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그 판결에 대해 “결과적으로 마음이 무겁다”고 대답했다. 해고된 사람을 생각한 말인 듯하다. 나는 대법관 후보자가 재판 당시에 얼마나 고뇌했는지 묻고 싶다. 그와는 전혀 결이 다른 이런 판결을 본 적도 있다.
임대아파트를 딸 명의로 얻은 노인이 있었다. 어느 날 노인에게 법원에서 보낸 소장이 날아들었다. 권리자가 딸이니까 그 아파트에서 퇴거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법적으로 그 노인이 나가는 게 맞았다. 그러나 담당 판사는 노인 편을 들어주었다. 그는 판결문에 엄동설한에 갈 곳 없는 노인을 나가라고 하는 것이 법의 본질은 아닐 것이라고 적어 놓았다.
그는 어떤 판사보다 법리에 해박했다. 그러면서 형식적인 법조문보다 사랑의 눈으로 법의 본질을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동료 판사들로부터도 존경받고 대법관이 될 자격이 충분하지만 변호사가 됐다. 아이들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였다. 국민들은 어떤 대법관을 요구할까.
대법관은 법의 최후의 보루다. 반듯하고 따뜻한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야 한다. 대법관이라는 자리는 국가라는 배가 시대의 물결에 휩쓸려가지 않게 하는 닻 역할을 해야 한다. 정치의 돛이 되어 배를 풍랑 속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 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형사사건에서 뇌물공여와 국고손실죄로 기소된 국가정보원장의 변호사였다. 내용은 간단했다.
대통령이 국정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동안 하던 지원을 계속하라고 명령했다.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수십 년 동안 국정원의 예산 중 일부를 청와대가 사용했다. 그 법적 근거나 본질이 따져진 적이 없다. 예산의 전용이거나 청와대 예산을 국정원에 숨겨놓고 있다는 인식도 있었다. 보통 사람인 나의 시각으로는 개결한 성격의 박근혜 대통령이 뇌물을 받기 위해 지저분한 전화를 건 것 같지는 않았다.
촛불혁명의 거친 바람 속에서도 1심과 2심의 판사들은 모두 뇌물은 아닌 것 같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관은 달랐다. 대통령이 받은 돈은 뇌물이고 국정원장은 회계공무원으로 국고손실죄를 저질렀다고 했다. 담당 대법관이 혹시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의 그 눈은 아닌지 의문이었다. 정치적 필요에 의해 법이 왜곡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면이 되었다. 그러나 뇌물을 주었다는 나이 팔십이 가까운 국정원장은 아직도 감옥 안에 있다. 북의 김정은도 그에게 사형을 선언했었다. 김정은과 싸웠던 정보맨 출신 최초의 국정원장이었다. 그는 애국자였다. 정보기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존재한다. 과거 어두운 그늘에 대한 대가가 엉뚱하게 모두 그 한 사람에게 씌워져 있는 느낌이다.
그 대법원 판결이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 의문이다. 나는 그 대법원 판결의 이면을 의심의 눈으로 보고 있다. 나는 과거 대통령 직속기관에서 잠시 일한 적이 있다. 우연히 두 명의 대법원장 후보자를 놓고 대통령에게 올릴 평가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판사로서의 전문성, 법원장 시절의 리더십, 청렴성, 주위사람들의 평가들을 비교분석하는 과정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두 사람의 우열의 차이가 분명했다. 그런데 방점은 엉뚱한 사람 쪽으로 찍혔다. 내가 책임자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책임자가 내게 되물었다.
“너 같으면 말 잘 듣는 놈 시키겠니, 아니면 소신 운운하면서 말 안 듣는 놈 시키겠니?”
책임자의 반문으로 나는 인사의 본질을 깨달았다. 후보자는 국회 통과를 위해 뛰는 과정에서 정치에 오염되고 있었다. 국회의원들과의 타협과 거래도 해야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것 같았다.
대법관은 초심을 지키는 훌륭한 판사들이 앉아야 하는 중요한 자리다. 국가나 법의 굳건한 심지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심지가 흔들리면 나라가 뒤엎어지고 한과 척이 쌓인다. 이제 국민들은 사건의 이면에 있는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정치적 거래도 알아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정치에 오염되지 않는 좋은 대법관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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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