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시스템 전환, 탄소 배출 감소 등 ‘지속가능성·보안’ 목표 달성 기대…향후 ‘확장성’ 개선에 집중
이더리움은 수많은 댑(dApp)과 사이드체인, L2 생태계를 거느린 명실상부 최대의 스마트 컨트랙트 블록체인 네트워크로 성장해왔다. 이에 따라 이더리움은 사용자 수가 늘어도 문제없고, 안전하며, 네트워크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도록 네트워크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늘 숙제였다.
중앙 관리자나 중앙 데이터 저장소가 없는 블록체인에 중요한 건 신뢰도다. 블록체인은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모든 참여자(노드)에게 일관된 장부를 분산 제공해 해킹 등 우려를 최소화한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새로운 블록을 추가하려면 모든 노드의 합의가 필요하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노드들의 합의를 끌어내는 방법이 합의 알고리즘이다. 합의 알고리즘은 잔고와 서명을 검증하고, 트랜잭션을 승인하고, 실제로 블록의 유효성 검사를 실시한다.
이더리움은 수년 전부터 이더리움이 확장성(scalability), 보안(security),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등 세 가지 비전을 목표로 업그레이드를 진행해왔다. 최근에는 합의 알고리즘을 PoW(Proof of Work, 작업증명) 방식에서 PoS(Proof of stake, 지분증명) 방식으로 전환을 꾀하고 있다. 이더리움은 이 업그레이드를 ‘머지’라고 부른다.
PoW 방식과 PoS 방식은 가장 잘 알려진 합의 알고리즘이다. PoW 방식은 특정 수학적 문제를 풀면서 임시로 만든 블록을 유효한 블록으로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이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서 블록체인에서 다음 블록을 생성할 수 있는 권한을 얻는다. 블록을 생성한 이는 암호화폐를 보상으로 받으며 이 과정을 채굴(Mining), 행위자를 채굴자라 일컫는다.
PoW 방식은 오래전부터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사용해왔다. PoW 방식은 보안에서 큰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의 거래내역을 조작하려면 최소 51%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 동의를 모두 얻어내는 데 드는 비용이 막대하다. 2020년 기준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51% 공격을 가하기 위해서는 시간당 64만 달러(7억 원 이상)가 소모된다는 계산이 나온 바 있다.
그러나 PoW 방식은 단점도 명확하다. 채굴은 블록의 유효함을 확인하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해야 하는 작업이다. 이 과정을 1초에 몇 번이나 수행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가 해시파워(혹은 해시레이트)다. 해시파워가 높을수록 확률적으로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암호화폐를 보상받기 위한 채굴자가 많아지면 채굴 난이도도 향상한다. 채굴난이도가 올라갈수록 연산에 필요한 고사양 장비가 더 많이 필요하게 되고, 이는 과도한 전력 소모로 인한 에너지 낭비로 이어진다.
최근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이 발표한 보고서 ‘미국 내 가상자산의 기후변화와 에너지 시사점’에 따르면 가상자산 관련 활동에서 연간 2500만~5000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0.4~0.8%를 차지하며 미국 내 경유 기차에서 발생하는 배출량과 동일한 수준이다. OSTP 보고서는 “PoW 방식이 특히 전력량 소모가 심하다”며 “채굴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량을 줄이려는 다른 조치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PoW 중단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PoS 방식은 자신이 보유한 암호화폐의 양에 따라서 블록을 생성할 수 있는 권한을 얻는 방식이다. PoS 방식에는 채굴자 대신 검증자(vaildator)가 존재한다. 이 검증자는 새로 생길 블록의 무결성을 검사한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검증자는 블록 안의 트랜잭션과 관련된 수수료를 지급받을 수 있다.
PoS 방식은 채굴 과정이 필요 없기 때문에 에너지 낭비 문제에서 벗어난다. 이더리움이 추구하는 지속가능성 목표를 이룰 수 있는 합의 알고리즘인 셈이다. 외신들에 따르면 이더리움이 PoW에서 PoS로 전환하면 에너지 소비량은 99%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더리움 측은 PoS 방식이 보안 측면에서도 PoW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참여자들은 암호화폐를 일종의 보증금으로 예치한다. 이를 스테이킹이라 일컫는다. PoS 방식은 검증자에게 경제적 동기를 부여한다. 만약 검증자로 인해 네트워크의 결함이 발견된다면, 검증자는 자신이 스테이킹한 암호화폐 일부를 잃을 수 있고, 앞으로 검증자로 참여할 수 없게 된다.
물론 검증자가 되려면 스테이킹한 암호화폐의 양에 따라 다음 블록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보증금을 많이 예치한 검증자들이 힘을 갖게 되는 구조여서 소수가 네트워크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 탈중앙화가 어려울 수도 있다. PoS 방식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무작위 블록 선택(Randomised Block Seleciton)’과 ‘코인 나이에 따른 선택(Coin Age Selection)’ 등의 방법들도 나오고 있다.
