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장제원 연대 기선제압은 했지만 의구심 고개…원조 윤핵관 권성동 광폭행보, 인지도 높은 나경원도 주목
#윤심 신호등은 깜깜이
‘윤심’은 실체가 없다고 하지만 최근 국민의힘 상황을 보면 그렇지 않다. 용산 대통령실이 당무 개입을 하지 않더라도 당심과 윤심이 이심전심 수준으로 동조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쏟아져 나온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원투표 100%’ ‘결선 투표제’가 당 안팎 비판을 뚫고 속전속결로 도입된 것이 단적인 예다. 경기 시작을 앞두고 골대를 옮겼다는 격렬한 비난 속에서도 경선 규칙 개정이라는 전격 처방을 내린 것은 윤심을 강하게 의식한 결과라는 게 당 내부의 일반적 시각이다.
윤 대통령이 당선됐던 지난 대선의 기억을 꺼낸 국민의힘 한 당직자는 “대선 국면에서 이준석 당시 대표가 두 번씩이나 당무를 거부하며 가출 사태를 빚었는데 그때 윤석열 대선 후보의 마음은 아마 새카맣게 타들어갔을 것”이라며 “정당에 대한 책임성이 부족한 일반 여론조사를 반영한 당대표 선출은 선진 정당정치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당내에서 떠올랐고 이번 기회에 바꾼 것”이라고 했다.
당심으로만 당 지도부를 뽑는 데다 결선투표까지 도입, 당의 주류가 아니면 1위를 거머쥐기 힘든 제도가 완성됐다. 여당의 1호 당원이자 당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윤 대통령 힘은 압도적으로 커졌다. 윤 대통령이 목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이 당을 좌지우지하게 되는 수준까지 왔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당권주자 후보군을 보면 윤심이 도무지 발견되지 않는 모순된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후보가 난립한 데다 양대 윤핵관으로 불리며 ‘브라더 관계’임을 자임해온 권성동 장제원 의원이 연대는커녕 분열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12월 말 기준 차기 당권 후보군으로는 권성동 김기현 안철수 윤상현 조경태 의원, 나경원 유승민 전 의원, 황교안 전 대표 등이 있다.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 역력한 유 전 의원과 윤 대통령과의 친분이 별로 보이지 않는 황교안 전 대표를 빼면 모두가 ‘친윤 후보’라 할 수 있고 실제로 ‘친윤’임을 내세운다. 이처럼 친윤 후보가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정작 당원들이 콕 집어 친윤이라고 할 수 있는 후보는 찾기 힘들다.
윤심 신호등이 보이지 않자 후보들의 공식 출마선언도 극심한 눈치작전에 빠졌다. 당대표 출마를 위해 오래 준비해온 친윤 주자들이 김기현 의원을 제외하고는 공식 선언을 서두르지 못하면서 눈치 보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김장차 왔다는데 어디에 묻었나
친윤을 내세운 첫 출마 선언 테이프는 김기현 의원이 끊었다. 그는 출마선언을 하면서 이른바 ‘김장연대’를 공식화했다. 친윤 핵심이자 윤핵관인 장제원 의원과 연대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면서 자신이야말로 ‘진짜 친윤’임을 간판으로 내걸었다. 김 의원은 12월 27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김장은 이제 다 했다”고 밝혔다. 김장을 끝냈다는 의미로 장 의원과의 연대를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읽혔다.
김 의원은 한술 더 떠 더 큰 연대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김 의원은 이날 “김치만 갖고 밥상이 풍성하다고 하지 않지 않나. 된장찌개도 끓여야 하고, 맛있는 공깃밥도 차려야 한다”며 “당내 다양한 세력과 결합하겠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김 의원이 자신의 약점인 낮은 인지도를 극복, 윤심을 등에 업은 ‘친윤’ 세력 형성의 첫발 내딛기는 성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재원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은 12월 28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나가 김장연대에 대해 “김기현 의원은 이른바 친윤 의원 그룹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을 공식화한 것”이라며 “장제원 의원이 윤 대통령의 측근이다. 김 의원이 장 의원을 거쳐서 윤 대통령과 함께 갈 수 있는 확실한 사람이라는 인증을 해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그러면서 “이번 당대표는 대통령과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많다”고도 설명, 일단 김 의원이 윤심 잡기에서는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음을 시사했다.
김장연대 기세가 올라가는 가운데 김 의원이 12월 17일 윤석열 대통령과 부부 동반 만찬을 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지자 여권에선 윤심이 김 의원에게 기운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개신교 지도자들과의 소통 행사였는데 울산 대암교회 장로인 김 의원도 초청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장연대 파괴력을 의식한 듯 김 의원을 향한 공세가 쏟아지는 중이다. 친윤을 표방하고 있는 윤상현 의원은 12월 28일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김 의원은 울산을 떠나 서울 출마를 선언하라”고 직격했다.
