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국정조사 추진 강공모드, 국민의힘 “수사 방해” 부정적…이상민 장관 경질 두고는 의견 분분
경찰청은 11월 1일 ‘이태원 사고 이전 112 신고 내역’ 자료를 공개했다. 참사 발생 약 4시간 전인 오후 6시 34분 접수된 112 첫 신고를 시작으로 참사 발생 직전인 오후 10시 11분 신고까지, 인파가 몰린 위험한 상황에 경찰의 대처를 요청하는 11건 통화 녹취록이었다.
녹취록에 따르면 “골목에 사람들이 오르고 내려오고 하는데 너무 불안하다.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오니까 ‘압사’ 당할 것 같다” “지금 너무 소름 끼친다”(1번 녹취 오후 6시 43분) “인원이 너무 많아서 정체가 돼 사람들 밀치고 넘어지고 다치고 있다”(2번 녹취 오후 8시 9분) “인파가 너무 많아서 대형사고 나기 일보직전이다. 여기 와서 통제하셔야 할 것 같다” “긴급출동 하셔야 할 것 같다”(5번 녹취 오후 9시) “사람들 너무 많아서 ‘압사’ 당할 위기다” “사람 일방통행할 수 있게 통제 좀 부탁드린다”(7번 녹취 오후 9시 7분) “여기 사람들이 ‘압사’ 당할 것 같다” “상태가 심각하다. 안쪽 애들 ‘압사’ 당하고 있다”(8번 녹취 오후 9시 10분) “‘압사’될 것 같다. 다들 난리 났다”(11번 녹취 오후 10시 11분) 등의 신고 발언이 등장한다.
일부 녹취록에서는 신고접수를 받는 경찰이 “네”라는 반응만 반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찰은 현장에 4차례 출동했고, 신고지점 주변 사람들을 해산하는 조치를 취하는 데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의 안이한 판단으로 참사를 막을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11월 1일 경찰청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을 통해 “112 신고를 처리하는 현장의 대응이 미흡했다”고 인정하며 “사전에 위험성을 알리는 112 신고를 받고 제대로 조치했는지에 대해 사실관계를 철저히 확인하겠다. 112 신고 처리를 포함해 전반적인 현장 대응의 적정성과 각급 지휘관·근무자들의 조치가 적절했는지 등도 빠짐없이 조사하겠다”며 고강도 감찰을 예고했다.
실제 112 신고 늑장대응과 관련해 즉각적인 감찰과 수사가 들어갔다.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은 2일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 용산구청, 서울시소방재난본부 서울종합방재센터, 용산소방서, 서울교통공사, 다산콜센터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2일 이임재 용산경찰서 서장을 대기발령 조치한 데 이어, 다음날은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 류미진 총경도 대기발령했다. 경찰청은 두 사람을 업무태만 이유로 특수본에 수사의뢰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을 대상으로 하는 감찰 조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여당 포문도 일제히 경찰로 향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경찰의 미흡한 대응조치를 보고 받고 상당히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어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철저히 진상을 밝히라”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처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참사 책임론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일선 경찰의 늑장대응 문제로 시선을 돌려 ‘꼬리 자르기’를 하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관련기사 ‘꼬리만 잘라서 될까’ 경찰 112 신고 녹취록 공개 파문).
112 녹취록 공개 후 여권은 긴장감이 역력하다. 정부와 지자체가 행사를 앞두고 안전예방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참사 발생 후에도 정부의 재난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점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광호 서울청장은 이번 참사 관련해 10월 29일 오후 11시 36분 이임재 용산서장으로부터 첫 보고를 받았다. 참사 발생(오후 10시 15분) 1시간 21분이 지난 시점이다. 경찰청은 서울경찰청으로부터 참사 발생 1시간 47분이 지난 10월 30일 오전 0시 2분에 첫 ‘치안 상황 보고’를 들었다. 경찰청은 3분 후 대통령실에 사고 내용을 보고했고, 윤희근 청장은 0시 14분에 첫 보고를 받고 사안을 인지했다. 경찰의 수장이 참사 발생 시점으로부터 약 2시간 지나서야 관련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경찰청 보고 이전에 대통령실은 참사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방당국이 첫 신고가 접수된 지 38분 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통령국정상황실에 곧장 알려, 윤석열 대통령은 오후 11시 1분에 상황을 보고 받았다. 경찰청이 대통령실에 보고한 시각보다 61분 빨랐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11시 21분 “구조에 만전을 기해 달라”는 첫 지시를 내렸다.
행안부 중앙재난상황실도 소방당국으로부터 첫 신고 내용을 오후 10시 48분에 접수 받았다. 이어 중앙재난상황실은 오후 11시 19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포함한 재난안전 담당자들에게 문자로 이 사실을 알렸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정부가 지난해 구축한 지자체·소방당국·경찰 간 재난안전통신망이 이태원 참사 당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재난안전통신망은 경찰·소방·해양경찰 등 재난 관련 기관이 하나의 통신망으로 소통하는 전국 단일 통신망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필요성이 부각돼 지난해 구축 완료됐다. 정부는 이 통신망 구축에 1조 5000억여 원 예산을 배정했으며, 구축 당시 4세대 무선통신기술(PS-LTE)을 기반으로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라고 홍보했다.
