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단속 사복경찰마저 엄청난 인파로 단속 취소…파출소 인력 20명이 고군분투했지만 돌아온 건 감찰
경찰 역시 같은 입장이다. 30일 서울경찰청은 “핼러윈 대비 경력의 경우 2017~2019년에는 경찰관을 34~90명 수준에서 동원했다”며 “올해는 지구대·파출소 인력을 증원하고 경찰서 교통·형사·외사 기능으로 합동 순찰팀을 구성, 시도경찰청 수사·외사까지 포함해 총 137명을 배치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드는 질문은 예년보다 많았다는 그 경찰은 이태원 대참사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다.
11월 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도 10월 29일 이태원 투입 경찰은 137명이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교통기동대 20명, 교통과 6명, 생활안전과 9명, 112상황실 4명, 외사과 2명, 형사과 50명, 여성청소년과 4명, 이태원파출소 32명, 관광경찰대 10명 등이었다. 형사과와 여성청소년 형사가 54명으로 전체의 40%에 이른다. 인력 배치로 볼 때 경찰은 이날 이태원에서 교통 및 통행 관리보다 마약 범죄와 성범죄 단속 등 치안 업무에 더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당시 치안 업무를 위해 투입된 사복경찰들은 이태원 어디에 있었을까. 10월 29일 오후 6시 무렵부터 시민들의 112 신고 전화가 시작됐다. 경찰은 오후 6시 34분부터 모두 11건의 신고가 이뤄졌다고 밝혔는데 6시 19분과 26분에도 ‘압사’라는 단어가 언급된 112 신고가 있었다. 다만 경찰은 앞선 2건의 신고는 ‘압사 관련’이 아닌 ‘노점상 불편’ 신고로 분류해 발표하지 않았다고 KBS에 밝혔다.
이처럼 관련 신고가 이어졌지만 서울경찰청 112상황실은 민감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경찰은 평소에도 ‘압사’라는 단어가 언급된 신고가 많아 정확한 상황 판단이 어려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결국 서울경찰청 112상황실 상황관리관이었던 류미진 총경을 상황 인지 및 보고 지연을 이유로 대기발령했다.
137명을 투입했다는 경찰 발표에 따르면 이태원에 50명이 넘는 사복경찰이 투입된 상태였다. 당시의 연이은 112 신고는 시민들이 이태원의 인파 밀집 상황이 매우 위험하다고 여겼기 때문인데 이런 상황을 현장에 있던 사복경찰들도 목격했을 수 있다. 112 신고와 무관하게 현장의 사복경찰들을 통해 경찰 내부에 이런 위험 상황이 보고됐을 수도 있다.
물론 이들은 교통 및 통행 관리가 아닌 마약이나 성범죄 단속 등 치안 업무를 담당한다. 본인 업무는 아니었지만 참사가 빚어질 만큼 ‘극도의 혼잡’이 발생했다면 대응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최소한 보고를 해서 경찰이 대응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경찰공무원 복무규정 제3조(기본강령)의 경찰사명은 ‘경찰공무원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충성과 봉사를 다하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함을 그 사명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위험 발생의 방지 등)는 ‘경찰관은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천재, 사변, 인공구조물의 파손이나 붕괴, 교통사고, 위험물의 폭발, 위험한 동물 등의 출현, 극도의 혼잡, 그 밖의 위험한 사태가 있을 때에는 다음 각 호의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구체적인 조치 내용을 밝히고 있다. 또한 이런 조치에 대해서는 지체 없이 소속 경찰관서의 장에게 보고하고, 경찰관서의 장은 관계 기관의 협조를 구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다만 법은 ‘해야 한다’가 아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손수호 변호사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구체적인 상황을 봐야겠지만 경찰관이 권한을 행사해서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아니 하는 것이 현저하게 불합리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 것은 직무상 의무 위반”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현장에서 인명 구조 등에 앞장섰어야 한다. 이태원 대참사 이후 위험에 처한 시민들을 구하고, 직접 심폐소생술(CPR)을 한 다양한 의인들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의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사복경찰이었다는 미담도 전해질 듯한데 그런 얘기는 하나도 없다. 이태원 인파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한 서울 이태원파출소 소속 김백겸 경사의 이야기 정도가 전부다.
