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구 재선 의원 배출 실패 뼈아픈 대목…전 정권 수사 국가 통합에 좋은 방법 아냐”
―2017년 7월부터 2년간 대표직을 수행한 데 이어 또 대표를 맡게 됐다.
“또가 아니라 꼭 이정미가 필요해서 선택받았다고 생각한다. 몇 년 동안 당이 여러 가지 부침을 겪었다. 내부도 혼란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서 혁신의 길을 가야 한다. 당을 하나로 결속시킬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6석이라는 적은 의석이지만, 하나하나가 천금 같은 무게를 갖고 있다.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의정활동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당에서 지원하겠다. 양당 체제 안에서 새로운 정치 흐름 필요하다. 잘 해내야 한다는 채찍에 정의당은 부응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민주노동당은 권영길 단병호 강기갑 천영세 등을 배출했고, 통합진보당 해산 후 노회찬 심상정이 정의당을 이끌었다. 그 뒤를 이어갈 인물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로운 세대가 진보 정치에서 출현해야 될 때가 됐다. 당 대표로서 그들이 기량을 쌓아가고, 정치인으로서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싶다. 특히 지역구 재선 의원을 배출하는 데 실패한 게 뼈아픈 대목이다.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구에서 선택받는 정치인들이 필요하다. 정치인의 중량감이라는 것이 비례대표 한 번 하고 끝나는 것으로 생기지 않는다. 앞으로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다음 총선에서 어떻게든 만들어내겠다. 당의 중심이 튼튼하게 자리 잡고, 젊은 정치인들도 힘을 받아서 함께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만들겠다.”
―당명 개정을 비롯한 재창당 작업을 2023년까지 마치겠다고 밝혔다.
“재창당은 3개 프로세스로 진행될 예정이다. 우선 현재 정의당만으론 안 되고, 제3 정치 세력으로 확장되고 커져야 한다. 의지가 있는 분들과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도록 세력화 작업에 나설 것이다. 노동, 기후 등에서 제3정당이 커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치 세력 규합을 1차적으로 진행하겠다. 이를 밑바탕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과제도 복합적인 시대에 맞춰 우리 가치와 지향점을 담아낼 수 있는 비전도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 따라 당명을 변경할 계획이다.”
―어떤 가치와 지향점을 고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복지정책이 21세기에 맞춰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1970년대부터 진행된 신자유주의 질서가 사람 관계를 파편화시키고, 정글 같은 세상에서 각자도생해야 하는 사회를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방치됐다. 수원·송파 세 모녀 사건이 대표적이다. 복지 정책을 돌봄 국가 시스템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현재 노동만 보더라도 전통적인 노동 형태와 전혀 달라졌다. 하청의 재하청이 심해졌다.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은 노동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변한 노동 형태에 맞춰 권리도 보장해주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36억 원 부채 해결 방안은 어떻게 모색하고 있나.
“2020년 21대 총선 때 발생한 부채들이다. 앞전 비상대책위원회가 부채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서서히 갚아 나가고 있다. 정의당 같은 제3당은 당비 의존도가 높다. 국회 정당 국고 보조금이 부익부 빈익빈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1만 당원 모집을 추진하고 있다.”
―‘조국 사태’로 집단 탈당하는 일이 있었다. 재발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정의당답다는 소리를 들으면 된다. 자기 할 말을 분명하게 하며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당내에 이견이 발생했을 때도 즉각적으로 토론하고 하나로 모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정의당 내부에서 ‘노동이냐, 페미니즘이냐’라는 당 정체성 논쟁이 벌어진 적도 있다. 앞으로의 노선은.
“양자택일 가치가 아니다. 평등이라는 공통된 가치가 있다. 노동자들은 ‘동일노동 동일일금’ 원칙을 적용받아야 한다. 남녀도 성별 차이로 차별을 받아선 안 된다. 이게 우선이냐, 이것만 할 거냐로 볼 문제가 아니다. 정의당이 오랫동안 이야기해온 평등의 가치를 실현해야 할 문제로 봐야 한다. 젠더 폭력이면서 일터에서 일어난 신당역 살인사건이 대표적이다. 작업장에서 생명 위협을 받으면서 일한 것이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직원들도 취객으로부터 폭행당한 경험이 있다. 젠더 폭력이면서도 노동 환경 문제인 셈이다.”
―왜 정의당이 존립 위기에 몰렸다고 생각하나.
