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 ‘한국축구의 미래를 꿈꾸다’ 발간 “누군가는 기록해야할 이야기”
이처럼 축구게임은 높은 점유율을 자랑하지만 게임에 등장하는 국내 축구선수들은 오랜 기간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다. 해외 선수들은 자신의 얼굴이나 이름을 사용하는 게임사로부터 초상권 수익을 배분 받는다. 하지만 국내는 그간 선수의 초상권 대부분을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선수들의 각 소속 구단이 관리해왔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에 최근 변화가 감지된다. 초상권으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이 선수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다양한 요인이 있었지만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의 활동이 주효했다. 이들은 선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지난 2012년 설립돼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10년간 선수협 살림을 이끌어온 김훈기 사무총장을 마난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 사무총장은 최근 '작가'가 됐다. '한국축구의 미래를 꿈꾸다'라는 책을 지난 8월 발간하면서다. 이는 선수협 설립 10주년을 맞아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미래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 사무총장은 "누군가는 기록해야할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과연 우리가 잘 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도 필요했다. 앞서간 선배들, 현재 선수협을 이끌고 있는 선수들을 위해서도 기록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며 책 발간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그는 "많은 분들이 선수협을 잘 모르고 있다. 이 책으로 선수협을 알리고 축구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받고 싶었다. 후배들이 우리의 뜻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고도 말했다.
설립 가능성 자체에 의문이 품어졌던 선수협은 어느새 활동 기간 10년을 채웠다. 10년의 기간 동안 모든 부분이 김훈기 사무총장의 손을 거쳐 갔다. 처음 시작은 우연한 계기였다.
"학창시절 일본으로 축구 유학을 갔고 선수생활도 잠시 했다. 부상과 불운 등이 겹치며 선수 활동은 오래 이어가지 못했지만 우연한 계기에 일본 축구선수협 관계자를 만sk 한국의 선수협 설립 제의를 받았다. 누구도 가보지 않았던 길이기에 관심이 생겼다. 나 또한 길지 않은 선수생활 동안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있었고 국내 축구문화가 개선돼야할 점이 많다고 느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이 일에 빠져들게 됐다."
프로야구에도 선수협이 존재하지만 현재의 형태를 갖추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80년대 최초 설립 움직임이 있었지만 선수협이라는 공식적인 타이틀을 가진 시점은 2000년대에 들어서였다.
프로축구선수협 또한 발족 자체에 어려움을 겪던 시절이 있었다. 김 사무총장은 "당연히 처음엔 선수들이 선뜻 참여하려 하지 않았다"면서 한 일화를 소개했다. "전국을 돌면서 선수들에게 단체에 대해 설명했고 본격적으로 발족을 하려는 자리에 적어도 25명은 참석을 약속했다. 그런데 당일 현장에 나타난 선수든 단 2명뿐이었다. 참석한 2명도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김 사무총장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여전히 국내 프로축구 문화가 개선될 부분이 많다는 점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그는 "선수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았다. 구단 뿐만 아니라 에이전트, 엔터테인먼트사 등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계약서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면서 "계약이 이행되지 않는 일도 다반사였다. 다년 계약을 해놓고도 몇 개월 만에 선수를 쫓아내는 구단도 있었다. 특정 경기에 선수를 출전시키지 않는 조항을 삽입하는 등의 일은 최근까지도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부분을 바로잡아 한다는 생각으로 현재까지 일을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선수협 발족 이후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숱한 선수들이 선수협의 도움으로 미지급 임금을 돌려받거나 선수로서 권리를 보장 받았다. 그 사이 선수협은 현역 K리그 선수 외에도 은퇴 선수, 여자 선수를 포함해 1000여 명의 가입자가 있는 단체로 성장했다.
김 사무총장은 선수협 활동으로 인한 국내 축구계 굵직한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그간 국내에서 사용되던 표준 계약서 내용이 달라지게 됐다. ▲선수가 이적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조항 ▲선수가 대중 매체 출연 및 초상 사용 등에 대해 구단의 서면 동의를 받게 하는 조항 ▲선수의 초상권을 구단에 귀속시키는 조항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불공정 조항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선수들은 지난 40년간 초상권 수익을 배분 받은 적이 없다. 몇 해 전 제과 회사에서 선수들의 얼굴 사진이 담긴 과자가 출시됐는데 당사자들은 통보조차 받지 못할 정도였다. 이제는 달라질 것이다. 게임에서 선수들이 등장하는 것 또한 조만간 달라질 것이다. 선수들에게 불리하게 작용되던 임의탈퇴 제도도 폐지됐다. 다년 계약을 하고도 매년 연봉 협상을 새롭게 하는 그간의 제도도 바뀌어 나가는 단계에 있다."
