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임팩트 출자에 최씨 일가 백기사 역할론 솔솔…“사업적 협력 강화 위한 목적일 뿐” 설명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9일 한화임팩트의 미국 계열사 ‘Hanwha H2 Energy USA Corp.(한화H2)’가 고려아연이 제3자 배정방식으로 발행한 신주 99만 3158주를 주당 47만 5000원에 매입했다. 총 4717억 원 규모로 이를 통해 한화H2는 고려아연 지분 5%를 확보했다.
고려아연이 한화H2에 지분을 대거 넘긴 목적은 파트너십 강화다. 고려아연과 한화임팩트는 향후 수소·신재생에너지 등 신사업 진출에 서로 힘을 실어주기로 했다. 한화H2는 고려아연의 호주 신재생 발전 프로젝트에 합류하고, 고려아연은 한화의 가스터빈 개조 및 수소발전사업 부문에서 협력할 계획이다.
한화 계열사가 고려아연 지분을 매입한 배경을 다른 측면에서 보는 시각도 있다. 최씨 일가가 운영하는 고려아연의 계열분리를 위한 정지작업 아니냐는 것이다. 고려아연이 속한 영풍그룹은 1949년 고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공동경영해 온 이래 장씨 일가와 최씨 일가가 73년간 공동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주로 전자부문은 장씨 일가가 경영을 하고, 고려아연이 속한 비전자부문은 최씨 일가가 경영한다. 현재 영풍그룹은 장형진 회장을 비롯한 장씨 일가가 이끌고 있고, 핵심 계열사 고려아연은 최창근 회장 등 최씨 일가가 경영하고 있다.
최씨 일가가 최윤범 부회장으로 3세 승계로 접어든 이후 두 집안의 계열분리 가능성이 자주 언급된다. 최씨 일가가 영풍이 가지고 있는 고려아연 지분 518만 6797주를 매입하면 계열분리 수순을 밟지만 비용이 만만찮다. 지난 24일 종가 기준으로 단순 계산해도 3조 원가량이 필요하다.
이런 배경 때문에 한화H2의 고려아연 출자 소식이 전해지자 최씨 일가가 한화를 백기사로 등장시켜 계열분리 작업을 진행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제기됐다. 특히 한화H2의 출자를 공시하는 과정에서 한화H2 모회사 한화임팩트가 지난해 고려아연 지분 1.88%를 매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꽤 오래전부터 고려아연과 한화그룹 간 교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번 한화H2의 고려아연 신주 인수 역시 고려아연의 최윤범 부회장과 한화그룹 3세 경영인 김동관 사장의 교감이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한화가 고려아연 지분을 매입하면서 고려아연에서 장씨 일가의 지배력이 약화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일요신문i 분석 결과 고려아연의 장씨 일가의 우호 지분 역할을 할 수 있는 지분은 지난 6월 말 신주 발행 전 기준 영풍 27.49%, 장형진 회장 3.83% 등 약 32.99% 수준이다. 최씨 일가의 우호 세력으로 파악되는 지분은 약 15.54%다. 둘 사이에는 대략 17.45%의 격차가 존재했다.
이번에 한화H2가 고려아연 지분을 매입하면서 장씨 일가와 최씨 일가 모두 지배력이 낮아졌는데, 지분율이 높은 장씨 일가의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큰 폭으로 하락했다. 여기에 최씨 일가가 지분을 추가 매입하면서 둘 간 격차는 더 좁혀졌다. 지난 19일 기준 장씨 일가 우호 지분은 31.34%, 최씨 일가 지분은 14.79%로 파악된다. 양 집안 사이의 격차가 16.55%포인트로 감소한 것.
만약 한화임팩트와 한화H2 지분 6.88%가 최씨 일가의 백기사 역할을 하면 양쪽 일가의 격차가 약 9.67%로 좁혀지는데, 이 경우 8.27% 지분을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과 30% 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소액주주 결정에 따라 최씨 일가가 경영권을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다만 최씨 일가 입장에서는 고려아연의 최대주주인 영풍에 대한 장악력이 공고한 장씨 일가와 직접적인 경영권 다툼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영풍에서 장씨 일가의 우호 지분은 50%가 넘는다.
장씨 일가로선 한화임팩트와 한화H2의 지분 참여가 불편할 수 있다. 개인주주 가운데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장형진 회장은 고려아연의 기타비상무이사지만 고려아연이 한화H2에 신주를 배정하기 위한 이사회에 불참하면서 고려아연의 최근 행보에 불만을 나타낸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한화임팩트 관계자는 고려아연 투자에 대해 “회사의 경영적인 판단 아래 이뤄진 투자다. 지난해에는 원자재 투자를 고민하다가 결정한 재무적 투자였지만 이번 한화H2의 고려아연 지분 취득은 사업적인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면서 “지배주주 일가의 협력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영풍 측은 계열분리 가능성에 대한 질의에 “아직까지 별다른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일요신문i는 고려아연과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