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에스·샌드스마일 이어 에스팜도 대상…SPC “향후에도 주력 무관한 사업 과감히 정리”
SPC그룹은 지난 3월 계열사 비엔에스를 청산했다. 비엔에스는 위생용품 제조 업체로 2007년 물 없이 사용하는 손 소독용 클렌저 ‘세니아 세정제’를 출시했다. 비엔에스는 2009년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에 세정제를 납품하면서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마침 당시 신종플루가 유행하면서 세정제에 대한 수요도 높아졌다.
신종플루 유행이 끝난 후에는 세정제 수요가 예전 같지 않았다. 이후로도 메르스 등 일부 전염병이 유행하기는 했지만 경쟁 제품이 하나둘 등장하면서 비엔에스의 시장 점유율도 하락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엔에스는 2013년 438억 원의 매출을 거두면서 SPC그룹 실적에 기여했다. 그렇지만 이후 실적이 하락하면서 2020년 매출은 18억 원에 불과했다. 결국 SPC그룹은 비엔에스를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SPC그룹의 전반적인 비전이나 사업방향과 결이 다르다는 이유에서였다.
SPC그룹은 이어 지난 9월 다른 계열사 샌드스마일까지 청산한 것으로 확인됐다. 샌드스마일은 SPC그룹이 2009년 설립한 샌드위치 제조 기업이다. 샌드스마일의 제품은 주로 파리크라상(파리바게뜨 운영 법인)을 통해 판매된 것으로 파악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샌드스마일의 2013년 매출 47억 원은 모두 파리크라상과의 내부거래로 벌어들인 것이었다.
샌드스마일은 2014년부터 사실상 영업을 중단했다. SPC그룹의 샌드위치 관련 사업은 다른 계열사 샌드팜이 맡고 있다. 샌드팜은 지난해 300억 원가량의 매출을 거두는 등 나름대로 시장에서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SPC그룹은 2008년 샌드팜을 설립했는데 이듬해 비슷한 사업을 영위하는 샌드스마일을 설립했다.
이와 관련, SPC그룹 관계자는 “과거 SPC삼립과 샤니가 동종업계로 독립적인 법인으로서 사업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샌드팜과 샌드스마일이 설립됐다”며 “SPC삼립이 2011년 샤니와 영업 양수를 진행했고, 두 회사 사이에 겹치는 거래처와 영업조직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중복되는 사업은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샌드스마일은 설립 당시 SPC삼립 자회사였고, 샌드팜은 샤니의 자회사였다. SPC삼립은 2011년 샤니의 제조업을 제외한 판매업 및 그와 관련된 제품개발부문을 포함한 영업권을 양수한 바 있다.
SPC그룹 계열사 에스팜도 청산 대상 기업으로 거론된다. SPC그룹은 2012년 서울대학교, 평창군이 공동 출자한 에스팜을 설립했다고 밝혔다. 공동 출자했다고는 하지만 파리크라상이 에스팜 지분 90%를 갖고 있으므로 SPC그룹 계열사로 분류된다. 서울대학교가 품종 개량 및 관리 등 연구개발을 담당하고, 평창군은 생산 납품과 산지 관리를 맡는다. SPC그룹은 농산물의 구매와 선별, 보관, 포장 등 유통 전반을 책임지는 구조였다.
SPC그룹은 에스팜 출범 당시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자평했다. 향후 경쟁력 있는 농산물의 해외 수출을 추진할 것이라는 청사진도 내놨다. 하지만 에스팜은 SPC그룹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을 거뒀다. 에스팜의 연매출이 10억 원이 넘은 적이 없었고, 최근 들어서는 아예 매출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SPC그룹은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에 대해 지원이 아닌 정리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SPC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SPC삼립이나 파리크라상 등에 집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SPC그룹도 에스팜에 대한 직접적인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주력 계열사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의지는 숨기지 않았다. 앞서의 SPC그룹 관계자는 “향후에도 경영 효율화를 위해 상대적으로 주력 사업과 무관한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고 본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불매운동 그 후…파리크라상은 울상, SPC삼립은 선방
SPC그룹은 올해 들어 유례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 10월 15일, SPC그룹 계열사인 SPL 공장에서 한 직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8일 후인 10월 23일에는 샤니의 제빵 공장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했다. 경찰은 강동석 SPL 대표이사 등 공장 관리자 3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안전사고가 연이어 발생하자 SPC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됐다. SPC그룹 노동자 처우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사고 대처가 미흡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SPC그룹을 둘러싼 악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지난 12월 16일 배임 등의 혐의로 허영인 SPC그룹 회장, 황재복 파리크라상 대표 등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허 회장은 2012년 파리크라상과 샤니가 보유한 밀다원 주식을 SPC삼립에 저가로 양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허 회장이 2012년 신설된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를 피하기 위해 밀다원 주식을 넘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파리크라상과 샤니에 각각 121억 원, 샤니에 58억 원의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SPC그룹 측은 “샤니의 밀다원 주식 양도는 외부 회계법인을 통해 적법한 절차와 기준에 따라 적정 가치를 산정해 진행한 것”이라며 “재판에서 적극 소명해 오해를 바로잡겠다”고 해명했다.
SPC그룹 불매운동에 따른 충격은 계열사에 따라 크기가 다를 것으로 보인다. 파리크라상의 경우 파리바게뜨 가맹점주들이 호소문을 낼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 파리바게뜨 가맹점주협의회에 따르면 불매운동 이후 파리바게뜨 매장의 매출이 20%가량 줄었다. 반면 SPC삼립은 ‘포켓몬빵’의 인기 덕에 큰 실적 하락은 겪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SPC삼립이 포켓몬빵의 라인업을 확대해 실적이 오히려 상승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태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SPC그룹 계열사 사고에 따른 불매운동으로 파리바게뜨는 매출 타격이 상당한 반면 SPC삼립의 판매 실적에는 크게 영향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올해 실적 성장을 견인했던 포켓몬빵의 띠부씰이 기존 260여 종에서 내년 900여 종으로 대폭 확대되고, 포켓몬, 쿠키런, 노티드 등 캐릭터 빵류 판매 비중 확대 기조가 이어질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SPC삼립이 좋은 실적을 거두면 파리크라상의 실적 하락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 다만 포켓몬빵의 인기가 언제까지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SPC그룹으로서는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SPC그룹은 지난 11월 안전경영위원회를 출범시킨 후 외부기관으로부터 안전진단을 받는 등 나름대로 수습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SPC를 비판하는 게시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허영인 회장의 재판도 변수로 꼽힌다. 현재 불구속 기소된 허 회장의 재판 결과에 따라 그룹 경영이나 의사결정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허 회장의 아들인 허진수 파리크라상 사장과 허희수 SPC그룹 부사장이 그룹 경영 전반에 등장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