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시스템 부재…추첨 이벤트 당첨은 항상 ‘빅컬’ 몫, 반짝 인기 일부 작가 조수 고용해 작품 양산하기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술에 관심을 두고 아트테크(미술품 재테크)를 해 온 A 씨의 말이다. 그는 단기간에 수천만 원을 쓰면서 미술에 소위 ‘미쳐’ 있었다. 그런데 미술계에서 부정적인 일을 여러 차례 겪은 데다 최근 금리 인상기도 겹쳐 당분간은 더 구매할 생각이 없다고 전했다.
최근 미술계에 진입한 ‘컬린이’(컬렉터와 어린이의 합성어) 가운데 A 씨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꽤 있다. 여기에는 꽤 심각한 문제도 있고, 때로는 문제 삼기엔 어렵지만 불쾌한 상황도 있었다. 미술계에서 드러났던 문제를 짚어봤다.
최근 미술계는 미술 자체에 대한 관심이나 아트테크에 관심을 두게 된 컬린이들이 많아졌다. 대표적인 일반인 컬렉터 커뮤니티인 J 카페를 봐도 2021년 3월 5000명 정도였던 가입자 수가 약 1년 사이 3배 정도 증가했다. 이들이 대규모로 진입한 시점은 대략 2021년 하반기로 추정된다.
2021년 하반기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아트페어(작품 판매를 위한 판매용 전시)에서 완판을 기록했다’, ‘최대 매출 달성’ 등의 홍보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 당시 기록이 진짜였는지, 매출이 얼마였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백화점에서 각 매장 매출이 집계되듯 통합적으로 매출 관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현금 거래도 빈번한 데다 다양한 방식으로 할인 받을 수도 있다. 미술시장이 주먹구구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제대로 된 시스템의 부재는 작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미술 분야 관계자는 작가들의 정산도 문제가 많다고 얘기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 갤러리에서는 작가들이 정산 받는 시점이 작품이 판매된 시점이 아니라 갤러리 주인 마음인 경우가 있다. 일반 회사라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제때 정산해주기만 해도 감사해하는 걸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어떤 작가가 얼마나 팔았는지, 실제 인기가 어느 정도 되는지 정확하게 집계가 안 되다 보니 미술시장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미술 분야 초심자를 대상으로 좋지 못한 모습도 많이 보인다. 대표적으로는 선동이 있다. 최근 미술 관련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비슷한 사례가 나오고 있다. 먼저 시차를 두고 채팅방에 갤러리 알바생이 한 명씩 잠입한다. 처음에는 사심을 숨기고 적당히 채팅을 친다. 그러다 한 명이 해당 갤러리 소속 작가를 칭찬하는 얘기를 한다. 이에 다른 알바생들도 ‘자기가 보기에도 최고’라면서 맞장구친다. 이렇게 몇 번을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술 시장은 대표적인 정보의 비대칭 시장이다. 판매 가격도 투명하게 공개돼 있지 않은 데다 인기가 어떤지도 대략 짐작으로 알아야 한다. 가수의 앨범 판매량 같은 비교적 객관적인 지표조차 미술계엔 없다. 깜깜한 시장에서 감으로 의지하는 컬렉터들에게 이런 선동꾼들은 잘못된 정보를 심어준다. 선동꾼 말을 듣고 그림을 샀다가는 재산상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이런 갤러리의 선동이 꽤 잦기 때문에 발생한 논란도 있다. 대표적인 일반인 컬렉터 커뮤니티 J 카페의 카페장이 B 갤러리로 영입이 되면서다. B 갤러리는 J 카페장의 ‘전문성’을 보고 영입했다고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뒷말이 나왔다. J 카페장은 전공자가 아닌 데다 업계 경력도 없는데 영입 이유가 전문성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느냐는 얘기였다. 일부 관계자는 ‘만약 J 카페에서 B 갤러리 홍보를 해도, 다른 갤러리 홍보처럼 칼같이 자르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나왔다.
2022년 하반기에 들어오면서 미술 시장에 완연한 하락장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자신이 구매했던 가격 그대로 재판매를 올리거나 가격을 낮춰 올린 매물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락장 분위기에도 일부 작가들의 인기는 여전하다. 일부 작가는 여전히 작품 대기를 몇 년씩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대기 자체를 받지 않는 작가도 있다. 이런 인기 작가를 확보한 갤러리 가운데 일부는 마케팅 차원에서 추첨을 통해 작품을 내놓는 경우가 있다.
작품 추첨을 위해 여러 번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신 C 씨는 작품 추첨의 공정성을 믿지 않는다. C 씨는 “주변 사람들까지 부탁해 수십 명 분량 추첨을 넣었다. 이런 식으로 싹싹 긁어서 추첨권을 넣은 컬린이들이 다시 수십 명씩 모여서 얘기해봐도, 여기에선 당첨자가 나오지 않았다”면서 “해당 그림이 누구에게 가 있나 보면 꼭 ‘빅컬’이라 불리는 빅컬렉터(1년에 억 원 단위로 미술 시장에 돈을 쓰는 수집가)가 갖고 있다. 확률의 영역이지만 왜 그쪽에서만 당첨자가 나올까. 당첨자가 어떻게 선정됐는지 알 수 없는 추첨은 믿지 않는다. 온라인 라이브 추첨 정도만 믿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로는 지난 호황을 타고 발생한 작가 수준 저하도 있다. 미술 관련 유튜브를 운영하는 C 씨는 “최근 인기 있는 신진 작가 가운데 10호에서 30호 평면 회화를 어시스턴트(조수) 써서 그리는 경우가 있다. 처참한 일이다. 반짝 얻은 인기를 업고 미술계 전체를 저질로 만들고 있다”면서 “어시스턴트는 작가가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손발이 돼주고 큰 작업에 힘을 보태는 것이지 작은 평면 회화 밑작업하는 게 아니다. 그건 공동작업이다. 대략 1년에 나오는 작품 개수를 잘 관찰하면 어시스턴트를 어느 정도 쓰는지 알 수 있는데 이런 작가 작품은 구매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