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계좌 봉인 해제 ‘이유 있다’
▲ (주)다스 사무실 |
▲ 김경준 |
더욱 큰 문제는 이 사실을 김 씨 재산의 몰수 소송을 담당하던 미 연방 캘리포니아 지방법원도 몰랐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다스와 김경준 씨의 재판을 맡았던 오드리 콜린스 판사는 다스의 소송취하 요청으로 김 씨의 스위스계좌 동결해제 사실을 알고 격분한 나머지 미 연방검찰에 송금이 이뤄진 과정을 수사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한 정계 관계자는 “미국과 스위스 정부 간 관계는 물론이고 한국 VIP 일가 간의 송사가 얽혀 있는 크레딧스위스 은행계좌가 미 연방법원도 모른 채 풀리고 돈이 송금됐다는 것은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일각에서는 해당 은행과 이명박 정권의 긴밀한 관계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의혹의 핵심은 크레딧스위스 은행과 우리나라 정부의 ‘특수한’ 관계와 관련이 있다. 소리소문없이 풀린 김 씨의 계좌는 크레딧스위스 은행의 알렉산드리아인베스트먼트의 법인계좌로, 크레딧스위스는 MB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해온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 프로젝트의 금융파이낸싱 컨설팅을 맡았던 은행이다.
실제로 크레딧스위스는 정부가 지난 2009년 12월 약 200억 달러에 수주했다고 밝힌 UAE 원전의 금융설계에도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즉 UAE 원전 프로젝트, 200억 달러 건설자금 조달과 관련한 프로젝트 금융설계 및 컨설팅 주관 은행이 크레딧스위스였던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권 관계자 A 씨는 “UAE 원전에 관계된 금융 컨설팅을 담당해주는 대가로 크레딧스위스는 우리나라로부터 상당한 자문료를 받았는데 이 컨설팅 수수료가 최소 수 천만 달러에 달하는 등 엄청난 수준이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특히 비밀거래 원칙을 고수하는 스위스는 전 세계의 검은 돈이 마피아식 커넥션으로 얽혀 집결되는 등 금융이 지배하는 나라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크레딧스위스도 철저히 ‘스위스식’으로 업무를 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금융컨설팅으로 막대한 돈을 챙기는 스위스로서는 상업적으로 엮여있는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라 볼 수 있다”며 동결계좌 해제에 ‘고객’인 우리나라 정부의 ‘보이지 않는 힘’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특히 A 씨는 “스위스가 미국과 합의 후 계좌를 풀었으면 깔끔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스위스은행의 금융거래는 일반 금융거래 상식과는 별도로 특수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스위스가 한국으로부터의 막대한 이득을 포기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감행한 행동일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역시 익명을 요구한 해외금융전문가 B 씨의 설명은 좀 더 구체적이다. B 씨는 “크레딧스위스가 현 정부가 추진하는 자원외교 사업에 주식담보대출 등 다양한 형태로 깊숙이 관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크레딧스위스는 지난해 2월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과 관련해 주가조작 및 실세 개입 의혹, 외교부 지원의혹이 일고 있는 코스닥 상장회사 씨앤케이인터내셔널(구 코코 엔터프라이즈)에 1000만 달러를 파이낸싱 해준 바 있다. 문제는 이후 카메룬 다이아광산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끊이질 않고 있다는 점이다. 크레딧스위스처럼 풍부한 정보를 갖고 있고 신중한 세계적 금융기관이 주식담보 등의 방식으로 1000만 달러나 대출을 해준 것은 의문”이라고 귀띔했다.
B 씨는 이어 “심지어 MB일가와 크레딧위스가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얘기도 있다. 이는 현 정부가 미미한 성과, 비리 의혹 등에 대한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자원외교 사업에 사활을 거는 것과도 무관치 않은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일례로 원전 관련 기술을 보유한 건설사의 경우 장기적인 매출 성장 동력을 확보하게 되는데 국내에서 원전관련 경쟁력이 가장 높은 건설업체가 MB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현대건설이라는 것이다.
동결됐던 김 씨의 계좌가 해제된 것으로 인해 다스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11월 17일 미국 연방법원은 다스가 김경준 남매에게 제기한 ‘BBK 투자금 140억 원 반환 소송’ 취하를 최종 승인했다. 결국 김 씨가 한국에서 빼돌려 스위스 계좌에 예치했던 140억 원의 주인은 ‘다스’라고 인정한 셈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의 교민신문들은 “다스는 7년이 넘는 법정싸움을 통해 140억 원의 투자금을 모두 다 돌려받은 데다가 세인들의 의혹을 잔뜩 샀던 ‘BBK 의혹의 마지막 불씨’와 관련해서도 한결 행보가 가벼워지는 부수적 효과를 얻게 됐다” “다스 측은 지난해 4월 항소심 포기로 이뤄진 소 취하와 함께 지리했던 미국 법정에서의 모든 싸움을 종결 짓고 자유를 만끽하게 될 전망”이라는 의미심장한 분석들을 내놓기도 했다.
도대체 김 씨의 스위스 계좌가 풀린 비밀은 무엇일까. 현재 떠돌고 있는 소문대로 우리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던 것일까. 금융거래에 있어 철저히 비밀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스위스 측이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140억 원이 다스로 송금된 미스터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