“대한민국에서 제3당이 성공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숱한 제3정당이 시련을 겪으며 실패했다. 유일하게 정의당이 원내정당으로서 살아남았다. 3당이 살아남기 어렵지만, 국민께 꼭 필요하다는 존재의 이유를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왜 정의당을 뽑아야 하는지를 충분히 못 보여줬다. 우선 당 내부가 취약해 있었다. 토론 문화, 지역 활동 시스템, 시민과 소통할 수 있는 구조 등 모두 취약했다. 앞으로 지역 기반을 잘 다져나갈 것이다. 전략 지역구에서부터 당의 지역 질서와 체계를 복구해 나가겠다. ‘정의당TV’ 사업을 통해서 정의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국민께 충분히 전달하도록 하겠다.”
―‘민주당 2중대’ 꼬리표를 청산하고 민생을 개선해 당을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정의당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해나갈 때 거대 양당을 두고 양자택일하지 않겠다. 요즘은 국민의힘 2중대라고도 한다. 누구 2중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일하겠다. 국민께 필요한 일이면 어느 당과도 협력하겠다. 그거에 반하면 가차 없이 비판하겠다. 특히 거대 양당이 깔아놓은 판에 어떤 편에 설지 고민하기보다는 선제적으로 나서겠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직후 애도와 추모 시간이라며 모두 조심하고 있었다. 정의당은 어떤 정당보다 앞서서 윤석열 대통령 사과와 관련 책임자들 파면하라고 요구했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국회 국정조사 시급하게 진행해야 한다. 국정조사 통해서 정부에 자료와 증인 출석을 요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진상규명과 책임을 물을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당시 검찰이 5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걸 국정조사로 실체를 규명했다.”
―문재인 정부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수사 결과를 지켜보면서 판단하려고 한다. 다만 전 정권 대통령에 대해서 결론이 나올 때까지 수사하는 것이 국가 통합에 좋은 방법인지 모르겠다.”
―정치적 양극화 탓에 제3정당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민주당 도움 없이는 도입하기 어렵다.
“전략 지역구를 선택하고 집중해서 성과를 내고 지지를 받아 소선구제를 극복하도록 하겠다. 다만 매 국회 때마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구성돼 있다. 지금 선출 제도가 문제가 있다는 걸 모든 당이 느끼고 있단 뜻이다. 20대 국회에서 위성 정당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민주당 진보 유권자들이 지역구와 비례에서 교차투표하는 것도, 정의당이 필요한 존재라서 하는 것이다. 정의당을 선택할 이유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민주당이 중요한 건 아니다.”
―정의당 대표 후보 5명 모두 ‘노란봉투법’을 1호 법안으로 꼽았다.
“사측에서 불법 파업이 아니더라도 손해배상을 때린다. ‘쌍용차 사태’가 대표적이다. ‘노란봉투법’ 듣고선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쌍용차 사태처럼 집안이 풍비박산되고, 수십 명씩 자살하는 것을 용인하는 사회가 괜찮은 사회냐 물으면 아니라고 답한다. 최근 대우조선해양이 하청업체 노동자들한테 470억 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청 노동자들이 조선업 불황일 때 몇 년간 임금 동결을 겪었다. 올해 조선업계 활황 국면에서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가 손해배상을 맞은 것이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 국민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민주당에서도 적극 공감하고 있다. 충분히 설득해서 통과시키겠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이 부작용 우려된다며 반대의 뜻을 밝혔다.
“검사 출신 대통령이 국정 전반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데 이해 폭이 좀 좁다고 생각한다. 정치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문제가 무엇인지 깊이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제3당으로서 대통령을 한 번 만날 일이 있을 것 같다. 노란봉투법 왜 필요한지 설명하겠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도 사회적 약자 중심의 복지를 외치고 있다.
“정치적 레토릭에 불과하다. 정부 여당이 내놓은 이번 예산안을 보면 ‘하후상박’이 아니라 ‘하박상후’다. 부동산 규제를 풀고 혜택을 늘렸다. 반면 공공임대 주택 예산 5조 7000억 원을 삭감했다. 이게 왜 약자 복지인지 되묻고 싶다. 이 정부 들어서서 가장 위기와 위협을 느끼는 부분이 노동인 거 같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당은 정의당뿐이라고 생각한다. 원내정당으로서 실질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다.”
―시급한 민생 현안을 꼽아 달라.
“레고랜드 사태 이후에 총체적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를 느낀다. 진짜 커다란 경제 위기 상황이 다가올 수 있다고 예측된다. 대표단 회의에서 IMF 외환위기를 갑작스럽게 맞았던 일을 반면교사 삼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공적자금을 재벌들에게 쏟아 부었고, 대규모 정리해고가 단행됐다. 노동자들이 하청업체 노동자가 되거나 자영업자가 됐다. 그때 교훈을 잘 봐야 한다. 구제 우선순위를 어디에 둬야 할까. 80~90% 노동자가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IMF 외환위기 때처럼 대기업만 지원하면 일자리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여야정이 ‘경제위기 민생대책 논의 테이블’을 만들자고 제안하고 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