김장연대에 대한 견제심리가 강하게 발동하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힘 의원들은 물론 상당수 당원들 사이에서는 김장연대에 대해 “아직은 실체를 모른다”는 의견도 제법 큰 소리로 나온다. 김장은 했다지만 그 결과물인 김장김치를 어느 김장독에 묻어놨는지, 실물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논리다.
직전 원내대표 경선에서 주호영 원내대표에게 비록 졌지만 윤심에 도전하는 파란을 일으키며 많은 표를 획득했던 이용호 의원도 김장연대 실체에 대한 의구심을 내놨다. 이 의원은 12월 27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에서 “김장을 담갔다고 하는데 당내에서 진짜 담갔는가(라는 반응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후보 입장에서 세몰이를 할 때는 그렇게 몰고 가는 게 맞지만 당내 분위기를 보면 아직은 조금 판단하기 성급한 것 같다. 붐이 아직 안 일어났다”며 둘이 확실히 손을 잡은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김장김치 말고 묵은지?
김장연대가 일단 선거 초반 기선제압 효과를 누리고 있지만 김장김치가 아닌 윤심이 푹 밴 묵은지도 주목받고 있다. 김장연대의 장제원 의원과 함께 원조 윤핵관으로 불려온 권성동 의원이다.
친윤계 맏형으로 불리는 권 의원은 12월 28일 강원 원주에서 열린 원주갑 당원협의회 당원연수에 참석, 당대표 경선 출마 의사를 분명히 했다. 권 의원은 이날 “차기 당대표는 누가 되어야 하느냐. 대통령과 소통이 가장 잘 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 모친 고향인 강릉을 지역구로 둔 권 의원은 윤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날도 적극적으로 내세웠다.
그는 “의원들이 주저할 때 제일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났고 우리 집에 모여 회의를 통해 캠프가 출범했다”면서 윤 대통령과 자신이 가장 가까운 사이임을 강조했다. 권 의원은 12월 29일 서울 여의도 중앙보훈회관에서 지난 대선 때 국민의힘 공식대선조직이었던 ‘국민캠프’ 실무자를 초청해 송년 인사도 나눴는데 이 자리는 사실상 권 의원의 전당대회 출정식으로 받아들여졌다.
권 의원은 1월 6일 공식 출마 선언을 하고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 선거캠프를 꾸리기로 했다. 전국을 돌면서 이미 많은 사람을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원내대표 당시 열성 당원이 가장 많은 대구·경북(TK) 출신 의원들을 원내대표단으로 다수 구성했던 권 의원은 TK지역 표밭을 집중적으로 다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TK에서 배신자 프레임이 강하게 잡혀있는 유승민 전 의원 이외에는 TK 당권주자가 없는 상황이라 이곳 표심을 잘 잡으면 윤심에다 고정 표심까지 획득,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계산으로 읽힌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모두가 친윤이라고 하지만 윤 대통령과의 정치적 거리는 권성동 장제원 의원이 가장 가깝다고 봐야 한다”며 “그런데 장 의원은 당권경쟁에 직접 뛰어들지 않은 채 코치로 뛰고 있는 형국이고 권 의원만 선수로 들어왔는데 이 상황을 놓고 본다면 경력이 오래된 당원들은 일단 권 의원을 친윤에 가장 가까운 후보로 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권 의원 역시 핸디캡이 있다. 인지도가 낮다는 약점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바른정당 출신으로서, 오래 활동해온 국민의힘 당원들에게는 거부감이 남아 있다.
권성동 의원처럼 ‘친윤 묵은지’는 아니지만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한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겸 기후대사도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범친윤을 내세우는 나 부위원장은 여러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고, 이번 전당대회 후보군의 대중 인지도가 낮다는 점이 그를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자리의 무게감이 나 부위원장 출마 행보를 붙잡고 있다. 비상근직이기는 하지만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사안을 다루는 위원회의 사실상 책임자(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장은 윤 대통령)여서 중도 사퇴하는 모양새는 임명권자에게는 물론, 국민여론에도 좋게 보일 리가 없다. 정가에선 윤 대통령이 나 부위원장 발탁 배경에 대해 전당대회 불출마 의중이 담긴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러저러한 굴레에도 불구, 여론조사에서 강세가 계속되고 ‘친윤’을 간판으로 내세우는 후보들의 약진이 이뤄지지 않는 형세가 나타난다면 나 부위원장이 중대 결심을 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나 부위원장은 수도권에서 통하는 정치인인 데다 2021년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서도 보여줬듯이 텃밭인 영남에서도 고정표가 다수 존재하는 것이 확인된 바 있기 때문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