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입단 뒤 140km대 구속이 160km대로…연봉 2800만 원 육성선수서 200억 원 빅리거 변신
기적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찾아왔다. 야구에 조예가 깊던 나고야의 한 스포츠용품점 사장이 지역 유망주 센가를 눈여겨보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 사장은 평소 친분이 있던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오가와 가즈오 스카우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대로 묻히기엔 아까운 투수가 한 명 있다"고 귀띔했다.
때마침 소프트뱅크는 3군을 만들기 위해 육성 선수를 대거 영입하려던 참이었다. 오가와 스카우트는 동료 스카우트가 보내온 영상을 통해 센가의 투구 장면을 확인했다. "소질이 있어 보인다"고 구단에 보고했다. 센가는 그렇게 소프트뱅크의 4순위 육성 선수로 뽑혀 가까스로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정식 지명을 받지 못했으니, 계약금은 없었다. 2011년 센가가 받은 돈은 훈련 지원금 270만 엔(약 2500만 원)과 연봉 300만 엔(약 2800만 원)이 전부였다. 한 달 월급 22만 5000엔(약 215만 원)을 받으면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입단 초기에는 고교 시절의 부상 여파로 공도 거의 던지지 못했다. 그런데 이 시기가 결국은 전화위복이 됐다. 몸을 재정비하고 근력을 강화하면서 구속이 시속 150㎞를 넘기 시작했다. 알을 깨고 나온 센가는 빠른 속도로 자신의 가치를 높여갔다. 2012시즌이 개막하자마자 2군에서 맹활약해 4월 23일 정식 선수로 전환했다. 단 2경기였지만, 1군 마운드도 밟았다.
진짜 변곡점은 2013년 찾아왔다. 처음으로 개막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불펜으로 51경기에 나서 1세이브 17홀드 평균자책점 2.40을 기록했다. 연봉은 어느새 300만 엔(약 3억 1000만 원)이 됐다. 입단 6년째인 2016년엔 마침내 풀타임 선발 투수로 자리 잡았다. 25경기에 선발 등판해 12승(평균자책점 2.61)을 올렸다. NPB 역대 육성 선수 출신 투수 최다승 기록이었다. 센가가 2017년에도 13승을 따내자 그의 연봉은 다시 1억 2500만 엔(약 11억 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그사이 센가의 구속도 연봉 그래프만큼이나 가파르게 치솟았다. 고교 시절엔 구속이 시속 140㎞대 초중반에 머물렀는데, 어느덧 최고 최고 시속 160㎞를 넘기는 '광속구' 투수로 거듭났다. 낙차가 워낙 커 '유령 포크'라고 불리는 포크볼도 든든한 무기로 장착했다. 센가는 점점 NPB를 넘어 메이저리그(MLB)를 넘보기 시작했다.
문제는 구단의 반대였다. 소프트뱅크는 소속 선수의 MLB 진출을 허가하지 않는 구단으로 유명하다. 팀의 핵심 전력인 센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2017년부터 거듭된 센가의 MLB 포스팅 요청을 매번 거절했다. 센가가 MLB에 도전하려면, 해외 자유계약선수(FA·9년) 자격을 채울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센가는 2021시즌을 마치고 먼저 국내 FA(8년)가 됐다. 원소속팀 소프트뱅크와 5년 계약을 하면서 '1년 뒤 해외 FA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안전장치를 포함했다. 올 시즌 22경기에서 11승 6패, 평균자책점 1.94로 에이스 역할을 해낸 뒤 당당하게 MLB의 문을 두드렸다. MLB 5개 구단이 센가에게 손을 내밀어 그 노크에 화답했다.
결국 센가를 낚아챈 팀은 올겨울의 '큰 손' 메츠였다. MLB닷컴은 지난 12일(한국시간) "센가가 5년 총액 7500만 달러(약 978억 원)에 메츠와 계약했다"고 전했다. 이 계약에는 2025시즌 이후 FA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옵트아웃 조항과 전 구단 트레이드 거부권이 포함됐다. 11년 전 월급 215만 원을 받던 육성 선수가 이제 세계 최고의 마운드에서 매년 200억 원 가까운 돈을 벌어들이는 '인생 역전'의 아이콘으로 거듭난 거다. NPB에서 온 많은 선수가 MLB 무대를 거쳐 갔지만, 육성 선수 출신은 센가가 처음이다.
센가는 MLB 진출과 동시에 엄청난 행운도 잡았다. 특급 베테랑 투수 저스틴 벌랜더(39)와 맥스 슈어저(38)가 센가와 함께 메츠의 선발 로테이션을 이룬다. '살아있는 전설'의 투구와 노하우를 바로 옆에서 지켜 보고 흡수할 기회다. 한 스포츠용품점 주인의 혜안에서 시작된 무명 유망주의 드라마가 더 극적인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고 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