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이태원 사태, 경찰 혼잡경비 여건 갖추기 힘든 구조…재발 방지에 더 힘써야”

29일 이태원 골목에서 핼러윈데이를 즐긴 한 시민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한 방향으로만 이동해야 하는 풍경이 그려졌다. 그 행렬을 뚫고 반대로 간다면 사람들에게 갇혀 나올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부터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밀치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밀쳐졌다. 이러다가 한 명 넘어지면 큰 사고가 발생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사고는 자정이 넘어서 발생했다. 그 시작이 어디였는지 가늠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밀침은 골목을 가득 메운 대열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151명으로 집계됐다.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점쳐진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발생한 대형 사고로 인해 여러 가지 의문점들도 생겨나고 있다. 뉴욕타임즈 등 외신들도 “오랫동안 홍보했던 행사였음에도 인파 관리와 계획에 관련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거나 “세월호 참사 당시 느슨한 안전기준과 규제 실패를 드러냈다. 이 사고 이후 정부가 공공 안전기준 개선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에 이목이 쏠릴 가능성이 높다”며 해당 사건에 주목하고 있다.

이때 경찰은 △밀도의 희박화 △이동의 일정화 △경쟁적 사태의 해소 △지시의 철저 등의 원칙에 따라 가능한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을 회피해야 하고, 군중들이 일정한 방향과 속도로 이동할 수 있도록 혼란을 방지해야 하며, 군중들이 조급하게 움직이는 사태를 해소하고, 사태가 혼잡해질수록 안내 방송을 통해 사태를 정리해야 한다.
이태원에서 50년 이상 살아온 한 시민은 “해마다 핼러윈데이 때면 해밀턴 호텔 뒷골목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 장난으로 ‘이러다가 사람에 깔려 죽겠네’라고 농담할 정도로 늘 사람이 많았다”며 “개인적으로는 경찰이 초반부터 인력 통제에 집중했어야 한다고 본다. 매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릴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이라면 경찰이 충분히 초기에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라 본다. 술을 마셔서 정신이 없더라도 경찰이 지나가면 흠칫하게 되는 게 사람이다. 하지만 어제는 둘러보니 사람 통제보단 차량 통제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고 주장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29일 이태원에 10만 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200명 이상의 경찰력을 배치해 불법 촬영과 강제추행, 마약 등 범죄 단속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혼잡경비의 개념을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혼잡경비 개념은 특정 장소에 몇 명이 모일지 명백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적용하기 어렵다. 즉 신고된 집회·시위·행사 등 몇 명이 모일 것으로 가급적 정확히 예측될 때만 경찰력을 투입해 경비 활동을 펼칠 수 있다. 핼러윈데이처럼 유입경로가 다양해 몇 명이 얼마나 모일지 정확히 계산하기 어려운 상황에는 혼잡경비 개념을 적용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2017년 핼러윈데이를 회상하는 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해당 글에선 2분 간격으로 2~3명으로 한 조를 이룬 경찰들이 인파 사이에서 순찰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글쓴이는 “일반인도 걷기 힘든 상황에서 경찰들이 그사이를 계속해서 지나갔다. 사건, 사고도 없는데 비좁은 골목길에 10분 간격으로 경찰들이 지나가는 건 심각한 민폐 아닌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오 교수는 “현재로서는 책임소재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근접한 시기에 크리스마스, 연말 등 핼러윈데이와 유사한 성격을 지닌 시기가 다가온다. 150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상황에서 특정 지역에서의 안전 문제에 대한 통제나 단속에 항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경찰·소방 당국 차원에서 재발 방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예견된 상황에서 똑같은 사고가 발생한다면 정부에 강력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