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약쟁이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흔해져…유흥가 전체를 마약이 삼켜버릴 수도”
“지금 분명한 사실은 철저한 마약 단속이 절실하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에 마약이 얼마나 퍼져있는지 가장 실감하는 게 바로 이 바닥(유흥업계) 사람들일 게다. 정말 심각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난 뒤 유흥업계 사람들에게 코로나19 이전과 가장 달라진 게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 마약이라고 얘기한다. 우리 입장에선 마약 단속이 달갑지는 않지만 냉정하게 보면 단속을 하긴 해야 할 것 같아 보인다. 그것도 강력하게.”
강남에서 룸살롱을 운영하고 있는 유흥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그만큼 요즘 유흥업계에서 마약 관련 얘기가 자주 오간다. 심지어 7월에는 ‘강남 유흥업소 사망사건’이 발생하면서 유흥업계에선 마약이 포비아(공포증) 수준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마약 투약 의사가 전혀 없는 접대여성이 손님이 권한 ‘몰래 마약을 탄 술’을 마시고 사망한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유흥업계의 가장 공통적인 반응은 마약이 굉장히 흔해졌다는 점이다. 마약은 음지에서 중독자들만 몰래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이젠 누가 약쟁이(마약 투약자)인지 알 수가 없어진 점’이라고 한다. 강남의 한 룸살롱 상무의 설명이다.
“예전에는 아예 약쟁이들이 찾는 룸살롱은 따로 있었다. 그런 데선 아예 술과 함께 몰래 마약을 팔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평범한 룸살롱에도 약쟁이들이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딱 보면 안다. 그래서 아예 그런 손님은 안 받거나, 우리가 철저하게 조심을 하곤 했다. 요즘에는 우리도 구분할 수가 없다. 평범한 회사원인 줄 알았는데 룸에서 대놓고 약을 하는 경우도 봤다. 그런가 하면 마약 유통하는 애들이 손님으로 와서 접대여성들한테 샘플을 주면서 마약을 권하기도 한다.”
유흥업계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는 ‘단속’이다. ‘2차’라 불리는 불법 성매매 단속부터 가짜 양주 단속 등은 물론이고 소방 관련 단속도 싫어한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상황에서 방역법 위반 단속, 불법 영업 단속 등도 싫어했다. 단속으로 벌금을 내게 되거나 영업정지 당하는 것도 싫지만 이를 피하려 뒷돈을 주고 굽실거리는 것도 싫다고 한다. 그럼에도 마약에 대해서는 ‘단속을 하긴 해야 할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는 유흥업계 관계자들이 나올 정도다.
실제 유흥업소에 마약 관련 단속은 2022년 내내 이어졌다. 9월 6일에는 서울강남경찰서가 강남 일대 클럽과 유흥업소 합동 점검 과정에서 무허가 유흥업소를 운영한 업주 및 유흥 종사자 5명을 적발하기도 했다.
사실 당시 경찰은 마약 단속 중이었다. 마약 단속을 위해 서울 강남구 소재의 104평 규모의 대형 유흥업소를 단속했는데 마약 관련 범죄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8개의 룸을 갖추고 종업원까지 고용해 접객 행위를 하던 그 업소는 1종 유흥업소가 아닌 일반음식점으로 영업 신고를 하고 운영하고 있었다. 무허가 유흥업소였던 것.
이처럼 ‘마약 확산방지를 위한 유흥시설 등 합동점검 및 단속’ 과정에서 무허가 불법 영업 유흥업소들이 연이어 적발됐다. 유흥업소가 ‘단속’이라는 단어를 극도로 싫어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유흥업계 최대 대목인 연말이 다가오면 경찰의 마약 단속이 더 강도 높게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었다. 앞선 사례들처럼 마약 단속이라고 마약 범죄 관련 단속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마약 범죄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무허가 영업이나 성매매 등 다른 불법 요소가 발견돼도 단속이 이뤄진다.
실제로 8월부터 10월까지 마약류 범죄 집중 단속을 진행한 경찰청은 기간을 12월 31일까지 2개월 연장하기로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물론 대통령실까지 나서 사실상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고 경찰이 마약 단속에 집중하느라 핼러윈 당시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시민 안전을 위한 대비가 소홀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이태원 참사 수사를 위해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이태원 참사의 원인과 책임 소재에 대한 수사에 돌입했다. 이런 상황이 경찰 내부 분위기를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경찰은 치안과 수사 등 주어진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마약 수사 역시 현재진행형이지만 수개월 동안 이어진 대대적인 마약 집중 단속은 다소 힘이 빠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한 경찰 관계자는 “마약 단속은 단속대로 진행하고 시민 안전 대비도 별도로 할 수 있었다”라며 “원인과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밝혀야 하는 상황에서 당시 마약 단속만 계속 얘기하는 것은 정확한 책임 소재 규명에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단속’을 극도로 싫어하는 유흥업계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다. 마약 단속도 단속인 만큼 힘이 빠지는 상황은 반길 일이지만, 최일선에서 느끼는 마약의 심각성을 그냥 눈 감아 버릴 수도 없다고 한다. 앞서의 유흥업계 관계자는 요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이쪽 사람들을 중에는 경찰 마약 단속의 힘이 빠지면 좋겠다는 분들도 있는 게 현실이다. 코로나19로 몇 년 힘들어 이번 연말에 제대로 호황을 누려야 하는데 경기 불황으로 매출이 기대 이하다. 그런데 마약 단속까지 잦아지면 더 힘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마약에 대한 걱정도 큰 게 현실이다. 아무리 안 보려 해도 고개만 살짝 돌리면 보일 만큼 마약이 우리 가까이까지 왔다. 단속은 싫지만 이러다 한국 사회를, 우리가 먹고 사는 유흥가 전체를 마약이 삼켜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 입장에선 참 딜레마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