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한 동거녀 집에 머물며 택시기사 살해 유기…집안 곳곳 혈흔들, 경찰 ‘추가 범행 여부’ 주목
여자친구가 이기영의 옷장에서 시신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하면서 시작된 이번 사건은 이기영이 기거 중인 아파트 소유주인 전 여자친구 실종으로 이어졌고 결국 전 여자친구에 대한 살인 및 사체유기로 확대됐다. 현재 경찰은 이기영의 추가 범행이 존재하는지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남친 집 옷장에서 발견된 시체
경기 일산동부경찰서에 60대 택시기사의 실종 신고가 접수된 것은 12월 25일 새벽 3시 30분 무렵이다. 택시기사 아들이 “아버지가 6일째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30분 전에 카카오톡으로 대화했는데 다른 사람이 답하는 것 같다”며 실종 신고를 했다.
그리고 8시간가량 지난 오전 11시 22분 무렵 또 다른 신고가 접수됐다. 112 신고를 통해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남자친구 아파트 옷장 안에 죽은 사람이 있다”는 내용이 접수된 것. 당시 신고 여성은 남자친구의 집을 방문했다가 고양이 사료가 떨어져 사료를 찾으며 집안을 뒤지게 됐는데 끈으로 묶여 있는 옷장 문을 열었다가 짐들 아래 있는 시신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으로 출동한 경찰은 아파트 옷장 안에 있는 시신을 확인했는데, 시신이 실종신고 된 60대 택시기사임을 알게 됐다. 당시 신고자의 남자친구인 이기영(32)은 손을 다쳐 경기도 고양시 소재의 한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고, 이 사실을 파악한 경찰은 낮 12시 무렵 병원에서 이기영을 긴급체포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이기영은 우발적인 살인을 주장했다. 사건은 12월 20일 밤 11시 무렵 경기도 고양시의 한 도로에서 시작됐다. 음주 상태로 운전 중이던 이기영은 택시와 접촉사고를 냈다.
이날 이기영은 여자친구와 함께 술을 마셨다. 술자리가 끝난 뒤 이기영이 음주운전을 하려 하자 여자친구가 말리다 다퉜는데 그 장면이 CCTV에 담겨 공개되기도 했다. 그렇게 말리던 여자친구와 다툰 뒤 음주운전을 해 골목길을 나서던 이기영의 SUV 차량은 택시와 접촉사고를 냈다. 뉴스1 단독 보도에 의하면 여자친구와의 술자리는 경기도 고양시 소재의 음식점에서 있었는데 이날은 여자친구의 부모와 만나 함께 식사를 하며 술을 곁들인 자리였다고 한다.
접촉사고가 나자 이기영은 음주운전을 신고하지 말아 달라며 수리비는 물론이고 합의금까지 많이 주겠다고 택시기사에게 제안한다. 다만 당장은 돈이 없으니 자신의 집에 함께 가면 주겠다고 해 두 사람은 파주 아파트로 이동한다.
경찰 조사에서 이기영은 자신의 아파트에 도착한 뒤 합의금을 두고 택시기사와 말다툼을 하다 ‘우발적으로’ 둔기로 살해했으며 이후 시신을 옷장에 숨겼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다.
#우발적 살인이라기엔 강렬한 계획살인의 향기
그렇지만 우발적 살인으로 보기에는 계획살인의 향기가 짙게 풍겼다. 우선 바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택시기사의 시신을 옷장 안에 은닉했다. 만약 여자친구가 이를 발견해 신고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사체를 어딘가에 유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경찰 수사는 택시기사 실종사건으로 계속돼 범인 검거가 쉽지 않았을 수 있다. 게다가 이기영은 숨진 택시기사의 휴대전화로 가족의 메시지에 응답하며 피해자 행세까지 했다.
실종사건 수사에서 핵심 증거가 됐을 고인의 택시는 이기영이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1km가량 떨어진 공터에서 발견됐다. 이기영이 택시를 그곳으로 가져가 버리고 택시 블랙박스 메모리카드 기록을 모두 삭제했다. 물론 자신 차량의 블랙박스 기록도 삭제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사망한 60대 택시기사의 부검을 의뢰하고 이기영 차량과 택시 블랙박스 메모리카드, 그리고 이기영 휴대전화 등에 대한 포렌식 분석에 돌입했다.
그런데 계획살인으로 보이는 정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살인을 저지르고 긴급체포될 때까지 닷새 동안 이기영은 숨진 택시기사 소유의 신용카드를 무단 사용하고 대출까지 받았다. 이기영은 고급 술집과 호텔 등에서 택시기사의 신용카드로 결제를 했으며 600만 원에 이르는 고가의 커플링까지 구입했다. 신용카드 사용액과 대출금을 합하면 5400만 원가량이나 된다.
경찰은 이기영이 현재 무직 상태로 상당 기간 직업 없이 살아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기영에게는 파주에 아파트가 있었으며 경제적으로 그리 궁핍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한다.
#집주인 50대 여성도 사라져
경찰 확인 결과 파주 아파트는 이기영 소유가 아니었다. 소유자는 50대 여성 A 씨인데 경찰은 A 씨와의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되지 않았다.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는데 이기영은 A 씨가 지난여름 가출해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바로 경찰은 이기영의 추가 범행 가능성에 주목했다. A 씨의 통신·계좌에 대한 압수영장을 발부받아 생활반응 여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A 씨가 이기영과 동거 중이던 전 여자친구라는 사실을 파악하게 된다. 현재도 이기영은 전 여자친구 A 씨의 집에 거주 중이었고 그 집에 새 여자친구까지 드나들었다는 점에서 경찰은 추가 범행 가능성을 높게 봤다.
