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각·각하’ 정진석 비대위 유지, 전대 국면으로…“고독하게 제 길 가겠다” 이준석 발언 묘한 뒷맛 남겨
법원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제출한 가처분 신청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재판장 황정수)는 10월 6일 이 전 대표가 국민의힘을 상대로 낸 당헌 개정 의결 효력 정지 가처분(3차)에 대해 “신청의 이익이 없다”며 각하했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과 비대위원 6명의 직무를 정지해달라고 낸 가처분(4·5차)도 기각됐다. “실체적·절차적 하자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전 대표가 완승했던 8월 가처분 1라운드와 완전히 상반된 결과가 나왔다.
이번 법원 판결엔 국민의힘 지도부의 당헌 96조 개정이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원은 지난 8월 26일 “‘당대표 6개월 사고’는 당대표 직무수행이 6개월 정지되는 것에 불과하여 궐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국민의힘에 비대위를 설치할 정도의 비상상황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주호영 비대위 출범 당시 당은 당헌 96조에 따라 ‘당 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원회의 기능이 상실되는 등 당에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에만 비대위를 설치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법원은 주호영 전 비대위원장이 임명될 당시 이에 해당하는 비상상황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대위 출범은 무효라고 봤다.
이후 국민의힘은 9월 5일 전국위원회에서 당헌 개정에 나섰다. 선출직 최고위원 4명 이상이 사퇴하면 최고위원회를 비대위로 전환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개정 이후 정진석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 임명 작업도 마무리했다.
재판부는 이 비대위 출범 절차를 적법하게 봤다. 재판부는 “개정된 당헌은 비대위 설치 요건으로 당 대표 사퇴 등 궐위와 선출직 최고위원 4인 이상의 사퇴 등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종전에 해석의 여지가 있었던 불확정 개념인 비상상황을 배제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도록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요건을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이 전 대표 측은 최고위원들이 이미 사퇴한 상황에서 ‘최고위원 4인 이상 사퇴’를 비상 상황으로 규정한 것은 헌법상 소급입법 금지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정당의 재량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번 당헌 개정은 예외적인 상황을 전제로 구성된 비대위 설치에 필요한 조치로, 정당에 주어진 재량 범위에 속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소급입법 금지가 정당의 당헌에도 직접 적용된다고 보기 어렵고, 정당이 민주적 내부질서 유지를 위해 당헌으로 조직 및 권한을 어떻게 정할지는 정당의 자유”며 “개정 당헌 내용 자체가 헌법이나 법률에 명백히 위반된다거나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보기 어려워 실체적 하자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법원 판결로 희비는 갈렸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안도하며 당 정상화에 나서겠다는 반응이다.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당내 분란으로 인해 오래 국민 여러분과 당원 동지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쳤다”며 “집권여당 지도체제를 안정적으로 확립해 윤석열 정부 성공을 튼실하게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 측은 법원 가처분 결과가 나온 날 윤리위로부터 ‘당원 정지 1년’ 추가 징계까지 받았다. 이날 윤리위는 이 전 대표에게 ‘양두구육’, ‘신군부’ 등의 표현을 쓴 것과 법원 가처분 신청을 핵심 징계 사유로 적시했다. 이 전 대표의 당원권 정지 기간은 총 1년 6개월로 늘었다.
윤리위는 “법원이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 소집과 의결에 대해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결정했고 이 전 대표도 이 사실을 명백히 인지했음에도 이후 예정된 전국위에 대해 개최 금지 가처분을 추가로 신청한 것은 부적절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한동안 당이 안정을 되찾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전 대표 측이 이번 가처분 결과에 항고와 재항고를 하더라도 전당대회 전까지 법원 최종 판단이 나오기 어렵고, 결과가 더 이상 뒤집힐 가능성도 낮다는 관측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남은 국정감사와 곧 다가올 전당대회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당권 주자들이 몸풀기에 나섰다. 김기현 안철수 조경태 윤상현 의원 등 거론되는 당권 주자만 10명이 넘는다. 각종 구설에 오르며 입지가 좁아진 ‘윤핵관’이 이번 법원 판결로 운신의 폭을 넓힐지가 관전 포인트다. 앞서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내년 1~2월 전당대회를 유력하게 거론한 바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하락세인 데다 이 전 대표가 반격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내홍이 계속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2030 남성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이 전 대표가 탈당 후 신당을 창당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전 대표는 10월 6일 가처분 기각 판결 이후 “지금까지 두 번의 선거에서 이겨놓고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때로는 허탈했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덩어리진 권력에 맞서 왔다”며 “외롭고 고독하게 제 길 가겠다”며 묘한 뒷맛을 남겼다. 이 전 대표는 부인해왔지만 정가에선 결국 신당 창당을 모색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무성하다.
이 밖에 이 전 대표와 국민의힘 간 본안 소송도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다. 가처분 결과에 대한 이의 제기, 당 윤리위 징계에 대한 가처분 신청 등 이 전 대표가 추가적인 법적 대응에 나설 경우 여권의 갈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 리스크’는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