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두고 장씨와 최씨 가문 충돌 가능성…한화·LG 등 지분 확보한 제3자의 판단 변수
현재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는 영풍(지분율 26.11%)으로, 특수관계인까지 포함하면 장씨 일가 측 우호지분은 31.25%에 달한다. 최씨 일가 지분율은 14.58% 정도로 절대적으로 열세다. 그런데 고려아연은 최근 제3자 배정 유상증자(5%)와 자사주 매각(6%)을 통해 한화그룹과 LG화학 등을 새롭게 대주주로 영입했다. 이 밖에 한국타이어와 조선내화 등은 시장에서 고려아연 지분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가 매집한 지분은 약 1%에 달한다.
새롭게 대주주가 된 주주들이 연합해 장씨에 맞선다면 최씨 일가 세력은 27%에 육박한다. 최씨 집안이 오랜 기간 고려아연 경영을 도맡아 왔던 점을 감안하면 장씨를 제외한 다른 주주들과 우호관계를 쌓아왔을 가능성도 크다. 8% 이상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나 외국인 등 소액주주가 그동안 회사를 키워 온 최씨 측에 우호적일 수도 있다. 제3자 배정증자는 이사회 권한이다. 최씨 측이 추가적인 증자로 우호세력을 더 늘릴 가능성도 열려 있다.
한화로의 3자 배정 유상증자 때 고려아연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아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외부에 드러냈던 장형진 (주)영풍 회장이 한화·LG 등과의 자사주 교환 때에는 회의에 참석해 찬성표를 던졌다. 장씨 측도 나름 계산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LG화학과 한화 등이 확보한 고려아연 지분은 각각 2년과 3년 이내에 제3자에 처분할 수 없다. 이 기한 이후 제3자에 처분할 때도 고려아연의 동의가 필요하다. 고려아연이 다시 자사주로 매입할 수도 있지만 양 가문이 각각 지배하는 계열사들이 동원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최씨 측이 주주연합으로 장씨 측을 넘어선다고 해도 최종적으로 어떻게 고려아연의 지배력을 확보할지는 숙제로 남는다. 계열분리를 하려면 장씨 측 지분은 3% 이내로 줄이고 최씨 측 지분은 늘려야 한다. 현재 최씨 측이 가진 (주)영풍 지분 가치는 2000억 원 남짓이다. 장씨 측이 지배하는 (주)영풍의 고려아연 지분 가치는 4조 원에 달한다. 최씨 측에서 장씨 측에 영구적인 지배력 포기를 요구하려면 시가 4조 원 이상의 뭔가를 반대급부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상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기업분할이다. 고려아연은 온산제련소 한 곳에서 대부분의 매출이 발생한다. 사업 부문을 쪼개기 어렵다. 9월 말 고려아연의 유동자산은 6조 원이 넘지만 유동부채는 2조 5000억 원에 불과하다. 올해도 대규모 흑자로 9월까지 5000억 원 이상 현금성자산이 증가했다. 자산을 쪼개 (주)영풍에 4조 원 정도를 내어줄 여력은 존재한다. 장씨 측도 직접 지배하는 사업은 제련보다 전자부품 쪽 비중이 높다. 미래 성장을 위해 투자자금이 필요할 수 있다.
양측 간 지분 경쟁이 진행 중인지 여부는 내년 초 주주총회를 통해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사내이사 4명 가운데 최윤범 부회장을 제외한 3명(최창근 회장, 노진수 사장, 백순흠 부사장)의 임기가 내년 3월 만기다. 회장은 이사회, 사장은 주총 소집 권한을 갖는다. 이사회 과반 이상을 차지하는 6명의 사외이사 가운데 절반의 임기가 끝난다. 최씨 중심의 이사회에 변화가 시도된다면 장씨 측과 갈등이 확인되는 셈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양측이 일단 타협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최씨가 장씨를 넘어 고려아연 최대주주에 오르더라도 지배구조 개편이 끝난 것은 아니다. 최기호 창업회장 이후 2세들은 그동안 형제경영을 해왔다. 맏아들인 최창걸 명예회장 이후 최창영 명예회장을 거쳐 현재 최창근 회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최창근 회장의 동생인 최창규 회장은 영풍정밀 회장으로 고려아연에서는 한걸음 떨어져 있다. 순서를 따지면 최창걸 명예회장의 차남인 최윤범 부회장 다음은 최창영 명예회장 아들 가운데, 그 다음은 최창근 회장 직계에서 고려아연 대표이사가 나와야 한다.
최창영 명예회장의 아들 최내현 씨는 합금관련 계열사 알란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최창근 회장의 아들 최민석 상무와 최창규 회장 아들 최주원 상무도 현재 고려아연 경영에 참여 중이다. 직계별 지분은 최창걸 2.5%, 최창영 3.8%, 최창근 1.6%, 최창규 2.07%다. 2세 막내인 최정운 전 서울대 교수 직계도 2.07%를 보유하고 있다. 가족 간 분란이 발생한다면 장씨 측과의 경쟁에서 새로운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주)영풍은 장형진 회장의 두 아들 장세준 코리아서키트 대표와 장세환 서린상사 대표가 각각 16.9%와 11.2%를 보유한 1·2대 주주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