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측정 피한 뒤 혈중알코올농도 정상이면 정확한 추정 불가능…“처벌기준 안 넘어” 음주 사고 경찰 무혐의 결론
#"음주 측정 말아달라" 부탁에 집으로 돌려보내
지난 11월 21일 인천경찰청 교통조사계는 A 씨를 도로교통법상 ‘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음주운전’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불충분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사고 이후 10시간 만에 음주 측정을 해 혈중알코올농도가 나오지 않아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해 수사를 진행했지만 사고 당시 A 씨의 혈중알코올농도가 처벌 기준인 0.03%를 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됐기 때문이다.
A 씨는 9월 14일 오전 0시 30분쯤 인천시 중구 신흥동 한 도로에서 음주 상태로 차량을 운전하다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지만 바로 도주했다. 몇 시간 뒤인 14일 새벽 경찰 연락을 받고서야 A 씨는 경찰서에 출석했다. 그러나 인천중부서 교통조사팀 소속 경사 B 씨는 A 씨를 음주 측정 하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 과정에서 B 씨는 A 씨의 상사이자 같은 중부서 소속 경감 C 씨에게 전화를 걸어 “부하 직원이 조사를 받고 있다”고 알렸는데 이에 C 씨가 “음주 측정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14일 오후에서야 A 씨는 음주 측정을 받았지만, 이미 사고 발생 시점에서 상당한 시간이 흘러 혈중알코올농도 수치가 정상으로 나왔다.
이후 해당 사건은 곧바로 인천경찰청으로 이첩돼 수사가 진행됐다. A 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음주 사실을 인정했으며 회식 장소 내 CC(폐쇄회로)TV를 통해 음주 장면도 확인됐다. 이를 기반으로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한 결과 사고 당시 A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처벌 기준을 넘지 않은 것으로 나왔다는 게 경찰 입장이다.
결국 A 씨는 증거불충분으로 음주운전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사고 후 미조치 혐의는 인정돼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A 씨는 직위해제 처분을 받았고 B 경사와 C 경감은 직무유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지만 현재 인천중부서에서 정상적으로 근무하고 있다.
#“피고인에게 유리한 시점 적용” 어려워지는 혐의 입증
해당 사건에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경찰이 수사에 활용한 위드마크 공식이다. 이는 음주운전 사고 발생과 단속 시점이 다를 경우 △운전자가 마신 술의 종류 △음주량 △운전자의 체중 △성별 등을 고려해 시간 경과에 따른 혈중알코올농도를 역추산하는 방법이다. 1930년대 스웨덴에서 개발된 위드마크 공식은 지난 1986년 음주운전 뺑소니 운전자 처벌 등을 위해 우리나라에 도입됐다.
최근 위드마크 공식에 대해 여러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 경찰은 주로 사고를 낸 뒤 도주한 피의자의 음주운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위드마크 공식을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경찰이 계산한 피의자의 혈중알코올농도가 처벌 기준인 0.03%보다 높아도 법원에서 이를 핵심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위드마크 공식은 1930년대 유럽에서 서양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고, 표본 수도 부족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하기 어렵다는 게 단점이다. 법원은 이를 하나의 연구 결과로 인정하면서도 핵심적인 증거로 채택하기는 부족하다고 판단해 음주운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추가적인 증거를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위드마크 공식을 이용한 혈중알코올농도 추정치 외에도 △음주 장면이 찍힌 CCTV 영상 △정확한 음주량 △음주사고 당시의 보행 상태 등이 함께 증거로 제시돼야 음주운전 혐의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알코올 분해 시점을 정하는 것도 위드마크 공식에서 중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다. 경찰은 그동안 알코올 분해소멸이 시작되는 시점을 ‘음주가 끝난 시각’으로 정하고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해왔다. 하지만 지난 6월 대법원은 혈중알코올농도를 추정하기 위해 위드마크 공식을 활용하는 경우 ‘음주 시작 시각’부터 알코올이 분해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아울러 위드마크 공식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혈중알코올농도가 정상으로 나오면 정확한 추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음주 사고를 내고 도주한 뒤 시간이 지나 음주 측정을 받으면 마신 술의 양을 기반으로 혈중알코올농도를 추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보통 피의자 또는 같이 술자리를 한 사람의 진술, 음주 장면이 담긴 CCTV 영상 등을 가지고 음주량을 판단한다. 따라서 정확한 음주량 확인이 어려워 위드마크 공식을 활용한 추정치의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음주 장면이 포착된 CCTV 영상 등이 없고 피의자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음주운전 혐의 입증은 더욱 힘들다.
인천중부서 A 경장 사건도 사고 당시의 음주 측정값이 없어 음주량을 기반으로 혈중알코올농도를 역추산했고, 경찰은 A 씨가 음주 사실을 인정했음에도 혈중알코올농도 수치가 처벌 기준보다 낮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음주운전 혐의를 더 적극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활용돼 온 위드마크 공식이 이번에는 경찰이 동료 경찰의 ‘음주운전 혐의없음’ 결론을 이끌어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A 씨의 동료 경찰들이 ‘식구 감싸기’를 위해 위드마크 공식을 이용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경찰은 다른 음주운전 혐의자들과 동일한 조건으로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했다는 입장이다.
#‘한국형 위드마크’ 공식 언제쯤…
한편 위드마크 공식에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는 만큼 위드마크 공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특히 위드마크 공식의 과학적 타당성에 대한 논란이 많기 때문에 술의 종류, 연구 대상 등을 한국에 맞게 수정한 ‘한국형 위드마크’ 공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에 지난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한국형 위드마크 공식 개발을 위해 임상 시험을 통한 데이터 표본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올 들어서는 새로운 혈중알코올농도 판별법과 함께 한국형 위드마크 공식을 실제 감정에 활용하겠다는 계획도 밝혔지만 아직 구체적인 사항은 공개하지 않았다.
박정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