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스테핑’ 중단 놓고 여당 의원도 “접근 잘못” 진단…노무현 정부 언론개혁 ‘십자포화’ 맞은 사례 떠올리기도
#트레이드마크 내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월 21일부터 출입기자단과 정례적으로 해오던 출근길문답을 하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 1분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1층에 도착한 다음 기자들 앞에 서지 않고 곧장 집무실로 향했다. 앞서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윤 대통령 출근 직전인 오전 8시 54분 언론 공지를 통해 “11월 21일부로 도어스테핑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태와 관련해 근본적인 재발 방지 방안 마련 없이는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불미스러운 사태’란 11월 18일 윤 대통령의 출근길문답 당시 벌어진 일이었다. 윤 대통령이 ‘MBC 취재진 전용기 탑승 배제’에 대해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고 아주 악의적인 형태를 보였다”고 말한 데 대해 MBC 출입기자가 윤 대통령에게 항의성 질문을 하고, 대통령실 비서관과 공개 설전을 벌였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21일 오후 브리핑에서 당시를 ‘고성이 오가고 난동에 가까운 행위가 벌어진 현장’이었다고 지적하며 “정당한 취재 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MBC를 비판했다.
출근길문답은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었던 것이라 윤석열 정부의 간판과도 같았다. 외부 공개 일정이 없이 용산으로 출근하는 날은 가급적 기자들과의 만남을 빠뜨리지 않았다. 문답 과정에서 말실수가 나와 몇 차례 논란이 불거져 중단해야 한다는 조언이 많았지만, 윤 대통령이 앞장서 이를 계속해서 끌고 왔다.
이에 출근길문답 중단에 고민도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워낙 애정을 가졌던 것이라 중단 결정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MBC 기자와의 충돌이 빚어졌던 18일 이후 주말과 휴일 동안 난상토론 끝에 출근길문답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참모들뿐 아니라 윤 대통령도 외부 원로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다양한 의견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출근길문답을 하던 대통령실 청사 1층 현관과 기자실 사이를 완전히 봉쇄하는 가림막도 설치됐다. 외교사절 출입이 기자들에게 노출돼 사진 촬영으로 이어지자 해당 국가의 항의가 나왔고 이를 방지하는 차원이라는 대통령실의 설명이 있었다. 하지만 출입기자들은 출근길문답 중단과 연관된 조치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여권에서조차 볼멘소리
출근길문답 중단 조치가 나오자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은 총공세에 들어갔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11월 21일 국회 브리핑에서 “참 권위적인 발상이고 좀스러운 대응”이라며 “불편한 질문을 거부하는 것은 닫힌 불통”이라고 쏘아붙였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통령실이 출근길문답 장소에 가림막을 설치한 것에 대해 “차라리 땅굴을 파고 드나드십시오”라며 “MBC 기자가 그렇게 두렵나. 덩치는 남산만 한데 좁쌀 대통령이라는 조롱이 많다”고 비꼬았다. 박용진 의원은 자신의 SNS(소셜미디어)에 “윤석열 대통령이 설치한 것은 언론용 가림벽이 아닌 국민을 향한 오만의 벽, 불통의 벽, 옹졸의 벽”이라며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형편없는 언론관으로 유명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정도는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여권 내부에서는 일단 MBC에 대한 성토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강경 대응이 오히려 화를 더욱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기자 출신인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11월 2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대통령실과 MBC의 갈등과 관련해 “MBC 사태는 대통령 홍보수석실에서 접근을 대단히 잘못했다. 모든 부담이 대통령 본인에게 옮겨갔다”고 진단했다. 조 의원은 ‘MBC 전용기 탑승 배제’ 조치에 대해 “꼭 태워야 한다는 의무조항은 없다”면서도 “(탑승 배제 조치 판단을 하게 된) 한 두세 번 정도의 명분을 축적해야 했는데, 그런 절차가 빠졌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항상 보면 대통령에게 직접적으로 고스란히 그 부담이 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권 내부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형평성·공정성 논란을 빚어온 TBS에 대해 보여 온 인내 전략을 소환하기도 한다. 힘으로 때려서 잡을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이 있지만 헛힘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오 시장은 TBS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부터 좋지 않은 관계를 이어왔다. TBS 간판 프로그램인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이른바 ‘생태탕 논란’으로 오 시장에 대한 비판 보도를 이어가자 양측의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보궐선거에서 승리하자마자 가장 많이 들어온 질문이 ‘TBS 어찌할 거냐’였는데 오 시장은 강공으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청취자가 판단하면 되는 문제이고, 결국 서울시의회가 TBS에 대한 예산 지원을 대폭 줄이기로 했다. MBC 사안도 조금 달리 생각했다면 잘 풀렸으리라 보는데 아쉽다.” 서울시 한 관계자의 평가다.
#노무현 정부 ‘언론 바로잡기’ 역풍
여권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언론 바로잡기’를 시도하다 역풍을 맞아 국정 운영에 고전했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언론에 대한 대대적 개혁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반칙과 특권을 없애겠다는 그의 정치적 신념이 언론 쪽으로 향한 것이다.
취임 바로 다음 날인 2003년 2월 26일 청와대는 노 전 대통령 지시로 신문 가판 구독을 중단했다. 다른 정부기관들 역시 며칠 뒤인 3월 1일부터 가판 구독을 모두 중단하기 시작했다. 3월 14일에는 정부부처 출입기자실 개방 및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 운영, 기자의 사무실 임의방문 취재금지, 공무원의 기자 면담 내용 보고 의무화, 기사의 취재원 실명제 등을 시행했다.
2005년 1월에는 국회에서 발행부수가 많은 신문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규정하여 제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신문법개정안’과 ‘언론중재및피해구제등에관한법률안’이 통과됐고, 같은 해 8월에는 ‘정부정책홍보 처리 기준’을 만들어, 특정 일간지와 인터뷰하거나 일간지에 기고한 고위 공직자들에게 경위 설명을 요구하는 지침을 내렸다. 이어 2007년 5월 22일에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출입기자 제도를 폐지하고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했지만 일부 송고실이 출입기자단에 독점되자,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완성하려는 취지의 방안을 도입한 것이다.
취지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노 전 대통령이 언론을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하고 긴장 관계를 설정하자 언론은 반발했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 보도는 봇물을 이뤘다. 보수언론은 물론, 일부 진보언론조차 언론 개혁 조치에 대해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언론과의 긴장 관계 속에서 노 전 대통령의 직선적 성격이 만들어낸 발언들이 취임 초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이를 언론이 놓치지 않고 대서특필하면서 현직 대통령에 대한 여론은 나빠져 갔다.
2003년 5월 광주에서 말한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 2003년 10월 측근 비리가 드러나자 ‘대통령의 재신임을 묻겠다’고 한 선언, 2003년 12월 14일 대통령과 4당 대표회담에서 ‘자신의 불법선거 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것 등 임기 초반부터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은 언론의 십자포화 대상이 됐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이렇게 조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만든 영화 ‘변호인’을 보고 윤 대통령이 울었다고 김건희 여사가 전한 바 있는데, 강직한 법조인이자 정치인이었던 노 전 대통령을 본받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정치는 굉장히 복잡한 과정 속에서 진행돼, 언론을 대할 때도 여러 정무적 변수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최근 상황은 언론과 각을 세웠던 노무현 정부를 떠올리게 만든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나 이라크 파병 등 진영을 과감히 뛰어넘는 결단이 많았는데, 언론 개혁 여파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정권재창출도 실패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