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보 증거들 ‘전언’ 불과해 김 씨 진술 필요…수사 협조 시 불구속 유지, 불응 시 재구속 가능성
이는 지금까지 검찰이 확보한 김만배 씨 관련 증거들 중 상당수가 ‘전언 진술(제3자가 피고인의 말을 들었다고 한 진술)’이기 때문이다. 화천대유를 비롯, 천화동인 1호 등 검찰이 쫓고 있는 자금 관리는 김 씨의 몫이었기에, 검찰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김 씨 수사를 탄탄하게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김 씨 극단 선택에도 수사는 ‘ing’
김만배 씨의 극단적 선택 시도가 있었지만, 검찰은 김 씨 관련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대장동 개발 수익 260억 원 은닉을 도운 혐의로 구속된 김 씨 측근들을 이틀째 조사하며 은닉 자금의 소재지를 추적 중이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부장검사 엄희준)는 12월 19일에도 최우향 전 쌍방울그룹 부회장(화천대유 이사)과 이한성 공동대표를 구치소에서 불러 조사했다. 17일 구속된 이들은 18일에도 새벽까지 고강도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만배 씨의 260억 원 자금 흐름을 쫓기 위함이다. 최 씨와 이 씨는 2021년 10월부터 2022년 7월까지 김 씨 지시에 따라 대장동 사업 관련 범죄수익을 수표로 인출해 보관하거나, 허위 회계처리를 통해 차명으로 부동산을 매수하는 등의 방법으로 260억 원을 은닉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김 씨가 수사기관으로부터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화천대유로부터 2021년 10월 배당금 423억 원을 받은 직후 200억 원이 넘는 돈이 모처로 송금됐는데 검찰은 260억 원 가운데 이 돈도 포함된 것으로 보고 있다.
돈으로 김 씨를 압박하려는 목적도 있다. 검찰은 대장동 사건 자체에서 발생한 수익을 ‘범죄수익’으로 보기 때문에, 이를 찾아내면 압수조치를 하고 있다. 검찰은 260억 원 가운데 발견한 상당액은 압수 조치했고, 압수가 어려운 부분에 대해선 추징 보전 등의 절차를 밟는다는 계획이다. 특히 검찰이 주목하고 있는 천화동인1호에서는 김 씨가 대여금 명목으로 빌린 돈이 수백억 원가량 되는데, 검찰은 이 돈이 ‘세탁’을 거쳐 정치권 등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도 주목하고 있다.
#보름 동안 김 씨 심경 변화 있을까
김 씨 측은 혐의를 부인중이다. 대장동 사건으로 기소되면서 성남도시개발공사가 화천대유 법인 계좌를 가압류하겠다고 통보했고, 때문에 불가피하게 회사 운영자금을 수표로 뽑아 놓은 것이라는 주장이다. 재산을 은닉하려 한 게 아니라는 의미다.
김 씨의 재구속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구속기간 만료를 앞두고 검찰은 김 씨의 구속 연장을 신청했는데 이에 대장동 사건 재판부는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적극적으로 소명됐다고 보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면서도 “향후 새로운 사정이 발생할 경우 구속영장 발부를 적극 고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것은 재판부가 말하는 ‘새로운 사정’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 등 여러 가지 구속 사유가 있지만 사건 관련 인물이 심약한 상태가 돼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한다는 점은 무조건 신병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며 “거꾸로 신병을 확보하지 않아 극단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면 검찰의 수사는 사람을 살리는 수사가 아니라, ‘죽이는 수사’가 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물론, 영장을 청구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이 별건으로 구속되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수사에 협조하기로 김 씨가 대응 전략을 바꿀 경우, 김 씨의 불구속 상황을 유지해 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김 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며칠 전부터 주변에 “검찰이 원하는 진술을 만들어서 하든지, 내가 사라지든지 해야겠다”는 취지로 얘기하며 ‘심경의 변화 가능성’을 내비쳤다고 한다.
앞으로 보름여 동안 이뤄질 260억 원의 수사가 중요한 지점이다. 검찰은 신병을 확보한 최 씨와 이 씨에 대해 법적으로 허락된 20일을 모두 활용해 수사한 뒤 김 씨에 대한 여죄 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필요하면 구속영장을 검토할 계획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도 밝히고 있다.
김 씨는 현재 병원에서 머무르고 있는데, 약간의 자상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다만, 검찰 입장에서도 곧바로 김 씨를 소환해 조사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때문에 최대한 시간을 가지고 최 씨와 이 씨를 조사하며, 동시에 ‘김 씨의 진술 협조를 유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유동규, 남욱 얘기는 ‘증거 효력 없나’
이런 검찰의 행보는 김만배 씨의 진술이 가진 ‘파급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남욱 변호사, 유동규 전 본부장 등은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의 지분이 있다는 취지로 진술했지만 천화동인 1호, 화천대유 등의 의사 결정은 김만배 씨가 주도했기 때문에 김 씨의 얘기를 ‘들었다’는 남 변호사, 유 전 본부장의 진술은 ‘전언’에 불과하다.
문제는 법원이 ‘전언, 전문 진술’은 증거능력으로 쉽게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법원은 원칙적으로 경험사실을 들은 제3자가 한 검찰에서 한 진술서, 법원에서 진술한 전문 진술 등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직접 재판에 증인으로 불러 신문한 뒤 이를 증거로 채택할 수도 있지만 핵심 당사자인 김만배 씨가 “과장되게 얘기했다”라든지 “거짓말로 한 것”이라고 진술하면 검찰은 ‘다른 증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남 변호사가 증인으로 출석해 “천화동인 1호에 이재명 측(정진상·김용·유동규) 지분이 있다고 김만배 씨에게 들었다”고 진술한 것을 검찰이 입증하려면 김 씨의 수사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 씨 측은 현재까지 남 변호사의 증언에 대해 “불명확한 기억에 의존한다”며 신빙성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김 씨가 아니라고 하는데, 검찰이 진술만 들이밀면 검찰 말을 믿어줄 판사는 없을 것”이라며 “검찰도 김 씨의 반박을 뒤집기 위해 추가적인 수사를 진행해 돈의 흐름을 쫓는 것 아니겠냐”고 내다봤다.
검찰은 올해 안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무리해서 소환하는 대신, 대장동 관련 의혹을 모두 확인하는 방식으로 ‘꼼꼼한 수사’를 선택한 셈이다.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는 “수사가 다소 장기화된다고 해도 오히려 시간은 검찰 편”이라며 “수사를 무리하게 빨리 하기보다 확실하게, 모두 확인해서 꼼꼼하게 가자는 분위기”라고 풀이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