 좋겠지만 국내 여러 채굴업체는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전해진다.
2020년 하반기부터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을 시작하면서 파일코인 채굴기 영업도 극심해졌다. 업체들이 난립해 약 100여 개 업체가 파일코인 채굴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 영업 방식에 불법 다단계 영업 방식이 끼어 있어 채굴기를 상식 밖으로 비싸게 파는 경우도 많았다고 알려졌다.
파일코인 채굴기 사기 업체에 몸담았던 B 씨는 “채굴기를 판매하면 영업사원 수익으로 30% 이상이 떨어지기도 했다고 알고 있다. 이 정도를 떼어주고 비싼 채굴기를 사면 수익을 벌기는 거의 어렵다”고 설명했다.
가상자산 채굴업계 한 전문가 역시 파일코인의 다단계 영업 방식을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파일코인이 불법 다단계 영업 방식을 취하며 세뇌가 대단했다고 알고 있다. 나이 많은 투자자들이 다수 진입한 피해 사례도 많다고 안다”고 전했다.
파일코인 채굴 사기 업체에 당해 약 1억 5000만 원가량을 날린 가족을 둔 C 씨도 파일코인 채굴기를 불법 다단계 영업 방식으로 판매하는 업체가 많다고 설명했다. C 씨는 “다단계 인가를 받지 않고 불법적인 수당을 지급하면서, 세금을 내지 않고 영업하는 채굴기 업체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들은 비정상적인 수당을 떼어주기 때문에 영업사원도 사기에 가까운 말을 하며 적극적으로 영업하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단순히 채굴기를 비싸게 사는 문제가 아닌 경우도 있었다. B 씨는 “파일코인은 채굴자에게 F 코드라는 걸 부여한다. 해당 채굴자가 얼마나 채굴하는지, 채굴량을 증가시키는지를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코드다. 그런데 투자자들은 F 코드가 뭔지도 모르고 어떻게 보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F 코드를 공개하지 않는 채굴자가 대부분이었다. 채굴기 세팅도 안 한 채 일단 돈을 받아 간 뒤에 파일코인은 거래소에서 사서 지급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F 코드를 공개한 채굴자 경우에도 투자금이 제대로 운용되지 않은 업체가 많다고 알려졌다. 예를 들어 30페타바이트(3만 테라바이트) 규모 투자금을 유치했지만, 확장 속도가 매일 10테라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10테라로 30페타까지 확장하려면 3000일이 걸린다. 만약 10테라씩 3000명이 투자했다면, 3000번째 투자한 사람은 약 8년 뒤에야 자신의 건물이 지어지고 월세가 들어오게 되는 셈이다.
이런 업체는 대부분 보상으로 들어오는 코인을 3000명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지급했고 당연히 턱없이 적은 보상만 받았다. 또는 유효 채굴 파워가 없음에도 채굴하는 것처럼 속이고 거래소에서 파일코인을 사서 분배하는 업체도 있었다. B 씨는 “국밥을 5만 원에 판다고 해서 그 자체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5만 원에 파는 이유를 거짓으로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차승호 법무법인 경세 변호사는 “문제된 파일코인 채굴업체의 경우 투자자들이 코인 채굴에 필요한 저장공간을 구입하고 채굴업체에 코인 채굴을 위탁하면 투자자들이 구입한 저장 공간의 양에 비례해 코인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사기죄의 성립 요소인 기망행위에 해당하는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차승호 변호사는 “투자금을 받을 당시 실제로 코인을 채굴해 투자자들에게 지급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는지가 문제다. 이때 채굴기도 없이 투자금을 받아 놓고 거래소에서 파일코인을 사서 투자자들에게 지급한 경우나 채굴 코인 개수 대비 터무니없이 많은 투자금을 받은 경우는 투자자를 기망한 것이고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일반적인 경우 민형사상 절차를 통해 본인의 투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있지만, 불법 다단계 금융사기 업체의 경우 후발 투자자들은 민형사상 절차를 거치더라도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