32세 이기영은 50대 여성 A 씨와 몇 년 동안 교제하며 동거 중이었다. A 씨는 2020년 8월 파주 아파트를 매입해 이사 왔다. 이웃 주민들은 이기영과 A 씨를 부부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A 씨가 돌연 지난여름 가출했다는 게 이기영의 주장이었다.
경찰은 A 씨의 행방을 쫓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수상한 정황을 포착한다. 이기영이 2022년 8월 초부터 하순까지 A 씨 신용카드를 2000만 원 정도 사용한 정황이다. A 씨가 가출했다는 시점 이후 이기영이 A 씨 신용카드를 사용했다는 부분이 추가 범행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 게다가 A 씨의 휴대전화도 이기영이 갖고 있었다.
#결국 자백…거듭 우발적인 범행 주장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자 결국 이기영은 A 씨도 본인이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이기영은 2022년 8월 초 파주 아파트에서 A 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파주시 공릉천변에 유기했다고 진술했다. 이기영은 경찰 조사에서 “집 안에서 자전거 수리 중 다툼이 생겨 들고 있던 둔기를 던졌는데 죽었다. 이후 루프백(짐을 운반하기 위해 차량 지붕에 장착하는 장치)에 시신을 담아 옮긴 뒤 천변에 유기했다”며 “생활비 때문에 다투다가 홧김에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기영의 차량은 국산 SUV 차량으로 인근 주민들은 그가 평소에도 차량 루프백에 캠핑 용품을 싣고 다녔다고 증언했다.
현재 경찰은 이기영이 시신을 유기했다고 밝힌 파주시 공릉천변을 수색 중이며 차츰 수색 범위를 넓힐 예정인데 시신을 찾는 과정은 상당히 힘겨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유기 후 5개월여가 지난 시점인 데다 지난여름 파주 등 수도권에 유독 집중호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군에서는 해당 지역에 지뢰 유실 위험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경찰은 아직 살해 도구를 확보하지 못했는데 A 씨는 “살해 도구는 버렸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한편 두 건의 살인사건이 벌어진 이기영의 주거지 A 씨 소유 아파트는 현재 1억여 원의 가압류가 걸려 있다. 카드사 3곳과의 채무 문제 때문으로 2022년 10월 5일과 18일, 11월 9일에 각각 법원의 가압류 결정이 있었다. 경찰은 A 씨 아파트 가압류 과정을 수사하기 위해 통신기록과 금융계좌 거래내역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영장을 발부 받았다. 카드론 대출 실행 시점이 살인사건이 벌어진 8월 초 이후인지 등이 중요하다.
현재 이기영은 두 건의 살인이 모두 홧김에 저지른 우발적 범행이었음을 주장하고 있는 터라 경찰 수사는 계획 범행이었는지 여부에 집중되고 있다. 이기영이 범행 직후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는 등 계획 범행 정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추가 범행이 존재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추가 범행 여부에 수사력 집중
경찰이 추가 범행이 벌어졌을 가능성에 주목한 까닭은 살인 현장인 이기영 거주 아파트에서 발견된 다양한 추가 증거 때문이다. 우선 집안 곳곳에서 핏자국이 발견됐다. 경찰은 집 내부 감식 과정에서 벽면, 소파, 신발 등 다양한 곳에서 핏자국을 발견해 혈흔에 대한 성분 분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모두 의뢰했다. 애초 경찰은 이런 핏자국을 자전거 수리 중 우발적으로 벌어진 살인이 아닌 계획 살인의 증거로 추정했지만 곧 또 다른 살인 사건이 벌어졌을 가능성까지 주목하게 된다.
집 안에 있던 여행용 가방에서도 핏자국이 발견됐는데, 이기영은 “(A 씨 시신을) 여행용 가방에 넣어 옮기려다 크기가 작아 또 다른 가방에 담으려 했고, 결국 캠핑용 루프백에 담아 유기했다”며 추가 범행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혈흔이 발견된 여행용 가방 외에도 의문이 가는 물건들이 많아 추가 수사 중”이라고 했다.
이기영은 A 씨를 살해하고 시신까지 유기한 뒤에도 A 씨 집에 거주했으며 거기로 새 여자친구를 끌어 들였다. 그런데 A 씨의 옷과 화장품 등의 물건을 그대로 두고 생활했다. 이로 인해 “왜 다른 여자의 물건이 있냐”고 따지는 새 여자친구와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파트 내부에는 취재진 접근이 불가능했지만 아파트 현관과 현관 앞 복도에서 다양한 물건이 확인됐다. 현관에는 이기영의 것으로 보이는 남성 운동화는 물론이고 여러 켤레의 여성 신발이 눈에 띄었다. 현관 앞 복도에 있는 쇼핑백에는 여성용 신발이 여러 켤레 담겨 있었다. A 씨의 신발들로 추정되지만 경찰은 또 다른 가능성도 열어 두고 수사 중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현재까지 드러난 행각을 보면 이기영은 사이코패스일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면서 “이미 두 명을 살해했다. 그런 정도까지 대담함을 지녔으면 희생자가 더 많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