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속계약 해지 분쟁 따른 ‘괘씸죄’ 적용 정황…팬·스태프·광고주 츄 옹호, 멤버들도 ‘탈 블록베리’
11월 25일 블록베리는 공식입장을 내고 “금일부로 츄를 이달의 소녀 멤버에서 제명하고 퇴출하기로 결의했다”며 “최근 당사 스태프들을 향한 츄의 폭언 등 갑질 관련 제보가 있어 조사한바 사실이 소명돼 회사 대표자가 스태프들에게 사과하고 위로하는 중이며, 이에 당사가 책임을 지고 이달의 소녀에서 츄를 퇴출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개인적인 문제나 사회적 물의를 빚은 아이돌 멤버의 계약해지 공지를 띄울 때조차 구체적인 내용을 적시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소속사의 태도였던 만큼, 소속사가 콕 집어 ‘스태프에 대한 갑질’이라며 퇴출 멤버에 대한 비난의 장을 열어 놓자 업계인들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소속사 태도가 이례적인 것도 있었지만 더 큰 문제는 이 공식입장에 그다지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츄와 블록베리는 계약 문제로 갈등을 빚어 왔다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츄는 2021년 12월 소속사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 2022년 3월 일부 청구 내용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법적 분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소속사가 츄에게 보복을 가했다는 게 팬들의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이달의 소녀 팬은 “가처분 신청 뉴스 보도가 나온 뒤 츄가 개인 스케줄에서 매니저도 없이 혼자 짐을 챙겨 오고,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는 걸 목격한 팬들이 꽤 있다. 왜 소속 연예인을 케어해 주지 않느냐고 소속사에 항의해도 답이 없었다”라며 “아무리 계약 문제가 불거졌어도 기한이 유지되는 동안은 소속 연예인인데도 회사 내에서 명확한 설명도 없이 처우를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그래 놓고 더 당해 보라는 듯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강제로 퇴출시킨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분쟁 기간인 2022년 2월 블록베리는 콘서트 ‘루나버스: 프롬(LOONAVERSE: FROM)에 츄를 불참시켰고, 6월에는 첫 월드 투어 콘서트에도 불참한다고 밝혀 팬들을 당황하게 한 바 있다.
츄와 함께 일한 방송 관계자와 그를 홍보 모델로 쓴 업체에서도 츄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연달아 나오면서 소속사의 입장을 군색하게 했다. 츄의 웹예능 유튜브 채널 ‘지구를지켜츄’의 작가는 “갑질이라니 진짜 웃긴다. 지우(츄의 본명)는 자기도 힘든데 다른 스태프가 돈 못 받을까 봐 걱정해준 애”라며 “(소속사가) 애 제대로 케어 안 해준 거 우리가 전부 안다. 그래봤자 지우는 잘될 거다. 워낙 사람들한테 잘해서”라고 일침을 놨다.
츄가 광고 모델을 맡았던 집중력연구소 측 역시 “츄님의 안타까운 기사 소식을 접해 마음이 아프다. 하루 빨리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며 힘을 보탰다. 이외에도 츄와 함께 일했다고 밝힌 방송 스태프들도 “절대 갑질이나 폭언을 할 사람이 아니”라며 소속사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상황이 자신들에게 부정적으로 돌아가자 11월 28일 블록베리는 재차 공식입장을 내고 “앞선 공지문은 팬들께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내용의 공지문이었으며, 대중과 언론에 츄의 갑질을 폭로하는 내용을 목적으로 한 글이 아니”라며 발을 빼는 모습을 보였다. 소속사 측은 “퇴출 사유를 기재하는 것은 당연한 설명 과정이나, 이에 대한 사실관계 및 증거를 제공해야 하는 것은 츄 본인이나 피해를 입으신 스태프 분의 권리다. 이에 대해 억울한 일이 있거나 바로 잡고 싶은 것이 있다면 당사자 분들이 직접 밝혀야 할 문제”라며 츄에게 ‘결백의 증거’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블록베리 측의 대응은 업계 관계자들의 고개도 갸웃하게 만들었다. 한 연예기획사 홍보 담당자는 “대중들에게 먼저 문제가 알려진 경우에도 탈퇴 공지문을 쓸 때 단어를 신중하게 골라야 하는데,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내부 문제를 갖다가 대놓고 ‘갑질’ ‘폭언’이라고 지칭한 것은 사실상 ‘연예계에 이 연예인이 다시는 발 들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선포”라고 짚었다. 실제로 소속사에 큰 손해를 끼쳤거나 사회적 물의를 빚은 연예인과 계약 해지를 할 때도 공식 입장문에서는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츄의 평판을 깎아내리기 위해 고의로 이런 초보적인 행태를 보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블록베리와 그 직원들이 소속 연예인에게 ‘갑질’과 ‘폭언’을 들을 지위에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혹이 일었다. 먼저 블록베리의 경우 최근 1~2년 사이 자금난을 이유로 이달의 소녀 활동에 참여한 안무가, 메이크업‧헤어 아티스트 등에게 수개월 이상 비용을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연달아 폭로된 바 있다. 이를 항의하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거나 해고를 통보했다는 호소도 이어졌다. 피해를 주장한 협력업체 관계자들은 “적게는 수개월, 많게는 1년 이상 지급이 미뤄졌지만 열심히 활동하는 멤버들과 이번만 믿고 도와 달라는 대표님 말을 믿고 기다렸다. 그랬는데 돌아온 것은 피해 사실 공개에 대한 명예훼손 협박”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멤버들에 대한 정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2021~2022년 가장 많은 광고를 찍은 츄 역시 2021년 수입이 전혀 없었다고 밝혔고 다른 멤버들 역시 정산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언급을 하기도 했다. 계약에 묶여있는 상태로 정산도 받지 못하고 있는 멤버가 과연 소속사와 직원에 대해 갑질과 폭언을 가할 수 있는지를 두고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계약 해지 본안 재판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높은 블록베리가 츄에 대한 ‘괘씸죄’로 사적 복수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통상적으로 연예인의 전속계약 해지 청구가 가처분에서 받아들여질 경우 본안 재판에서도 같은 판결이 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일본 투자사로부터 35억 원 투자금 반환 소송에서 패소한 블록베리가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가장 대중 인지도가 높은 츄의 활동을 통해 반등을 노렸는데, 계약 해지로 인해 그 희망이 사라지면서 이 같은 ‘언론 플레이’에 나선 게 아니냐는 것이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이달의 소녀는 데뷔 전부터 12명의 멤버들 개인 프로모션과 솔로곡 발매, 해외 로케이션 촬영까지 연달아 이어지면서 상당한 비용을 소모했다.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만 꽤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츄가 인지도를 충분히 쌓았고 코로나19도 잦아들어 국내에선 츄의 개인 스케줄, 해외에서는 투어 행사로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에서 불거진 계약 분쟁이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못 가진다면 남들도 못 가져야 한다는 마음으로 감정적인 퇴출 공지를 낸 게 아닌가 우려된다”고 짚었다.
한편, 츄의 퇴출 이후 블록베리가 현진과 비비를 제외한 남은 멤버 9인(희진, 진솔, 최리, 하슬, 이브, 여진, 고원, 올리비아 혜, 김립)의 전속계약 해지 가처분 신청에 맞닥뜨렸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이에 대해 블록베리 측은 “확인 결과 사실무근”이라는 반박 입장을 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