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락 꺾고 이붕배 우승 프로 첫 타이틀…라이벌 묻자 “중국 왕싱하오와 싸워보고파”
그런 가운데 영재입단대회 출신 한우진 4단이 최근 이붕배에서 허영락 3단을 꺾고 프로무대 첫 타이틀을 획득했다. 2005년생 한우진은 2019년 제11회 영재입단대회를 통해 입단한 유망주. 한우진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사로 성장할 수 있을까.
#유서 깊은 이붕배
이붕배는 부산의 이붕장학회와 (주)삼원에서 후원하는 신예기전이다. 2020년에 창설됐다. 대회 명칭인 ‘이붕(利鵬)’은 한국기원 최장기 이사를 지냈고 후원사인 (주)삼원의 설립자 김영성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것이다.
이붕배는 원래 1988년부터 2006년까지 열렸던 어린이 바둑대회였다. 지방 바둑과 어린이바둑 활성화를 위해 이붕 선생이 만들었다. 제1회 대회 우승자가 현 국가대표 감독인 목진석 9단이고 이후 이세돌, 최철한, 김지석, 조혜연 등이 이붕배를 차지한 주인공들이었다.
프로기사들을 아껴 부산을 찾은 기사들에게 최고급 호텔에서 융숭한 대접을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대중교통으로 귀가하거나, 정장 한 벌로 수년을 버티는 단벌신사였으면서도 바둑 꿈나무들에겐 선뜻 거금을 후원하는 등 이붕 선생에 관한 일화는 너무나 많다.
선생의 작고로 중단된 지 14년 만인 2020년에 이붕배는 신예 프로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전으로 재탄생했다. 이붕 선생의 아들인 김한상 (주)삼원 대표는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아버지와 이붕배를 아름답게 추억해 주시는 바둑인들에게 감사하고, 아울러 신예 기사들이 대국에 목말라하는 것을 해소해 줘야겠다는 마음에 대회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예들의 무대인 이붕배는 2019년 이후 입단한 56명과 2018년 이전 입단자 중 나이가 적은 순으로 8명, 총 64명이 결승까지 단판 토너먼트로 우승 경쟁을 벌였다.
#한우진, 프로 입단 후 첫 우승컵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최후의 2인은 한우진 4단과 허영락 3단. 둘은 16일 한국기원에서 제3기 이붕배 신예 최고위전 결승을 벌여 한우진 4단이 217수 만에 불계승을 거두고 우승컵을 안았다.
한우진은 그동안 이붕배에서 1기 대회 32강, 2기 대회 16강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는 64강에서 오승민 초단을 꺾은 것을 시작으로 김희수 초단, 이의현 2단, 김세현 3단, 양유준 2단을 연파하고 대회 첫 결승에 올랐다.
한우진의 현 국내 랭킹은 30위로 이번 대회 출전자 중 가장 높다. 올해 1월 70위로 시작한 한우진 4단은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8개월 만에 랭킹을 40계단 끌어올렸고, 이붕배 우승으로 한국 바둑을 이끌어갈 차세대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수년간 아마랭킹 1위 자리를 지키다 2021년 늦은 나이인 스물여섯에 입단한 허영락은 첫 출전한 이번 대회에서 5연승으로 결승까지 올랐지만 첫 우승 도전을 다음으로 미루게 됐다.
프로 입단 후 첫 우승컵을 품에 안은 한우진 4단은 “초반 타개가 잘됐다고 판단해 너무 낙관했다. 중반 느슨하게 두면서 만만치 않아졌지만 마지막에 끝내기를 잘해 우승할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이어 “우승을 해서 기쁘지만 앞으로도 더 많은 대회에서 성적을 내고 싶고 10월에 열리는 삼성화재배에서 8강 이상의 성적을 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신예답게 자신감도 넘친다. 라이벌을 묻는 질문에 한우진은 “중국 왕싱하오 선수와 대등하게 싸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우진보다 한 살 위인 왕싱하오는 중국의 일인자 커제 9단의 뒤를 이을 것으로 기대되는 신예 강자다. 작년 비공식 세계대회이긴 하지만 TWT대회 결승에서 신진서 9단을 2 대 1로 물리치고 우승, 존재감을 과시했다.
하지만 국내 선수 중 라이벌을 꼽아 달라는 질문에는 “국내에는 없다”고 잘라 말하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이붕배 1회 우승자(1988년)이자 현 국가대표팀 감독 목진석 9단은 한우진을 두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이기고자 하는 욕망이랄까 승부에 대한 집념이 강한 기사”라고 말하면서 “현재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고, 본인이 세운 목표를 위해 정진한다면 몇 년 내에 정상급으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주)삼원과 이붕장학회가 후원하고 한국기원이 주최·주관한 제3기 이붕배 신예 최고위전은 각자 1시간에 초읽기 40초 5회의 제한시간이 주어졌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