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많지도 않고 잘하는 것도 아닌데, 자기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안중근 의사와 혈연관계도 설명될 수 있는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안중근 의사를 향한 그의 사랑과 존경은 존중할 만한 것이라고 느꼈었다. 언제나 알 수 없는 일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요즘은 여러 모로 100년여 전에 세상을 떠난 안중근 의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김훈의 ‘하얼빈’, 그리고 뮤지컬 영화 ‘영웅’까지. 국가를 위해 자기를 바친다는 관념이 퇴색한 시대, 우리는 ‘안중근’에서 무엇을 보는가.
원래 안중근 선생은 이토 히로부미를 싫어하지 않았다. 이토의 동양평화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일본이 보여준 작태는 ‘동양평화론’이 가짜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토의 동양평화론은 동양의 모든 나라의 자주적 국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동양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방편이고, 동양의 모든 나라를 가스라이팅하는 방편이었던 것이다.
안중근 선생의 공분은 당연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겉으로는 ‘동양평화론’을 내걸면서 실상은 이웃인 우리나라, 우리 백성을 통제하고 탄압하고 학대하고 착취하는 일본의 행태를 어찌 두고 보기만 할 것인가. 그가 분연히 일어나 일본제국주의 상징 이토의 심장에 총을 겨눈 이유다.
“이토, 당신의 헛된 꿈은 이제 끝났소.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내 꿈도 이제 끝이요.”
영화 '영웅'에서 안중근의 마음에 빙의되어 정성화가 부른 노래다. 내 마음에는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내 꿈도 이제 끝이요”라는 대사가 오래 남는다. 아내와 자식이 기다리고 있는 곳, 차마 먼저 떠나는 것이 죄스러울 뿐인 늙은 어미가 지키고 있는 곳, 말이 없이도 서로를 이해하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웃을 수 있는 곳, 그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것은 그에게 소중했던 그 사람들도 이제 일본의 하늘 밑에서는 자유롭게 살아갈 수도 없다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은 그가 총탄 한 알 한 알마다 십자가를 새겨 넣을 때부터 모를 수 없었던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그 일에 생을 모두 바친 것이다. 생을 바쳐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 결연한 만큼 빛나지 않을 수 없다.
안중근의 마지막 모습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수의를 입은 그의 사진이다.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뤼순 감옥에 있는 아들에게 편지를 써서 동생 편에 수의와 함께 보낸 것이다. 생을 바쳐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아들을 끝까지 지지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피에타의 마리아를 닮았다. 어머니의 이름이 마리아인 것까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네가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조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한국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한 것이다. 딴 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생의 마지막에 어머니 마리아가 보낸 수의를 곱게 차려입고 감정의 동요 없이 사진을 찍은 아들의 사진은 어머니의 편지에 대한 답장 같다. 어머니보다 먼저 떠나는 이 아들, 잘 보내줘 고맙다고, 나의 최선을 응원해줘서 고맙다고, 무언으로 전하는 이심전심.
그런 사람이 있었다. 우리 모두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게 하기 위해 생을 바쳐 저항한. 그는 마리아의 아들이었다. 생을 바쳐 하고자 했던 일을 지지해주는 어머니 마리아의 아들이었다. 거기 피에타가 있다. 아들의 주검을 안고도 중심을 잃지 않는. 안중근은 테러리스트가 아니었다. 그는 대한민국 독립군 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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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