과연 당시 사복경찰들은 이태원 어디에서 어떤 업무를 보고 있었던 것일까. 당시 이태원에서 경찰이 별다른 마약범죄와 성범죄 단속 성과를 올렸다는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실제로는 당시 이태원에 경찰 137명이 전부 투입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찰의 137명 투입은 ‘계획’일 뿐이었다. 이날 용산경찰서는 출입기자단에게 “용산서 형사과에서 10시 반부터 이태원 일대 마약단속 나갑니다”라는 문자를 발송했다. 문자를 보낸 시간은 밤 10시 6분. 그리고 10시 55분에 다시 “마약단속 아직 못 나갔다고 합니다. 현장의 인파문제 해결 후 나간다고 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냈고, 11시 33분에는 “압사사고로 금일 마약단속 취소됐습니다”라는 문자를 발송했다.
성범죄 단속을 위한 여성청소년과 경찰 4명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마약범죄 단속을 위해 투입되려던 형사과 경찰 50명은 이태원 현장에 투입조차 되지 못했다. 이태원 대참사는 지난 10월 29일 밤 10시 15분께 발생했고 소방청에서 대통령실로 사고 내용을 통보한 시점은 밤 10시 53분이다.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밤 11시 1분에 보고됐다.
경찰 보고는 이보다 한참 늦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첫 상황보고를 받은 시간은 밤 11시 36분이고 윤희근 경찰청장은 다음 날인 10월 30일 0시 14분에 최초 보고를 받았다. 그런데 용산경찰서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과 윤희근 경찰청장에게 보고하기도 전인 밤 11시 33분에 출입기자들에게 압사사고 관련 문자를 발송했다. 그것도 핵심 내용은 압사사고가 아닌 마약단속 취소였다.
결국 이 장관이 언급한 40% 증원된 경찰 인력 130여 명은 계획에 불과한 허수였고 예년 핼러윈보다 30% 정도 늘어난 13만 명 정도의 인파를 사실상 이태원파출소 경찰 32명이 책임져야 했다.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 김백겸 경사 등이 고군분투하던 모습만 뒤늦게 화제가 된 것이다.
이런 이태원파출소에 대한 경찰청의 조치는 ‘특별 감찰’이다. 이에 ‘이태원파출소에서 근무 중인 직원’이라고 밝힌 경찰은 내부망에 “핼러윈 대비 당시 안전 우려로 인해 용산경찰서가 서울경찰청 기동대 경력 지원요청을 했으나 지원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태원 파출소장은 한 달 전부터 손수 약도를 만들며 대비했다. 사건 당일 오후 6시부터 밤 22시까지 총 79건의 신고가 접수됐으며 당시 근무 중이던 20명의 이태원 파출소 직원이 최선을 다해 근무했다”고 밝혔다.
이어 “용산경찰서 교통직원들도 현장 곳곳에서 인파를 통제 중이었고, 파출소 직원들은 다른 여러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중에도 틈틈이 시민들에게 해산하라고 요청했다”며 “20명으로는 역부족이었다”고 밝혔다. 당시 현장에서 근무한 이태원 파출소 직원을 20명이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경찰청이 밝힌 ‘이태원파출소 32명’보다 적은 인원이다.
그러자 경찰 내부망 ‘폴넷’에는 “현장 경찰관들이 몸부림치는 동안 지휘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감찰조사를 하려면 서울경찰청장 등 책임자를 해야지, 왜 현장에서 고생한 직원들을 불러다 하느냐” 등 다른 지역 경찰들까지 반발하고 나섰다.
이태원파출소 소속 경찰 가족이라고 밝힌 이는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린 글에서 “현장에 계셨던 경찰관, 소방관분들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 트라우마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지만 제 가족은 PTSD를 신경 쓸 겨를도 없다”며 “당장 징계받지 않을까, 혹시 이러다 잘리면 어떡하나 걱정에 잠을 못 이룬다”고 밝혔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