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베놈’ 세계 기록 경신, ‘어텐션’ 국내 차트 올킬…카리스마와 청순미 차별화된 매력 발산
YG엔터테인먼트 소속 블랙핑크는 더는 설명이 필요 없는 그룹이다. 신곡을 발표할 때마다 신기록을 세웠고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규 2집 발매를 앞두고 8월 19일 선공개한 ‘핑크 베놈’의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서 24시간 동안 무려 9040만 뷰를 달성해 ‘여성 아티스트 세계 최고 기록’을 자체 경신했다. 9월 16일 발표 예정인 2집 앨범을 앞두고 공개한 일종의 ‘예고편’ 성격이었지만 반응은 폭발적이다.
평소 같으면 블랙핑크와 ‘핑크 베놈’으로 각종 음원차트와 SNS가 도배됐을 텐데 최근 양상은 다르다. 신인 뉴진스가 블랙핑크의 화제성에 결코 밀리지 않는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뉴진스는 방탄소년단(BTS)이 소속된 하이브의 산하 레이블 어도어가 처음 내놓는 신인 걸그룹이다.
대형 기획사의 신인 그룹은 여러 후광을 누리기 마련이지만 뉴진스는 그 기대를 뛰어넘는다. 출발부터 신기록의 연속이다. 데뷔 음반은 발매일인 지난 8일 26만 2815장(한터차트)을 팔아치웠다. 걸그룹 데뷔 음반의 첫날 판매량으로는 역대 최고치다. 데뷔곡 ‘어텐션’ 역시 멜론, 지니, 벅스, 플로 등 4개 온라인 음원사이트에서 실시간 음원차트 1위를 차지했다. 최근 5년 동안 발표된 아이돌 데뷔곡 가운데 실시간 음원 차트 4개를 석권한 곡은 ‘어텐션’이 유일하다.
#블랙핑크 vs 뉴진스
블랙핑크와 뉴진스는 활동 경력과 팬덤의 규모, 글로벌 시장에서의 영향력 면에서 체급이 극명히 나뉜다. 블랙핑크가 최정상에 올라 있다면, 뉴진스는 이제 막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기록 면에서도 격차는 뚜렷하다.
2016년 데뷔해 활동 7년 차에 접어든 블랙핑크는 방탄소년단과 더불어 전 세계 K팝 열기를 이끄는 양대산맥이다. 이번 ‘핑크 베놈’의 뮤직비디오는 공개 당시 동시 접속자 수가 총 259만 4962명에 달했다. K팝 걸그룹 최다 접속 기록이다. 뮤직비디오 1억 뷰 달성까지 걸린 시간은 29시간 35분. K팝 걸그룹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다.
블랙핑크의 파워는 글로벌 음원차트에서도 증명된다. ‘핑크 베놈’은 발표 직후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74개국 아이튠즈 송차트 1위를 휩쓸었고,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 톱 송 글로벌 차트에서도 3일 연속 정상을 차지했다. 9월 16일로 예정된 블랙핑크 2집은 선주문량만 이미 150만 장(8월 18일 기준)을 돌파했다. 앨범 발매일까지 약 3주가 남은 만큼 선주문 200만 장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YG엔터테인먼트는 “역대 최대 제작비가 투입됐다”고 밝혀 궁금증을 자극하고 있다.
현재 미국 뉴욕에서 새 뮤직비디오 촬영을 진행 중인 블랙핑크는 10월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전 세계 26개 도시에서 150만 명을 동원하는 월드투어에 나선다. K팝 그룹 가운데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만 가능한 투어 규모다.