무작위 블록 선택 방법은 가장 낮은 해시값과 가장 높은 지분의 조합을 가진 노드를 검증자로 선택하는 방식이다. 지분의 크기는 공개돼 있기 때문에, 노드들은 일반적으로 다음 검증자를 예측할 수 있다. 코인 나이에 따른 선택 방법은 토큰이 얼마나 오래 보관되었는지에 따라 노드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코인의 나이는 코인이 보관된 일수에 코인의 수를 곱해 결정한다. 노드가 블록을 형성하면, 그들의 코인 나이는 0으로 초기화되고, 다른 블록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이는 많은 지분을 소유한 노드가 블록체인을 지배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실리콘밸리 벤처 투자 회사인 ‘앤드리슨 호로위츠’가 운영하는 미디어 ‘퓨처(Future)’에 따르면 이더리움재단의 대니 라이언 연구원은 “머지는 이더리움을 더욱 안전하게 한다. 시스템과 공격 유형 등을 파악한 연구에 기반해 이더리움 커뮤니티와 연구원들은 PoS가 PoW보다 안전하다고 주장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PoW 방식으로 운영해온 일부 채굴자들이 머지 업그레이드에 반대하는 변수도 존재한다. 머지 업그레이드 이후 그들의 채굴용 장비가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을 중심으로 기존 이더리움을 별도 체인으로 떼어내 운영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를 하드포크(Hard Fork)라 부른다. 따라서 이더리움은 머지 업그레이드 이후에도 블록체인이 두 개 체인으로 분리돼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 이더리움(ETH) 채굴 광부 집단으로 구성된 ‘ETHW 코어(Core)’는 13일 트위터를 통해 24시간 이내에 하드포크를 수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암호화폐 거래소들도 이더리움 하드포크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원화마켓을 운영하는 5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가 ‘디지털자산 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를 통해 이더리움 머지(병합) 공동 대응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더리움PoW 하드포크 성공 및 하드포크 이후 안정성 확인 시 5대 거래소는 ETHW의 에어드랍을 지원할 예정이다. 다만 현재까지 ETHW 에어드랍을 위한 스냅샷 일정이 정확하게 공표되지 않아 자세한 안내는 추후 공지하겠다고 전했다.
5대 거래소는 “현재 이더리움 머지 업그레이드를 반대하는 일부 커뮤니티에 의해 이더리움 작업증명(PoW) 하드포크가 논의되고 있다”며 “DAXA는 이더리움 PoW 하드포크에 따라 체인이 정상적으로 분리될 경우 새롭게 발생할 수 있는 ETHW에 대해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부 반대에도 이더리움은 머지 업그레이드를 15일 단행했다.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은 얼마 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이더리움 커뮤니티 컨퍼런스에서 “머지 후 이더리움은 55% 완성될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즉 이더리움의 향후 목표는 완성되지 않은 45%인 확장성에 집중할 예정이다. 이더리움의 경우 꽤 오랜 기간 PoW로 운영되다 보니, 후발 주자로 출발한 다른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비해 최대 TPS(transactions per second)에서 밀린다. 이더리움의 경우 최대 TPS가 15인 반면 솔라나의 경우 최대 6만 5000에 달한다.
이더리움은 머지 이후 확장성 강화를 위해 서지(The Surge), 버지(the Verge) 퍼지(the Purge), 스펄지(the Splurge)로 이어지는 업그레이드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서지 업그레이드에서 이더리움 레이어2 프로토콜들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고 이더리움 네트워크 보안 노드 운영을 간소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위해 낮은 처리속도(확장성)을 해결해주는 치트키인 샤딩(Sharding)이 활용될 예정이다. 샤딩은 블록체인을 여러 개의 체인, 혹은 샤드(shards)로 쪼개는 것을 의미한다. 이더리움 체인을 여러 개의 하위 체인(샤드)들로 분할한 뒤, 노드들을 그룹별로 나누어 샤드 당 한 그룹씩 배치하는 것이다. 이때 노드들은 소속되어 있는 샤드만 검증하면 되기에 결과적으로 네트워크 부담을 줄여 체감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샤딩을 통해 이더리움은 최대 TPS가 10만까지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블록을 형성하는 합의 알고리즘을 바꾸는 만큼 머지 업그레이드는 현재 암호화폐 시장에서 최대 이슈다. 14일(현지시간) 이더리움 공동 창업자이자 이더리움 인프라 개발사 컨센시스의 최고경영자(CEO) 조셉 루빈(Joseph Lubin)은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이번 업그레이드의 파급력은 엄청날 것”이라고 말한 만큼 머지 이후의 암호화폐 생태계 변화에 이목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