또한 참사 초기부터 정부와 지자체의 고위 공직자들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원인 규명과 책임 소재 확인 필요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불에 기름을 부은 이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는 부처의 장을 맡은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었다. 이 장관은 참사 직후인 10월 30일 브리핑에서 사전 대비가 미흡했다는 지적에 대해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야당뿐 아니라 여당 내에서도 질타가 쏟아지자 이상민 장관은 결국 머리를 숙였다. 그는 11월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보고에 출석해 “국가는 국민의 안전에 대해 무한 책임이 있음에도 이번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뭇매를 맞았다. 11월 1일 열린 외신 기자간담회에서 한 총리는 외신기자와의 문답과정에서 농담조 발언을 하는가 하면, 웃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자 참사 직후 초당적 협력을 약속하며 정쟁 관련 언급을 자제해온 더불어민주당 내부 기류도 공세로 전환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1월 1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책임 규명을 보류하고 정부의 수습 노력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충분한 시간을 드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 어느 누구도 ‘이 사건에 대해 책임이 있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며 참사에 대한 책임을 당국자들이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이것은 명백한 인재이고, 정부의 무능과 불찰로 인한 참사가 맞다”며 “사고가 왜 발생했는지, 피할 수 있는 사고였는지 철저히 규명해야 할 때가 됐다”고 날을 세웠다.
당초 민주당 내부에서는 참사 원인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는 지켜보자는 신중론이 우세했다. 참사 직후 연락한 복수의 민주당 의원들은 일요신문에 “국정조사가 필요한 사안이긴 하다”면서도 “아직은 정부여당 움직임을 지켜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말을 아꼈다.
하지만 11월 3일 민주당은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하겠다는 입장을 세웠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국민의 불안과 분노가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정조사를 통해 국민과 함께 진상규명에 전면적으로 나서겠다”며 “여당도 철저한 원인 규명을 주장하고 있는 만큼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반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민주당 내 구성된 ‘이태원 참사 대책본부’의 핵심 직책을 맡고 있는 한 의원은 “소관 상임위인 행안위에서 명백한 문제가 나오면 국정조사를 하자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당국자들의 행동이나 발언을 봤을 때 국정조사로 갈 수밖에 없다고 지도부가 판단한 것 같다”며 “민주당으로선 애도의 차원에서 하고 싶은 말도 참고 있는데, 대통령은 사과도 안 하고 한덕수 총리나 이상민 장관은 망언만 일삼고 있다. 또한 일선 경찰 문제로 몰아가며 ‘꼬리 자르기’ 시도를 하고 있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민주당은 오세훈 서울시장이나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지자체 문제점을 짚기 위해서도 국정감사는 불가피하다는 부연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국정조사 요구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11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국정조사든 특검이든 진실조사와 재발 방지에 필요하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은 국정조사 할 때가 아닌 것 같다”며 “지금은 신속한 강제수사를 통해서 여러 가지 증거를 확보하고 보존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 강제 수단이 없는 국정조사를 지금 한다면 오히려 수사에 방해가 될 뿐이고 논점만 흐릴 뿐”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여당이 국정조사 요구를 마냥 거부하지만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앞서 민주당이 주장한 ‘김건희 특검법’ ‘대통령실 이전 국정조사’ 등과 달리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는 정쟁이 아닌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다루는 내용이다. 현재 국민 여론도 이번 참사와 관련해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정조사를 거부한다면 정부여당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느 선까지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것을 두고도 의견이 갈린다. 앞서 언급했듯 ‘112 신고 녹취록’ 공개가 윗선으로 책임론이 올라가는 것을 차단하려는 계산이라는 분석도 나왔지만, 오히려 이상민 장관 경질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야권에서는 이상민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은 책임을 지고 경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일각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상민 장관은 사퇴시키지 않고 지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윤 대통령이 이 장관과 2일과 3일 연달아 서울광장 합동분향소 조문을 함께한 것을 두고 소위 ‘재신임’ 메시지를 보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또 다른 야권 관계자는 “이임재 용산서장뿐만 아니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도 경질이 불가피하다는 게 거의 기정사실처럼 나온다”며 “하지만 이상민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거취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국가 애도기간 후 두 사람의 경질될 것이라는 설과 유임된다는 말이 동시에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도 이 장관을 경질하면 그 여파가 한덕수 총리와 대통령 본인에게까지 번져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이상민 장관 경질론에 대해 “누가, 얼마나,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철저한 감사와 수사 진행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며 “정무적 책임 역시 사실을 기반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상민 장관 역시 4일 중대본 회의 참석 후 행안부 장관의 책임론에 대해 “사고 수습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차차 말씀 드리겠다”고 말을 아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