넘볼 수 없는 활약을 이어가는 블랙핑크만큼이나 최근 가요계의 화제는 ‘뉴진스의 등장’이다. 10대 소녀 다섯 명으로 이뤄진 신인그룹이 이례적인 돌풍을 일으키면서 같은 시기 신곡을 발표한 블랙핑크와 묘한 대결 구도까지 형성하고 있다. 가요계 한 관계자는 “체급으로는 아직 대결 상대가 되지 않지만, 뉴진스의 폭발적인 성장이 기대되는 만큼 앞으로 K팝 걸그룹에서 ‘투톱 체제’를 이룰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뉴진스는 소녀시대와 샤이니, 에프엑스 등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그룹을 만든 아트디렉터 민희진 대표가 하이브로 이적해 내놓은 첫 번째 걸그룹으로 주목받는다. 아이돌 시장에서 흥행 실력을 인정받은 전문가가 새로운 레이블을 설립해 공개한 그룹인 데다, 방탄소년단이 몸담은 울타리에서 출발한 신인인 만큼 데뷔 전부터 팬덤의 시선도 끌었다. 그렇게 베일을 벗은 뉴진스를 향한 반응은 기대 그 이상이다.
데뷔 그룹으로는 5년 만에 멜론 실시간 차트 1위에 오르고, 6년 만에 주간 차트 1위까지 석권한 뉴진스는 미국 음악 전문 매체 빌보드, 스포티파이 차트에서도 신인이 거두기 어려운 성과를 이뤘다. 8월 23일(현지시간) 빌보드가 발표한 최신 차트(8월 27일 자)에 따르면 뉴진스는 ‘빌보드 글로벌(미국 제외)’, ‘빌보드 글로벌 200’, ‘히트시커스 앨범’, ‘월드 앨범’, ‘이머징 아티스트’ 등 총 5개 차트에 이름을 올렸다. ‘어텐션’은 ‘빌보드 글로벌’ 34위를 차지했고, 두 번째 타이틀곡 ‘하이프 보이’는 36위에 올랐다. 스포티파이에서도 신기록을 세웠다. ‘어텐션’과 ‘하이프 보이’는 한국 스포티파이 ‘일간 톱 송’ 차트에서 15일 연속 1, 2위를 지켰다.
블랙핑크가 카리스마 넘치는 퍼포먼스에 집중한다면 뉴진스는 청량한 10대의 매력으로 승부한다. 청순한 매력을 강조한 긴 생머리, 건강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운동복 스타일의 의상, 화장기 없는 말끔한 얼굴로 자연스러우면서도 밝은 이미지를 강조한다. 최근 활약하는 걸그룹이 대부분 당찬 걸크러시 느낌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10대 소녀의 이미지를 추구하면서 차별화를 노린 점이 적중했다. 1990년대 후반 인기를 누린 1세대 걸그룹 핑클, S.E.S가 연상된다는 반응도 있다. 과거 유행했던 R&B 장르를 선택하거나 멜로디가 돋보이는 뉴진스의 음악은 1020세대뿐 아니라 3040세대까지 팬덤으로 흡수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소속사 주식까지 요동
뉴진스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주식시장이다. 등장하자마자 폭발적인 바이럴 효과로 K팝 기대주로 우뚝 선 뉴진스는 최근 엔터테인먼트 주식을 논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그룹 가운데 하나다. 특히 하이브 종목토론방에서 뉴진스의 이름은 방탄소년단보다 더욱 자주 눈에 띈다. 하이브 주가에 그만큼 절대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거래소 따르면 하이브의 주가는 뉴진스의 첫 번째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7월 22일 전날 대비 1만 원 오른 16만 7000원을 기록했다. 이후 한 달 동안 하이브 주가는 17.3%가 상승했다. 이후 소폭의 등락을 거듭하다가 24일 기준 17만 6000원에 장을 마쳤다. 방탄소년단의 군 입대 이슈 등의 영향으로 한때 하락을 거듭했던 하이브가 뉴진스를 통해 투자심리를 자극해 반등에 성공했다는 분석이다. 덕분에 방탄소년단에 매출 의존도가 절대적이었던 하이브가 뉴진스의 등장으로 변화를 맞고 있다.
블랙핑크 역시 ‘핑크 베놈’의 효과에 힘입어 YG엔터테인먼트 주가를 끌어올렸다. 8월 24일 YG엔터테인먼트는 전날보다 3.93%가 오른 5만 82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블랙핑크의 컴백이 임박하면서 주가는 반등을 거듭했다. 6월 23일 종가(4만 1750원)와 비교해 두 달 동안 41.5%가 상승했다. 같은 기간 하이브, JYP, SM 등 주요 4대 엔터사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