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에곤 쉴레·바스키아까지 ‘어나더 레벨’ 평가…아시아 허브 도약이냐 해외 갤러리 종속이냐 의견 분분
최근 ‘프리즈(Frieze) 서울’을 둘러본 한 미술 애호가가 이집트 석관, 로마 시대 조각상을 보고 한 말이다. 9월 2일 서울 코엑스에서 세계 3대 아트페어로 불리는 프리즈가 막을 올렸다. 이번 아트페어는 글로벌이 한국에 다른 차원을 보여줬다는 ‘어나더 레벨’이었다는 평가와 함께 해외의 침공이 본격화됐다는 평가가 공존했다.
프리즈는 세계 3대 아트페어로 꼽힌다. 실제로는 순위권이 아닌데도 홍보성으로 '3위권'으로 묶는 경우도 흔하지만 프리즈는 진짜다. 과거에는 바젤, 피악(FIAC), 시카고 등이 꼽혔지만 최근에는 비교적 신생인 영국 기반의 프리즈가 뛰어오르며 스위스 기반 바젤과 프리즈 양강체제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여기에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기반 TEFAF(테파프) 정도가 경쟁자로 여겨진다.
프리즈는 영국 기반이지만 프리즈 런던뿐 아니라 프리즈 뉴욕, 프리즈 LA까지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리고 명실상부 세계 3대 아트페어 프리즈가 아시아 파트너로 한국을 선택했다. 사실 아시아 미술시장 전통의 강호이자 현재까지도 중심은 홍콩이다.
‘아시아 경매 최고가 낙찰’, ‘한국 작가 최고가 낙찰’ 등의 외신 기사는 대부분 홍콩의 크리스티 경매 얘기다. 갤러리, 경매시장, 컬렉터가 아시아 미술시장 거래 중심을 홍콩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홍콩이 중국 영향권으로 들어가면서 시장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국내 화랑이나 갤러리도 홍콩을 직구 거래처로 삼았지만 2019년쯤 분위기가 바뀌었다.
홍콩이 중국 영향권 안에 들어갔고 ‘중국 송환법’ 등 민감한 법안이 통과되면서 우산 혁명 등 시위가 벌어졌다. 미술 업계도 홍콩이 과거처럼 자유로운 분위기가 사라지는 등 정치적 불안정성을 리스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한 미술품 컬렉터 는 “중국 영향으로 홍콩이 아시아의 허브 자리를 내줬다. 다음 후보지로 도쿄나 싱가포르를 제치고 중국과 일본 모두와 가깝고 상대적으로 세율도 저렴한 서울이 후보지로 올라서는 중이다. 특히 도쿄는 미술시장 관심이 줄어드는 반면 한국은 MZ세대 등 관심이 전반적으로 늘어나는 것도 좋은 평가를 받는 배경”이라고 말했다.
이번 프리즈는 한국화랑협회에서 주최하는 아트페어인 키아프(KIAF)와 함께 열린다. 코엑스 1층은 키아프, 3층은 프리즈가 열렸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키아프보다는 프리즈에 사람이 몰렸다. 기본적으로 이름값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이번 프리즈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린 곳은 피카소와 에곤 실레였다. 피카소급 그림은 한국에 들여오기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한 전시 기획자는 “피카소급이면 한국이 정전 국가인 것도 심각하게 보는 사안이다. 보험 처리와 엄청난 운송료가 있다고 해도 해당 박물관이나 인맥이 없으면 그림을 받기도 힘들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프리즈는 세계 각국 갤러리들이 참가하는 판매 목적 아트페어다 보니, 해당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갤러리에서 OK 하는 순간 곧바로 가져올 수 있다.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에서는 피카소, 에곤 실레, 몬드리안, 마티스, 리히텐슈타인, 바스키아 작품에 이집트나 로마 유적까지 전시하고 있다. 특히 에곤 실레는 희귀 원화가 30점 가까이 와서 웬만한 기획전 못지않은 규모였다.
이번 아트페어는 상업 목적 전시임에도 유명 기획전보다 훨씬 더 많은 인파가 몰렸다. VIP가 아닌 일반 입장 줄은 수백m가 서 있었고, 몇몇 갤러리 앞에도 인파가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방탄소년단(BTS) RM(김남준), 이수혁, 김우빈, 빅뱅 태양(동영배) 등 수많은 연예인이 참석한 것도 국내에서 보기 힘든 수준의 전시이기 때문이다.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물론 이번 전시에서 이들 작품 모두를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첫날 완판됐거나 이미 판매된 작품을 한국 관객에게 선보이기 위해서 일부러 갖고 온 작품도 상당히 많다는 얘기가 있다. 다른 미술 컬렉터는 “이번 전시가 프리즈의 첫 아시아 전시인 만큼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컬렉터를 위해서 잔뜩 힘주고 왔다는 얘기가 들린다”고 말했다.
이번 프리즈 아트페어를 두고 한국 미술시장의 역사적 기로라는 평가도 있다. 마치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앞두고 나온 얘기처럼 거대 시장에 도전할 것인가 아니면 글로벌 식민지화될 것인가라는 분석도 있다. 한 미술 유튜버는 “30년~40년 전에 미국제나 일본제 하면 다 알아줬다. 프리즈는 영국제다. 문화사대주의처럼 가치보다 높게 보거나 검증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유튜버는 “최근 진입한 컬렉터들이 해외 작품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수준 낮은 국내 작품 양산이 계속된다면 해외로 관심이 떠나갈 수도 있어 내수 시장이 해외 갤러리 차지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말하자면 국내 가방이나 시계 브랜드가 국내 브랜드보다는 해외 브랜드 위주로 판이 돌아가듯, 미술시장도 해외 갤러리나 해외 작가 작품으로 판이 짜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최근 한국 작가 컬렉팅을 활발히 한 또 다른 컬렉터는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레벨이 ‘높다 낮다’기보다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할리우드 영화가 한국에 들어왔다고 한국 영화 시장은 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 질이 올라가면서 영화 시장도 붐이 온 것처럼 한국 미술시장 전체가 한 단계 올라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컬렉터 눈도 높아지지만, 작가도 새로운 시장을 보고 깨닫는 게 있을 것 같다. 나만 해도 취향이 한국 시장 쪽이 더 맞다 보니 지속해서 한국 작가를 컬렉팅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미술시장이 외부의 온 혜성 충돌급 충격으로 급변할 가능성을 맞이했다. 프리즈 서울은 계약기간 5년인 만큼 최소한 5년 동안 외부 충격이 매년 계속될 전망이다. 인산인해를 이룬 프리즈를 보며 미술계 관계자들은 여러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갈림길에 선 한국 시장이 프리즈발 충격으로 발전하면서 시장을 지켜내며 성장하고 해외 진출 교두보로 삼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