지난 10년을 돌아본 김 사무총장은 "만연한 문제들이 여전히 많지만 달라지고 있다고 본다. 선수협 활동기간이 이제는 적지 않다. 규모도 커졌다. 선수를 무단으로 방출하는 등의 기본적인 문제들은 과거보다 많이 줄었다"며 "이제는 우리 선수협의 존재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10년을 달려온 선수협, 김 사무총장은 그간 두 번의 변곡점이 있었다고 짚었다. 그가 꼽는 첫 번째 지점은 2017년이었다.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 아시아 총회가 국내에서 열리고 선수협이 사단법인으로 승인을 받은 시점이다.
"그때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선수협 활동을 포기하려는 생각도 있었다. 아시아 총회의 국내 개최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당시까지 선수협은 임시 단체와 같은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아시아 총회가 열렸는데도 선수들이 움직여주지 않으면 그만 두려고 했다. 선수협에 힘을 실으려면 아시아 총회가 중요하다고 봤다. FIFPro 아시아가 총회를 바레인에서 열려던 계획도 있었다. 국내 개최를 강력히 주장해서 결국 이뤄질 수 있었다. 총회가 국내에서 열리며 선수협을 더 알리고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법인화를 두고 선수협 내부에서도 찬반이 엇갈렸던 상황도 전했다. 그는 "의견이 분분했다. 음지에서 선수들을 돕는 일들을 지속할 것인지, 선수협회라는 타이틀을 세상에 내놓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당시까지 구단이나 연맹 등과 정식으로 대화를 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선수협회 활동을 공식화하기 시작하면 외부 압력으로 단체가 폭파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한 번의 포인트는 이근호 회장의 취임이었다. 그는 "이전에도 선수협을 이끌어온 고마운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근호 회장이 주는 느낌은 달랐다.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로서는 최초의 회장이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누구보다 용기를 내서 후배들을 위해 움직였다. 사실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이근호 회장이다"라며 "이 회장이 있어서 선수협이 현재까지 올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선수협은 선수 권리 보호를 위해 설립된 단체지만 그는 "단시 선수들만을 위한 곳은 아니다"라고도 말한다. 김 사무총장은 "선수 본인이 잘못을 해놓고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경우도 있다. 훈련에 성실히 임하지 않는 등의 잘못을 저지르고선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 하는 것이다"라면서 "선수를 교육하고 지적할 부분은 한다. 선수로서 본분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 면에서 이근호 회장이 좋은 본보기가 되기도 한다. 누구보다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선수"라고 했다.
또한 "한국 축구와 선수를 사랑해주시는 팬들에게도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프로스포츠에 관련된 단체이기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어떤 식으로 팬들과 스킨십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더 사랑받는 리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힘을 더 집중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김 사무총장은 향후 선수협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스포츠 문화가 잘 정착된 나라를 보면 사회와 그 리그가 잘 연계돼 있다. 우리도 그런 문화를 만드는데 힘을 모을 것이다"라며 입을 열었다. "연말에는 자선경기를 통해 팬들을 만나는 동시에 힘든 선수들을 도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생각이다. 잉글랜드에서 선수들이 선정하는 베스트11을 뽑듯 국내에서도 그런 이벤트를 지속할 것이다. 그간 해오던 업무 외에 또 다른 축구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도 했다.
이어 그는 "폭을 넓혀갈 계획이다. 여자 선수들을 끌어안은 것도 그런 부분이다. 이근호, 지소연 회장이 공동 회장을 맡고 있는데 전 세계 축구선수협 중 유일한 남녀공동회장 체제다"라며 "남자 축구의 경우 초상권 배분문제, 은퇴 후 선수들의 연금이나 복지 등을 앞으로 챙길 계획인데 반해 여자 축구는 리그 발전 쪽에 초점을 더 맞출 예정이다. 더 많이 사랑받는 리그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선수협의 외연 확장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김 사무총장은 "프로스포츠의 서로 다른 종목들이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닌 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요할 때는 힘을 합칠 수도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공감대가 필요하다"면서 "이를 위해 축구선수협이 더 단단해져야 한다. 그래야 다른 종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주고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타 종목에서 도움을 청한다면 언제든지 손을 내밀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무총장은 e스포츠 분야에서도 활동하며 한국e스포츠협회 e스포츠 공정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고 있다.
김훈기 사무총장은 마지막으로 축구팬, 축구계 관계자들을 향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최근에도 선수협을 향한 회의적인 시선들이 많다"면서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힘이 모여서 국내 축구계 문화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선수협은 꾸준히 더 나은 문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