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비아 MBA·노무라증권 근무·롯데케미칼 상무직 등 신동빈 회장과 걷는 길 ‘판박이’
신유열 상무는 지난 5월 일본 롯데홀딩스 부장에서 롯데케미칼 일본지사 상무로 승진 발령 받았다. 신 상무는 이후 신동빈 회장이 지난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경영에 복귀한 직후부터 함께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존재감을 과시 중이다.
특히 지난 8월 신동빈 회장의 베트남 출장길 모든 일정에 동행해 베트남 정·관계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는 등 해외 사업 추진에 필요한 협력 파트너들과 관계를 텄다. 이달 초에는 김상현 롯데 유통HQ 부회장,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 강성현 롯데마트 대표 등과 함께 잠실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제타플렉스에 방문해 현장을 둘러봤다.
그동안 모습을 보기 힘들었던 신유열 상무의 최근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까닭은 지난날 아버지 신동빈 회장이 걸었던 길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도쿄 출생,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MBA 졸업, 노무라증권 근무, 일본 롯데그룹 입성, 롯데케미칼(전 호남석유화학) 상무직 근무 등 신 상무의 지금까지 모습은 아버지 신동빈 회장이 거쳐온 것과 흡사하다. 신동빈 회장이 그런 과정을 거쳐 롯데그룹 경영권을 승계한 것처럼 아들인 신유열 상무도 같은 절차를 밟아나가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다.
신유열 상무가 국내 경영에 당장 참여하기는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롯데그룹도 신유열 상무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경영 수업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 같은 분위기가 롯데그룹의 한계로 거론됐던 ‘정체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롯데그룹은 그간 일본기업이라는 이미지로 몸살을 앓았다. 오너 일가가 일본 국적을 가졌을 뿐 아니라 아사히주류, 유니클로, 무인양품 등 일본에 본사를 둔 기업과 지분을 나눠 국내에 관련 매장을 여는 등 정체성 논란에 시달렸다.
한국과 일본 이중국적을 가진 신동빈 회장은 1996년 일본 국적을 포기했다. 또 한국롯데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일본 롯데홀딩스를 최대주주로 두고 있는 호텔롯데도 상장을 계획 중이다. 롯데는 과거 일본 롯데홀딩스를 통해 국내에서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해 온 호텔롯데를 지배하는 구조였다. 신동빈 회장은 2015년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롯데는 한국 기업이냐’ ‘한국 국적을 유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롯데는 한국 기업”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신유열 상무의 국적은 일본이다. 그렇다고 경영권 승계를 위해 신유열 상무가 당장 한국으로 귀화할 수도 없다. 신유열 상무는 올해 만 34세로 일본 국적을 포기하면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재계에선 신유열 상무가 병역이 면제된 후 한국으로 귀화해 국적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또 다른 경영 승계 과제는 신유열 상무의 지분이다. 신유열 상무는 13일 기준 한국과 일본 통틀어 계열사 지분이 전무하다. 롯데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롯데지주의 지분도 없다.
신유열 상무가 경영권 승계에 명분을 쌓기 위해선 롯데케미칼의 성장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신유열 상무는 일본지사 소속이긴 하지만 롯데케미칼은 유통과 함께 그룹 내 주요 사업 중 하나기 때문이다. 지분이 없는 신유열 상무는 승계 명분을 쌓기 위해 일단 실적과 성장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롯데그룹은 최근 롯데케미칼 신성장동력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동박제조업체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한 것도 마찬가지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11일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를 위한 본계약을 체결했다. 2조 7000억 원에 일진머티리얼즈 지분 53.3%를 인수한다. 롯데케미칼은 또 인도네시아에 초대형 석유화학단지를 조성하는 ‘라인 프로젝트’에 창사 이래 최대 해외 투자 규모인 39억 달러(한화 약 5조 2000억 원)를 투입할 예정이다.
롯데케미칼에 따르면 신유열 상무는 현재 일본지사에서 해외 투자 및 신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의 원톱 경영 체제가 자리를 잡아가는 만큼 신유열 상무의 경영 승계 작업이 조금씩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다”며 “(신유열 상무가) 입지를 굳히기 위해 경영 성과와 롯데 지분 확보에 힘쓸 것이라고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